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코로나 야전사령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하루하루 헌신적 사투 ‘세계가 엄지척’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코로나19 확산세로 국민의 시선은 연일 질병관리본부로 향한다. 하지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이다. 지난 1월20일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정 본부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브리핑에 나서고 있다. 24시간 가동되는 긴급상황센터서 대응책 마련을 위해 구성원들과 총력을 쏟는다. 그런 상황서 그의 대응은 침착하다. 확진 환자가 늘어나는 상황서도 다수의 국민이 질본의 이성적인 대응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중국서 발병한 코로나19의 한국 지역사회 감염이 우려되고 있다. 방역당국인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매일 초비상 상태를 유지하며 확산을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질본을 대표해 매일 언론 앞에 브리핑을 하는 이가 있다. 바로 정부의 야전사령관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다. 정 본부장에 대한 질타보다는 걱정과 격려의 목소리가 훨씬 크다. 이례적인 일이다.  

불철주야 
고군분투

지난 24일 정 본부장은 “체력적인 어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업무의 부담이 크지만 잘 견디고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해당 내용이 기사와 포털로 전해지면서 국민들의 격려 메시지도 쏟아졌다.

다수 국민이 “온 국민이 질본과 본부장을 지지한다”와 같은 응원의 목소리를 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 본부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지난달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에게 상황 보고를 시작했다. 그 후 점점 변해가는 정 본부장의 수척한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매일 최일선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흔적이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로가 쌓였으며 흰 머리가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첫 환자 발생 후 한국이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외신 언론 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구서 무더기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 이런 상황서도 정 본부장의 성실하고 차분한 대응이 호평을 받고 있다.

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반면, 질본과 정 본부장에 대해서는 대응이 부실하다며 질타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오히려 ‘고맙다’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 퍼지고 있다. 사망자가 발생하고, 의심환자가 늘어나는데도 ‘책임론’이나 ‘무능론’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정 본부장에 대한 응원은 그의 전문성과 신뢰감을 주는 태도로부터 나온다. 대구 신천지교회가 감염원으로 등장해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이 크게 늘어나기 전, 일주일 가까이 확진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시점서도 정 본부장은 “절정이 지났다고 판단할 수 없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매일 오전 9시에 직접 브리핑을 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기자들의 질문이나 궁금증에 대해 성실히 끝까지 답변하는 태도로 신망을 얻었다.

질타보다는 걱정·격려의 목소리 “이례적”
전문성과 신뢰 있는 태도…세계적 호평 일색

정 본부장은 더 고삐를 단단히 쥐고 있다. 응원과 위로는 감사하지만, 방역망이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지금 해야 할 것은 딱 하나라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방역 성공’. 정 본부장은 현재 자신을 둘러싼 미담 기사들에 대해서도 적절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개인에게 쏠리는 관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난 3일 한 매체에 따르면 정 본부장은 최근 전 직원에게 잇단 국민의 성원과 별개로 분발을 촉구했다. 매체는 정 본부장이 당시 “방역당국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은 감사하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상황 대응에 부족함이 많고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신을 둘러싼 미담에 대해서는 “개인에게 관심이 쏠리거나 미담으로 포장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정 본부장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질본은 정 본부장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인력 대부분이 한 달 가까이 긴급상황센터와 보건복지인력개발원서 숙식을 해결하며 비상근무를 이어오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정 본부장 역시 쪽잠을 자청하고 있다. 직원보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고, 일 처리도 완벽하리만치 꼼꼼하다는 질본 관계자의 전언도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책임지는 그의 신념은 2017년 질본 본부장 취임사에도 잘 녹아있다. “국민의 신뢰와 보건 의료 분야 리더십은 우리의 리더십서 나온다.” 그의 리더십에 또 한 번 온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 본부장은 감염병 예방 분야 전문가로 질본서만 20년 넘게 근무했다. 정 본부장은 광주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1989년 서울대 의과대학 의학 학사를 취득했다. 의사생활을 하면서 보장된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공중 보건과 예방 의학에 관심을 두며 진로를 급선회했다. 이후 서울대 보건학 석사와 예방의학 박사를 받으면서 공중 보건 연구를 시작했다. 

극복 총력전
진심 통했나

그는 1998년 5월 보건복지부 국립보건원 보건연구관으로 질본에 첫발을 디뎠다. 첫 보직은 2002년 국립보건원 전염병정보관리과장이다. 이후 약 5년간 정책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주로 국가 질병 정책 마련에 기여했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에는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 업무했지만, 대응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정 본부장이 누구보다 예방과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사태 이후 책임 추궁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질병예방센터장, 긴급상황센터장을 역임하던 그는 2017년 7월 질본을 진두지휘할 본부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20년 넘게 질본서 근무하면서 내부 신망도 두텁다. 이혜은 질본 주무관은 “코로나19 발병 이후로 내부서 본부장에 대한 신임이 두터워졌다”며 “질본서만 20년 넘게 있었기 때문에 기관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 본부장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정기회의와 영상회의를 진행한다.
 

