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대항마 ‘정세균 대망론’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01 10:46:52
  • 호수 12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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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2인자끼리 붙을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항마를 찾아라. 대권 레이스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세균 국무총리가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심상치 않은 ‘정세균 대망론’을 쫓았다.
 

▲ 정세균 전 국무총리 ⓒ문병희 기자

“대선 생각이 있느냐”는 박병석 당시 청문위원의 질의에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는 “전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총리직에 충실하겠느냐”는 추가 질문에도 정 후보자는 “그렇다”고 말했다. 

두 거대 잠룡
친문 선택은?

지난 1월7일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장’서 나온 질의응답 중 일부다. 전임 국무총리이자 대권주자로 불리는 이낙연 전 총리의 경우처럼, 정 후보자가 총리직을 마치고 대권 레이스에 도전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청문회를 통과한 정 후보자는 지난 1월14일 제46대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정치권은 정 총리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높게 본다. 청문회서 대권 도전을 묻는 질의가 나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박지원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18일 정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후 가진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정 총리는)대권의 꿈을 갖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또 총리로 가더라도 대권의 꿈을 접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21대 총선이 끝났다. 높은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를 보였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에서 당선됐다. 종로는 그동안 ‘정치1번지’라 불리며, 차기 대권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20대 국회 때까지 종로는 정 총리의 지역구였다.


종로 승리 후 이 총리는 차기 대권 레이스서 독주 중이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달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조사하고 27일 발표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38.4%로 1위를 달렸다. 

2위는 17.4%를 기록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1·2위 간 두 배 이상 격차가 나는 상황이다(자세한 내용은 알앤써치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다른 여론조사기관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쟁자가 없다.
 

▲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 참석한 이낙연 의원 ⓒ문병희 기자

이 전 총리는 또 한 번의 비상을 노리고 있다. 바로 당권이다. 이 전 총리는 최근 8월 전당대회 출마 결심을 굳혔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몸집을 키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책임감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직접 나서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 전 총리의 대권 레이스는 현재 순항 중이다.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후 총선서 승리해 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또 당내서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정국의 중심에 섰다. 만약 당권까지 거머쥔다면 그렇지 않아도 독주하고 있는 차기대권주자 후보로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저평가 우량주 비상할까
코로나19 이후 대권 탄력

여러 모로 이 전 총리에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한 가지 불안요소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9일에 열린다. 1년10개월이 남았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언제 구도가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당권 도전을 굳힌 이 전 총리 입장서 이런 불안 요소에도 휘둘리지 않을 한 방이 필요하다.


또 당권 레이스 과정서 이 전 총리의 이미지에 흠집이 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역대 전대는 총선만큼이나 치열하게 전개돼왔다. 역대 가장 무난했다고 평가받는 지난 8·25전당대회 때도 이해찬·송영길·김진표 등 당권주자들은 선거일이 다가오자 상대 후보에 대한 공세를 펼친 바 있다.

이 전 총리의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는 정 총리는 코로나19로 존재감을 키웠다. 시작은 위기였다. 지난 1월 정 총리가 취임한지 6일 만에 국내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본부장을 맡은 정 총리는 현장 시찰 중 상인에게 “손님이 적어 편하시겠다”고 해 구설에도 올랐다. 

하지만 이후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대구에 내려가 3주 동안 현장을 지휘했다.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해 마스크 대란을 돌파해내기도 했다.
 

▲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규모로 당정 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설득한 사람도 정 총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노력이 더해져 ‘K-방역’은 전 세계서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됐다. 만약 이런 상태가 지속돼 코로나19를 종식시킨다면, ‘코로나19 극복 총리’로 불리며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 큰 가산점을 얻을 전망이다.

정 총리는 새로운 도약지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그린뉴딜’이다.

대권의 꿈
놓지 않아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청와대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서 “경제 위기 극복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한국판 뉴딜’도 준비해야 한다”며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앞서 준비하며 미래형 일자리를 만드는 ‘디지털 뉴딜’과 함께 환경친화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그린 뉴딜’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는 7월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수소경제위원회가 출범한다. 수소경제 활성화는 그린뉴딜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출범은 정 총리의 지시로 앞당겨졌다. 당초 수소경제위원회의 출범은 내년 2월로 예정돼있었다.

정 총리는 코로나19 방역 컨트롤타워였던 중대본의 참석을 줄이고, 경제 행보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 5회 중대본 회의 참석을 주 2회로 줄이면서, 경제 관련 참석을 늘리고 있다는 것. 최근 정 총리는 노사 대표들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경제총리’를 자처했던 취임 초기로 돌아가려는 의도로 읽힌다. 쌍용그룹 상무이사 출신이자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인 정 총리의 전공 분야가 바로 경제다. 정가 안팎에선 정 총리의 경제 관련 행사 참석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코로나19 총리’서 ‘경제 책임총리’로의 변화를 바라보는 정치권은 정 총리가 이 전 총리와의 민주당 대권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분석한다. 총선에 뛰어들어 민주당 압승을 견인, 당권까지 노리는 이 전 총리에게 맞서 전공인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는 시선이다.

