[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이주영은 최근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는 배우다. MBC <역도요정 김복주>로 데뷔해 발칙하고 기발한 영화 <메기>에 이어 트렌스젠더를 연기한 JTBC <이태원 클라쓰>까지 최근 그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로 눈부시다. 그리고 <야구소녀>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약 100분을 완벽하게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의 자질을 드러냈다. 요즘 거론되는 라이징스타 중 가장 빼어난 실력과 결과를 보이는 이주영을 만났다. 이제 겨우 29세임에도, 단단한 내공이 엿보였다.
영화 <야구소녀>는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입소문이 자자했다. 높은 수준의 완성도와 분명하면서도 공감 가는 메시지, 주·조연을 막론한 탄탄한 연기 등 호평 일색이었다.
내공
그 중심에는 시속 130km 강속구를 뿌리는 주수인을 연기한 배우 이주영이 있다. 여성으로서는 월드클래스 급 최고 구속이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떨어지는 시속인 130km의 직구를 무기로 남성의 전유물인 프로야구단 입단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수인.
가족이나 코치, 친구까지도 그의 성공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높아만 보이는 벽을 넘으려 도전한다. 결국 수인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힘을 만들어낸다. 단단하고 멋있는 ‘진짜 걸크러쉬’주수인을 이주영이 표현했다. 그 시작은 이야기의 매력이었다.
“이야기에 매료됐어요. 여자 야구선수라는 세계가 있는지도 몰랐고, 현실적으로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또 수인이가 주는 기운이 좋았어요. 수인은 결국에 자신을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잖아요. 요즘 시대에 꼭 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어요.”
아무도 그가 프로야구단에 입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수인을 가장 지지해야 할 가족이 먼저 그를 말리는 형국이다. 오랫동안 그를 본 감독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까 예견한다. 사회의 편견 앞에서 수인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데만 집중한다. 그는 강속구를 버리고 너클볼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연마한다.
“수인이는 작은 히어로예요.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부담을 느끼거나 좌절하지 않고 최대한 깨고 나려고 하잖아요. 이 아이가 했던 고민이 입체적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저 자신과 싸움뿐. 저는 수인처럼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수인의 뚝심이 저에게도 있으려나요. 수인이를 존경하면서 연기했어요.”
연기는 인물을 마음 속에 집어넣는 행위라고도 한다. 일종의 무당과 같은 방식이다. 배우의 내공이 인물을 품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캐릭터는 붕 뜬다. <야구소녀> 속 이주영은 매력적인 수인을 만들어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완벽에 가까운 야구 실력이었다. 투구폼과 글러브 질은 실제 선수들의 그것과 흡사했다. 한 달 동안 집중 훈련을 통해 이뤄낸 결과라고 하기엔, 각고의 노력이 엿보인다.
“시간상으로 느끼기에는 한 달이 부족한 시간이었어요. 실제 프로에 가려고 하는 고교야구 선수들과 훈련을 했거든요. 실제로 몸으로 부딪치면서 그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보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비교하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잘한다고 해주시니 정말 기쁘네요.”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절제력이다. 온갖 노력에도 수인은 일반적인 남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남성의 세계서 늘 소외됐고, 번번이 사회의 벽에 부딪힌다. 감정이 치밀어오를 만도 한데, 수인은 감정을 숨긴다. 그 해석은 이주영의 몫이었다.
“수인은 작은 히어로…존경하면서 연기”
“서로가 서로를 질투하는 동료 전소니”
“다른 사람들에게 화낼 법도 하죠. 수인이가 처한 상황을 보면요. 그런데 수인이가 편견에 대항하는 모양새를 보면, 어떤 반대를 이겨내는 게 아니라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좀 더 속으로 끓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정호(곽동연 분)에게 ‘130이 뭐. 150을 던져야지’였어요. 수인이는 여자치고 잘한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대사에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겼다고 느껴져요.”
영화는 여성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지만, 꼭 여성을 위한 영화만은 아니다. 어떤 높은 벽에 도전하는 모두가 뭉클한 감동을 느끼는 작품이다.
“감독님하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여성 서사고 여성이 벽을 깨나가는 이야기지만, 어떤 상황, 어떤 위치에 놓은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우리 모두가 함께 깨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요.”
수인과 이주영은 어딘가 닮아있다. 작은 작품부터 천천히 쌓아 올린 것도 그렇고, 자신만의 무기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노력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도 비슷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주영의 생각은 달랐다.
“이 직업은 정점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나도 열심히 하는데,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존재하고요. 질투도 많이 느껴요. 최근에는 그냥 ‘내가 하는 것을 인정하자’는 마인드를 가지려고 해요. 그러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연기라는 게 이다음에 뭐가 있을지 모르고 더 예측할 수 없어서, 만족을 느끼기 어려운 작업인 것 같아요. 늘 비교당하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친구이자 동료 전소니를 꼽았다. “소니한테 질투를 엄청나게 느꼈어요. 반대로 영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 친구를 통해 많은 걸 배웠어요. 서로서로 엄청나게 질투하거든요. 그런 대화를 솔직하게 나누기도 했고요.”
신념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주영은 연기에 대한 신념조차 일반적이지 않았다. 평생 연기하면서 살고 싶다는 게 일반적인 배우들의 발언이라면, 이주영은 달랐다. 그는 “신념이라고 말하긴 거창한데, 제가 연기를 하면서 더 좋은 양질의 감정을 느낄 때까지는 할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저를 희생해야 한다거나 제 에너지가 소진되는 순간이 오면 연기를 붙잡을지 모르겠다. 그때는 왠지 타협할 것 같다. 그때까진 소신껏 제가 하고 싶은 배역을 잘 골라가며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