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오심에 울고 미력한 국력에 운 신아람& 조준호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8.09 09: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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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나라'서 열린 역대 최고 비신사적인 올림픽 "4년 피땀 돌리도"

[일요시사=김민석 기자]"더 이상 스포츠는 신성하지 않습니다." 신아람 선수의 어이없는 패배를 지켜보던 최승돈 아나운서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감동과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가야 할 2012런던올림픽이 계속되는 편파판정과 운영미숙으로 어글리올림픽이 되어가고 있다. 올림픽 정신은 오간데 없고 돈을 끌어 모으기 바쁜 듯하다. 백인들의 인종차별도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의 스포츠 발전을 견제하려는지 유독 우리나라 대표팀에게 유례없는 오심이 쏟아진다.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편파판정에 분통이 터져 잠을 못 이루는 전 국민도 피해자지만 최대 희생자는 4년 동안 흘린 땀이 눈물로 바뀌어 버린 신아람, 조준호 선수일 것이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 진정한 승자로 남을 두 사람을 조명해봤다.

1초를 남기고 찌르기 공격이 들어왔다. 신아람은 가까스로 동시 공격에 성공해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독일의 하이데만(독일)은 대기 중엔 블레이드(펜싱 칼)가 겹치지 않도록 충분히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한 채 거리를 좁혀왔지만 심판은 이를 제지하지 않은 채 경기를 속행했다.

재차 찌르기 공격이 들어왔다. 역시 동시 공격으로 판정 났다. 전광판의 시계가 0초로 바뀌어 경기종료를 알렸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심판의 재량으로 1초로 되돌려졌다. 신아람의 얼굴표정에 어이없음이 영력했다.

심재성 팬싱대표팀 코치도 즉각 항의 했다. 항의는 무시되고 경기가 속행돼 기습공격이 들어왔다. 1차 공격은 막아냈지만 2차 공격은 막아내지 못했다. 하이데만의 득점으로 인정됐다. 그 순간까지도 전광판의 시계는 1초를 표시했다. 득점이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기가 끝났다. 이 모든 상황이 단 1초 만에 일어난 것이다. 

대한의 여검객 울린
거꾸로 가는 시계

지난달 31일 새벽(한국시각) 열린 여자 펜싱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신아람(26·계룡시청)은 어처구니없는 판정에 울어야 했다. 논란의 여지조차 없는 '명백한 오심'이었다. 정상적인 시합이라면 1초 동안 3∼4차례 공격은 불가능하다. 이를 뒷받침 하듯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하이데만 선수의 세 차례 공격에 걸린 시간은 각각 0.06초, 0.19초, 1.17초로 모두 1.42초로 분석했다. 이 역시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당시 심 코치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후 30분 동안 심판진의 논의가 이어졌지만, 판정은 결국 번복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신아람은 바닥에 주저앉아 서러운 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경기를 중계하던 최승돈 아나운서는 "그동안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더 이상 스포츠는 신성하지 않습니다"라 외쳤다.

이후 진행된 3·4위 결정전을 두고는 "누가 이 경기를 보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이 경기를 중계하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이 선수를 여기 혼자 둘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해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한편 지난 1일 국제펜싱 연맹에서는 신아람의 스포츠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며 특별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아람은 엑셀 런던 사우스아레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특별상은 올림픽 메달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판정이 오심이라고 믿기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해 끝까지 판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줬다.

대한민국 제일 '여검객' 신아람 울린 '어글리 런던올림픽'
미운오리새끼에서 예쁜백조로, 21살에 국가대표 꿈 이뤄

국민을 울렸고 자신도 주저앉아 울어야 했던 대한의 여검객 신아람, 그녀는 어떤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을까? 신아람은 중학교 1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목적도 없이 운동하려니 힘들기만 하고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어린나이에 펜싱 블레이드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특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기합 받는 게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그녀가 말하길 그녀는 어릴 때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꾸준히 배우는 것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펜싱 칼만 잡으면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자신 안에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았고, 뒷전으로 밀리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기더라"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펜싱은 내성적인 그녀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게 해주었고 자연스럽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됐다.

펜싱을 친구삼아
'7전8기' 인생


펜싱에 집중해서인지 중학교 성적은 영 좋지 않았다. 함께 운동하던 친구들이 진학문제로 하나 둘 떠나는 것을 보면서 자신 역시 고등학교 진학을 두고 펜싱을 계속 할지 그만 둘지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펜싱을 그만두면 후회하게 될 것 같아 결국 계속 하게 되었다고. 이것이 오늘날의 신아람을 있게 한 중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고등학교 진학 후 그녀는 각종 펜싱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5년 동안 전국대회에서 입상 한 번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고된 훈련을 이겨내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침내 유소년 대표 자격을 얻어냈다. 당시 신아람은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전국대회에서 활약하지 못한 그녀이지만 세계대회엔 첫 출전해서 단숨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굉장한 이변이었다. 각국의 유망주들이 모두 모인 대회에서 우승을 따낸 것이다. 당시 신아람은 자신의 실력이 세계무대에서 빛을 발하자 기쁨 반 놀람 반이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국가대표'를 꿈꾸기 시작했다. 불과 3년 후 그녀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당시 나이 겨우 스물한 살.

