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LG화학 인도 참사 전말

어린이까지…흙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LG화학 인도공장서 발생한 유독가스 유출 사고로 10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LG화학은 노국래 부사장을 단장으로 지원단을 파견하는 등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담당자 부재 사실과 환경 규정 위반 의혹으로 비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번 사고를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환경 및 산업재해사고로 기록된 보팔 참사와 비교하기도 했다.
 

▲ LG화학 사고 현장

LG화학 인도공장서 지난 7일, 유독가스 유출 사고로 적어도 11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CNN과 AP 통신, NDTV, 인디아투데이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30분께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샤카파트남 LG폴리머스인디아 공장서 유독가스인 스티렌(Styrene)이 누출되면서 지금까지 어린이 3명을 포함한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소 11명 사망
1000여명 부상

사망자 대부분은 사고 당시 현장 주변서 운전 중이었거나 집 테라스에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일부는 잠을 자다가 그대로 숨을 거뒀다. 또 1000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유독가스에 노출돼 부상을 당했고, 이중 20∼25명은 매우 위중한 상태라고 매체는 전했다.

안드라프라데시주 재난긴급대응팀 칸나 바부 팀장은 최소한 285명이 가스중독으로 비샤카파트남 전역의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밝혔다. 공장 인근 마을들에 거주하는 1만명의 주민 가운데 약 5000명이 대피했다고 전했다. 

비샤카파트남 지구 고위관리 테지 바라트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곳곳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으며 1000명 정도를 즉각 분산시키고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고팔라파트남 경찰은 수백명을 구급차와 순찰차, 관용버스에 태워 현장을 벗어나게 도왔고 상당수 주민은 제 발로 탈출했다고 현지 경찰 라마나야가 말했다.

800명에 달하는 부상자는 눈이 타는 듯한 고통을 호소했으며 호흡 곤란, 발진, 구토, 의식불명 등의 증상을 보였다. 누출 가스 영향은 반경 1.5㎞ 이내였지만, 냄새 등은 3㎞ 5개 마을까지 퍼졌다. 병원으로 이송됐던 피해자 일부는 퇴원했다.

현지 당국 관계자는 “LG폴리머스 공장서 합성 화학물질인 스티렌이 유출됐다”며 “화재가 발생한 뒤 가스가 누출됐고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LG폴리머스 공장 내 화학물질을 담은 탱크서 가스가 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관계자는 “탱크 내부에서 열이 발생하고 기화하면서 가스가 샜다”고 밝혔다. 인디아투데이는 “2000t 용량의 탱크서 가스가 누출됐고, 3000t짜리 탱크는 손상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유독가스 유출 1000여명 사상자 발생
책임자 부재 의혹…근무자 절반 계약직

재난긴급대응팀은 가스누출을 최소한도로 막으면서 사고를 수습했으며 “전반적으로 상황이 진압됐고 이제는 복구와 부상자를 치료하는 수순”이라고 발표했다. 인도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3월25일부터 전국 봉쇄령을 내려 다행히 공장 내부에서 근무 중인 인원은 거의 없었다.


지난 4일부터 봉쇄 조치를 완화함에 따라 공장의 조업재개를 위한 준비 작업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다만 인근 상점과 제조업 등 일부 경제활동은 재개된 상태다.

한국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LG화학은 “현지 주민의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주민과 임직원의 보호를 위해 최대한 필요한 조치를 관계기관과 협조해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당국과 LG화학은 정확한 사고 경위와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즉각적으로 가스누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당국은 공장이 정상 가동을 위해 정기보수와 점검 작업 동안 가스가 새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직원들은 저장탱크서 화학물질이 유독가스로 기화해 누출되는 것을 발견하고 화학물질 중화에 나서는 한편 1시간 만에 공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서 유출 가스가 퍼져 나가면서 인명피해가 커졌다. 당국은 오전 3시30분께야 신고전화를 받았고 긴급대응팀이 출동 명령을 받은 것이 5시30분,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6시라고 밝혔다.

더욱이 유출 가스의 냄새가 독해 진입하는데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유독가스는 공장 굴뚝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바람을 타고 주위로 퍼졌다.

언론에 따르면 당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호흡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려고 뛰다가 거리에 쓰러지는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중계됐다.

한 목격자는 안개와 같은 가스가 지역을 덮으면서 공황에 빠졌다고 진술했다. 목격자는 “사람들이 그들의 집에서 호흡 곤란을 겪었고 도망치려고 했다”며 “어둠이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했다.

지방 관리와 해군 소속 인력은 인근 마을 5곳의 주민을 대피시켰고,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대기 중인 구급차에 부상자를 옮기는 등 사고 수습을 도왔다.

한국,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지역 환경단체, 노동조합, 전문가집단 등이 인도서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일으킨 LG화학에 희생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과 건강영향조사,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에서처럼”
환경단체 성명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ANROEV)는 지난 1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성명을 통해 LG화학에 인도서 발생한 사고가 한국서 일어난 것으로 간주해 피해 대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시아 전역 20여개 국가의 100여개 피해자 단체, 노동조합, 환경 및 노동단체 그리고 의학 및 법학전문가들의 연합체인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이하 피해자네트워크)는 직장과 지역사회 건강과 안전의 개선 및 피해자의 권리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피해자네트워크는 LG화학에 “이번 인도공장 가스 유출사건을 한국서 발생한 것으로 여기고 인도주민 사상자에 대한 대책과 인도공장 주변지역의 오염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그것이 LG가 말해온 글로벌스탠다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이 보팔 참사서 미국기업 유니언카바이드가 남긴 교훈이며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영국기업 레킷벤키저가 옥시사태로 남긴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 LG화학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또 성명을 통해 “LG화학의 과실로 인한 가스누출 참사의 비극은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즉시적이고, 온전한 보상과 생존자들에 대한 치료 및 재활을 요구했다. 