정 총리는 인사청문회서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주변에서 코로나19를 종식시키고 대선으로 가자는 제안을 많이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최근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민주당 대권주자 선호도 1위와 잠재적 대권주자의 만남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 컨벤션센터서 열린 민주당 당선인 워크숍에서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이 전 총리다. 당권 출마 여부가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전 총리의 등장에 취재진이 몰렸다. 사실상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이 전 총리는 민주당 지도부가 앉은 테이블의 상석에 앉았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형석·남인순 최고위원과 같은 테이블이었다.

경제 총리
변신 시도

정 총리의 등장은 그 이후였다. 깜짝 등장이었다. 정 총리의 참석은 사전에 공지되지 않았다. 취재진은 정 총리의 깜짝 등장에 관심을 보였다. ‘정세균계’ 의원들이 일어나서 정 총리를 맞았다.

정 총리는 연단에 올라 “국민께서 많은 의석을 민주당에 주신 것은 집권여당이 위기상황 대응에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 성과를 내라는 엄중한 명령”이라며 “예뻐서 찍어준 게 아니라 책임을 지을 수 있도록 한 것인 만큼 과제가 많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정 총리는 “전력투구해 목표를 100% 달성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당정은 서로 협력하면서 국민을 섬겨야 한다. 앞으로 4년간 보람 있는 의정 활동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축사를 마친 정 총리는 테이블을 돌며 당선인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21대 총선 후 정 총리는 가까운 민주당 당선자들 위주로 비공개로 당선 축하 자리를 여러 차례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모두 호남 출신이다. 정 총리는 전라북도 진안, 이 전 총리는 전라남도 영광서 각각 태어났다. 이 전 총리는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였으며, 후임자는 지금의 정 총리다.

대선이 다가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선 호남 출신 인사가 정권재창출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호남대망론’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정권재창출 과정서 호남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호남대망론의 선두주자이며, 잠재적 대권주자인 정 총리가 호남대망론을 달성할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과연 ‘포스트 DJ(김대중)’라는 타이틀은 누구의 차지가 될 것인가. 역대 호남 출신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DJ 이후 4번의 대선이 치러졌지만,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며, 호남 출신 대통령은 탄생하지 않았다.

“기반은 더 단단해”
묘한 긴장감 연출

대권에 도전할 후보마저도 가뭄이었다. 이 전 대통령과 대결해 패배한 민생당 정동영 전 의원이 DJ 이후 유일한 호남 출신 대권주자였다. 정 총리, 이 전 총리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사람이 대권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정가서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는 ‘호남 후보 필패론’이다.
 

▲ 청와대 ⓒ문병희 기자

호남의 인구는 영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호남 지역 단독으로는 대권주자를 당선시키기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 DJ는 충청의 맹주인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와 DJP연합을 결성한 후에야 대권을 쥘 수 있었다. 호남 출신 대권주자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다.

정치권은 두 사람에게 필요한 플러스 알파로 ‘친문’을 꼽는다. 두 사람은 공통의 약점 역시 궤를 같이 한다.

정 총리와 이 전 총리는 민주당 내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범정세균계는 30여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낙연계’는 21대 총선 이후 세를 불려나가는 단계다. 아직 대권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규모다. 대권을 위해서는 민주당 주류인 친문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침 친문 대권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군으로는 이낙연·이재명·박원순·김경수·정세균·김부겸 등이 꼽힌다. 친문 적통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유일하다. 김 지사는 드루킹 사건으로 불리는 ‘댓글 조작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당장 대권이라는 정치적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공개 회동
보폭 넓혔다

친문계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김 지사가 대권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친문은 정 총리와 이 전 총리 중 한 사람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두 사람은 내각서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이끌었다. 결국 친문의 선택이 ‘대망론’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세균 ‘광폭 회동’ 왜?

정세균 국무총리가 군소정당 당선인들과 회동을 가지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당권 도전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정 총리는 최근 정의당 의원들과 만찬을 가졌다. 지난달 27일 정 총리는 심상정·배진교·강은미·이은주·장혜영·류호정 의원을 총리 공관으로 초대했다.

이 자리서 정 총리는 과거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시절 민주노동당(정의당 전신)과 협업한 인연 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총리는 군소정당과의 만찬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국민의당·열린민주당 의원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정 총리 측은 대화의 기회가 많지 않은 군소정당을 만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부탁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일각에선 정 총리가 내각을 책임지는 총리직의 역할을 십분 활용하는 쪽으로 대권 행보에 서서히 속도를 높일 것이라 분석의 목소리도 나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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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