태릉에서의 고된 훈련을 이긴 신아람은 2010 토리노세계선수권대회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회참가자 중 가장 어렸던 그녀지만 당당하게 8강까지 갔다. 한국 펜싱대표팀 중에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것이다. 귀국 직후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며 한국의 대표 여검객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녀는 대학 4년 중 3년을 국가대표로 지냈다. 그리고 2009년 실업팀(계룡시청)에 입단해 현재 3년차이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억울한 선수는 심아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7월29일 유도 남자 66㎏급에 출전한 조준호(24·한국마사회)가 바보심판 3인의 '청기내리고 백기올려' 게임의 희생양이 됐다. 경기 종료 후 3명의 심판들 모두 청기를 올려 만장일치 판정승을 받았지만 일본 측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이를 받아들인 심판위원장의 개입으로 5분 만에 판정이 번복,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한 것이다. 유도에서 승패가 번복되는 일은 유례가 없었다. 조준호는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동메달을 따냈다.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조준호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간 기분이었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왜 판정 번복이 있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경기 후반 큰 포인트를 뺏긴 것도 있다"며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고, 판정은 심판들이 하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승복한다"고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에비누마 마사시
"조준호가 이긴 경기"

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상대 선수였던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가 "조준호가 이긴 게 맞다. 판정이 바뀐 것은 잘못됐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과 문원배 대한유도회 심판위원장은 오심이 아니라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많은 분들이 잘 몰라서 생기는 현상"이라며 "판정을 뒤집고 일본 선수의 손을 들어준 것이 정당하기 때문에 국민여러분은 자제해 달라"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유효에 가까운 큰 포인트를 내준 것이지 유효 포인트가 인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도 룰 역시 명쾌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어떻게 보면 점수 등급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유효보다 낮은 등급의 포인트인 '효과'를 없앤 것이 화근이라 볼 수 있다.

조준호의 아버지는 유도선수였다. 그래서 그에게 허락된 운동은 오직 유도뿐이었다. 유도복을 처음 입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그는 1년 만에 부산의 작은 시합에서 모두 이길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하여 쌍둥이 동생 조훈현과 함께 각종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번갈아 가며 따냈다.

조준호, 악바리 투혼으로 일궈낸 가장 값진 동메달
한판보다는 절반, 절반보다는 유효, 판정승 사나이

그리고 시작된 태릉선수촌 생활, 처음에 그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파트너일 뿐이었다. 그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올림픽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마음먹고 꿈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대회 예선에서는 번번이 패배의 고비를 마셔야 했다. 그러다 기회가 왔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지난해 세계 선수권, 그랑프리,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더니 어느새 한국 남자유도의 최대 유망주로 떠올랐다. 일취월장 한 것이다. 2012년 그의 선배이자 라이벌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를 제치고 런던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유도 대표팀의 정훈 감독은 조준호를 가리켜 '내세울 것이 없는 선수'라 말한다. 이는 그가 특출한 끝내기 기술이 없다는 의미로, 그는 신기하게도 한판보다는 절반, 절반보다는 유효, 유효보다는 지도 이렇게 포인트를 착실히 따내 판정승을 이끌어 내는데 정통하다. 그렇게 승리를 하나하나 따내다 보니 결국엔 세계의 쟁쟁한 선수들을 모두 물리친다는 것이다.

내세울 것 없는데
결코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판 기술도 없는 선수가 어떻게 같은 체급에서 경쟁한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민호를 제치고 국가대표가 되었을까? 이는 조준호의 남다른 '습득력'에 있다.

조준호는 "나는 특기 기술은 없지만 잘 하는 선수들의 특기를 잘 따라 한다. 잡기는 김재범, 잡고 나서의 움직임은 왕기춘, 그리고 최민호 선배의 다양한 한판 기술들을, 유도를 시작하던 어린 시절부터 수천 수백 번 비디오를 돌려보며 따라 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선수들의 장점들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 이것이 내세울 것 없는 그가 세계랭킹 1위와 마주해도 지지 않는 이유이다.

조연을 벗어나기 위해 흘린 피땀, 그 대가로 금빛 메달을 거머쥐었어야 마땅하지만 석연찮은 판정의 희생자가 되어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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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