또 재난에 대한 조사와 노출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급성 및 만성 건강영향조사가 지체 없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네트워크는 “현장 폐쇄 조치 후 작업장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현장 실사가 지역사회 및 피해자대표의 참여로 실행돼야 한다.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안전시스템과 강력한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인도 현지의 피해주민들은 유해가스 유출과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이중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 멤버들은 사망한 희생자를 기억하고, 살아 있는 자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네트워크가 언급한 보팔 참사는 1984년 12월3일, 인도 중부지역인 보팔에 위치한 미국 국적의 유니언카바이드 사(현재는 다우케미칼)의 살충제 제조 공장서 유해화학물질인 아이소사이안화메틸이 누출돼 50만명이 노출되고 공식 집계상 2250명이 사망한 사고를 말한다. 

보팔 참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환경 및 산업재해사고로 기록된 사고기도 하다. 2006년 제출된 인도 정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가스 유출로 인해 3만8478명의 경상자와 3900명의 중증장애자를 포함해 모두 55만8125명의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사고 후 미국과 인도서 다수의 민·형사 재판이 이어졌지만 사고를 일으킨 회사와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고, 사고발생 지역은 오염된 채 방치돼있다.

인도 주정부는 가스 누출 사고와 관련해 LG화학 측에 사고 원인 물질로 알려진 스티렌을 한국으로 모두 옮기라고 지시했다.

제2의 보팔 참사
스티렌 한국행?

지난 12일 인도 업계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YS 자간모한 레디 안드라프라데시 주총리는 LG화학 계열 LG폴리머스 측에 1만3000t 분량의 스티렌 재고를 한국으로 반송하라고 명령했다.

안드라프라데시 주 당국은 이미 8000t은 한국행 선박에 선적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LG폴리머스 측은 “인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공장 등에 보관하고 있던 모든 스티렌을 한국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전했다.

화학제품 원료로 쓰이는 고농도 스티렌에 노출되면 신경계가 자극받아 호흡곤란, 어지럼증, 구역질 등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후 현지 일부 주민은 공장 폐쇄 등을 요구했으며 당국도 환경 규정 위반 사실이 적발될 경우 공장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가디언과 현지 일부 언론은 LG폴리머스가 공장의 설비 확장 과정에서 환경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LG폴리머스가 2019년 5월 당국에 신청한 설비 확장 신청 진술서를 토대로 당시 LG폴리머스는 감독관청으로부터 환경 규정과 관련해 유효한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인도 환경부도 지난 8일, 잠정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LG폴리머스 측이 지난 3월 설비 확장 허가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가동에 들어갔다”며 “이는 환경 규정위반”이라고 지적했다.
 

▲ LG화학 본사

이에 대해 LG폴리머스 측은 “2006년 이전부터 설치 허가(CFE), 운영 허가(CFO) 등 환경 관련 인허가를 받은 상태”라며 “가디언 등에서 제기한 환경 규정위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도 정부가 2006년 환경허가(EC)라는 새 규정을 도입했는데 LG폴리머스는 EC 취득 대상 회사가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인도 중앙정부의 확실한 판단을 받기 위해 자진 신고 신청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출 사고 당시 관리자가 현장에 없었다는 현지 조사단의 발언도 나왔다. 또 현장 근무자 중 절반이 권한이 없는 계약직이라는 증언이 제기되는 등 관리 소홀을 입증하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사실상 사고를 사전에 통제하기 어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제2 보팔 참사 되지 않도록…”
노국래 부사장 현지로 파견

시바 샹카르 레디 비사카파트남 감찰관은 13일(현지시각) 인도 매체 <인디안 익스프레스(IE)>와의 인터뷰서 “공장을 안전하게 재가동할 책임은 찬드라 모한 라오 LG폴리머스 매니저 겸 운영국장에게 있었으나 사고 발생한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그는 공장에 없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사건 발생 당시 공장에는 24명이 근무 중이었지만 상황 통제가 가능한 상급 관리자는 한 명도 있지 않았다”며 “상급자의 감독 하에서 일해야 하는 엔지니어들이 몇 명 있었으며 근무 인원 중 절반은 계약직 노동자였다”고 덧붙였다.

라지브 쿠마르 미나 비사카푸트남 경찰서장은 “사고 공장 운영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수사할 것”이라고 IE에 밝혔다. 사고를 조사 중인 전문가 위원회 역시 당시 책임자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당국이 스티렌모노머 유출 관련 사고 초기 보고서(FIR)에서 발생 장소가 LG폴리머스 공장임을 적시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 노국래 LG화학 부사장

<IE>가 입수한 FIR에 따르면 사고 발생 5시간여 뒤인 오전 7시 현지 경찰 기록에는 ‘공장서 연기가 나고 나쁜 냄새도 풍기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경찰이 스티렌모노머 유출을 확인했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고, 회사 이름 역시 보고서에 없었다고 IE는 보도했다.

LG화학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노국래 석유화학사업본부장(부사장)을 단장으로 8명으로 구성된 인도 현장 지원단을 파견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우선 국내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고 수습을 계속해서 총괄 지휘한다.

현장 지원단은 공장 안전성 검증과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신속하고 책임 있는 피해복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사고원인 조사와 현장의 재발방지 지원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해 현장 지원단은 생산·환경안전 등 기술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발등에 불똥
지원단 파견

노국래 지원단장은 피해주민들을 직접 만나 지원 대책을 상세히 설명하고,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의 면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LG화학은 “현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출·입국이 제한된 상황이지만 한국과 인도 정부기관, 대사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신속한 입국이 이뤄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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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