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40)매창의 이야기

유희경을 떠나보내고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아니오, 그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매창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고리타분한 나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말이오.”

“사실 그 이후의 일은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그 무슨 뜻이요.”

“그냥 일상의 연속이었지요.”

“촌은이 떠난 이후 지금까지 말이오.”


일상의 연속

“그러하옵니다.”

“허허, 그럴 리 있나.”

매창이 살며시 미소를 보였다.

“나리, 저는 달리 생각하고 있답니다.”

“달리라면.”

“돌이켜보니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 오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집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

“나리를 만나려고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옵니다.”

“그 말이 참으로 의미 있게 들리는구려.”

“말뿐만 아니오라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을 생각하면 그것도 역시 소녀의 벗을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되옵니다.”

유희경을 떠나보내고 매창은 상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비록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매창의 마음 속속들이 유희경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사실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유희경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와 지내면서 한층 더 성숙된 시제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시를 지어 한양으로 가는 손 편에 전한다.
  
自恨(자한) 스스로를 한하며

春冷補寒衣(춘냉보한의) 봄날 차서 엷은 옷 꿰매는데
紗窓日照時(사창일조시) 사창에 햇빛 비치고 있네
低頭信手處(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 채
珠淚滴針絲(구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 실과 바늘 적시네

유희경 역시 매창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안으로 오는 손에 의해 유희경의 편지가 매창에게 전달된다. 

懷癸娘(회계랑) 계량을 그리워하며 

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재경구) 나의 집은 한양에 있어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니
腸斷梧桐雨(단장오동우)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 浪州(낭주) : 부안의 옛 지명

상심의 나날…시를 지어 한양으로
촌은 통해 위로 받고 싶었던 매창

“나리, 이 두 편의 시로 그 당시를 대신하겠어요.”

허균이 두 편의 시를 회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 정도까지 사무쳤건만 왜 직접 한양을 방문하려 하지 않았던 게요.”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려움이라.”

“죽어도 올라가기 싫었지요. 한양에 올라가면 아마도 지난번처럼…….”

서우관과의 경험에서 비롯된 결과다.

“촌은은 왜 그랬으리라 생각하오. 잠시 시간을 내서 내려올 수도 있었건만.”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효성 때문이었지 않나 싶어요. 어머니를 오래 떠나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에요.”

“하기야, 그 위인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오. 워낙에 효자라.”

“그러니 그분을 그리면서 그리움의 꽃을 수없이 피우다가 지치곤 하였지요.”

“매창, 촌은을 어찌 생각하고 있소.”

“훌륭한 분이시지요.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는 분 말입니다.”

“그 훌륭한 사람을 망가트린 사람이 결국 매창 아니었소.”

매창이 웃었다.

“나리, 그러고 보면 연분이란 정해져 있는 모양이옵니다.”

“그래서 매창이 촌은과 어울린다는 말이요.”

“오히려 그 반대지요.”

“그 반대라.”

“소녀는 그분을 통해서 소녀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려 했었지요. 제 순탄하지 못한 삶을 평생 한결같이 살아온 그분을 통해 위로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옵니다.”

“매창의 삶을 촌은의 변하지 않는 일관성으로 위로 받는다.”

“그러하옵니다.”

허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입증하려는 매창, 남의 간섭을 견뎌낼 수 없는 매창으로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촌은의 포용력이 서로의 끊을 수 없는 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창이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포근함에 생각이 귀결되고 있었다.

“결국 촌은과 헤어지고 그 상심을 혼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구려.”

“그분을 그리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이귀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그랬지요. 그즈음에 이웃 고을 김제 군수로 내려온 이귀 나리를 뵈었지요.”

“이귀 선배가 결국 매창을 상실의 늪에서 구해준 은인이로군요.”

“글쎄요, 그 분이 은인인지…….”

“혹시 나를 이름은 아니겠지요.”

“나리, 송구하옵니다.”

“송구하다니?”

“별 내용도 없는 이야기로 나리의 심사만 어지럽게 한 듯하옵니다.”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라오. 매창의 경우는 주로 내면의 세계에 관한 일이니 당연히 조용할 수밖에 없지요. 나야 천방지축 세상을 떠돌아다니니 시끄럽고.”

“지나친 겸손의 말씀이시옵니다.”

“결국 다시 나의 이야기를 해보라 이 뜻이구려.”

매창이 그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여하튼 형님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가서 드디어 세상으로 발을 내딛었다오.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사관이 되었다오.”

“드디어 조정으로 드셨군요.”

“그렇소, 그 아사리 판으로 드디어 입성하게 되었다오.”

“아사리 판이요?”

아사리 판으로
 
“방금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소. 알량한 이익에만 목 매달고 이전투구를 일삼는 혼돈의 장  말이오.”

“나리,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결국 그래서 소녀가 나리를 뵈올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씀이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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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