질본 관계자는 “본부장께서 관련 회의와 후속 대책 등을 마련하기 위해선 24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긴급상황센터서 확진 환자 현황 파악과 지자체, 유관기관과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수면시간은 새벽 2시 이후부터 오전 6시 사이로 알려졌으며 식사는 배달된 도시락이다.

올해 기준으로 질본 인력은 866명이다. 현재 컨트롤타워인 질본은 24시간 비상 체제로 운영되면서 현황 파악과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질본은 도심과는 외진 청주시 오송읍에 위치해 대부분의 직원과 연구진이 본부 내부나 인근 숙소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 질병관리본부를 외청으로 분리해 독립적 권한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은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에도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조직축소와 업무혼선 등을 우려하는 상급기관 보건복지부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예방 전문가
리더십 주목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질병관리청’ 논의에 탄력이 붙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 공약으로 이를 제시했다. 제1야당 미래통합당도 질병관리본부 격상 필요성에 공감하며 총선 공약으로 내놨다.

특히 정세균 국무총리는 4일 대구시청 기자간담회서 “세계 일류 수준의 방역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의 독립 기구화는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의 승격 문제는 총선 이후 새로 구성될 21대 국회서 여야가 관련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합의만 하면 쉽사리 성사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시나 관건은 복지부의 반대다.

2004년 1월 출범한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은 국립보건원이다. 2003년 상반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질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함에 따라 전염병 관리를 위한 ‘질병 콘트롤타워’ 구축 필요성이 커지면서 국립보건원이 확대·개편됐다.

메르스 사태 이후에는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장을 실장급서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복지부의 반대가 강했다.


정진엽 당시 복지부장관은 “청으로 독립했을 때의 장점도 물론 있다”면서도 “복지부에는 유관기관이 굉장히 많아 긴밀한 협조를 구해야 한다. 처음부터 청으로 독립해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협조와 지원이 가능한 동시에 간섭을 배제한 기구로 만드는 데 대한 고민이 많았다. 고민 끝에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있는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협조와 지원을 하되 간섭하는 것은 철저히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질병관리 한 우물… 메르스 때 좌절도
차기 청창?…‘외청 분리’ 주장 제기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직후 정부조직 개편 당시 여당서 질병관리본부 승격에 대한 움직임이 다시 일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2017년 6월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현 행정안전위원회) 소관이었다. 국회 복지위는 “질병관리본부가 복지부 소속기관이라는 특성상 여전히 자율성이 부족하고 정책수립 과정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질병관리청 개정안을 적극 반영해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하지만 안행위 법안 심의 과정서 질병관리청으로의 승격은 무산됐다. 마찬가지로 복지부의 반대가 거셌다. 정춘숙 의원은 “복지부가 질병관리청 승격에 동의하지 않는다. 반대로 인해 법안처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도 복지부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지난 2일 브리핑서 “청으로의 분리·독립이라는 원칙으로 인해 자칫 보건당국과 방역당국의 유기적 협조 측면서 오히려 저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김 차관은 “위기 시 방역대책본부가 최대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체계와 기능을 보강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면서도 “의료자원 동원과 의료단체와의 협조가 원활히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최종 방침이 결정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핵심 ‘키’는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질병관리조직을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 의중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 관계자는 “청와대도 현재 상황에서 동의하는 일정 부분이 있다. 복지부가 이번에도 반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한편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일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5일 0시 기준으로 총 누적 확진자수는 5766명이며 이 중 88명이 격리해제 됐다고 밝혔다. 지난 4일 0시 기준보다 438명 증가한 수치며 2일 685명 이후 3일 600명, 4일 516명 등 감소하는 추세다.

언제 끝나나?
줄어드는 중

대구가 320명 늘어 4326명이, 경북은 87명 증가한 861명이 각각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경기가 9명 증가한 110명으로 대구·경북 다음으로 많았으며 서울은 4명 증가, 103명이다. 충남이 4명 늘어나 86명, 경남이 9명 늘어나 74명이 확진자로 집계됐다. 전국적으로 대구의 확진자 비중이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경북은 14.9% 등 대구·경북 확진자 발생 비율이 90% 가까이 된다. 35명이 사망해 치명률은 0.6%이며 여성 확진자가 3617명으로 62.7%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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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