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31)모순

자유로운 피안의 세계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균아!”

“네 스승님.”

“이왕에 나온 이야기이니 다시 한 번 말함세.”

이왕에 나온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에 잠겨들었다.

“박순 대감에 관한 이야기일세.”


“박순 대감이요.”

박순 대감

“그러이. 그분의 경우 얼마나 절개 곧고 마음이 올바른가. 그 모든 부패의 근원이었던 이량과 윤원형을 일거에 몰아내어 부패를 척결하였던 사람이 그 분 아니신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전 임금이었던 명종이 윤원형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 이량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량의 경우 윤원형보다 한 수 더 치고 들어갔다.


그를 기회로 자신의 세력을 견고히 하여 국정을 농단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 대는 그의 부정에 그 누구도 항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박순 대감이 나섰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의 청렴과 기개는 그 거대한 부패의 벽을 무너뜨렸고 마침내 그 일파를 조정에서 몰아냈다.  

“그런데 자네 가형은, 박순 대감의 본질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제자와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네. 어떻게 생각하면 자네 형의 스승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사람을 몰아내는데 앞장서지 않을 수 없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었다네.”

이버지와 박순 대감의 관계를 그려보았다.

두 분 다 나라를 위해서 한 치의 사심도 가지지 않으셨던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서로를 질시하고 반목했던 그 이면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커다란 모순이 숨어있었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행동을 해야 하는, 이른바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자네 형을 이리로 몰고 왔다네.”

“결국 그 집단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한다는 말씀이고 그래서 형님은 자유로운 피안의 세계를 갈구하여 지금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이, 균이.”  


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형의 심정을 헤아려보았다.

그 속에 자신의 스승인 손곡 이달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함께 그려지고 있었다.

“이보게, 아우.”

허균이 아우라는 소리에 허봉의 얼굴을 주시했다.

“자네 형을 바라보지 말게. 자네를 이름일세.”

허균이 급히 상체를 숙였다.


“당치 않으십니다, 스승님.”

사명당이 소리 내어 웃었다.

“스승이라니 실은 그 말이 당치 않은 말일세. 내가 그대의 스승이 될 수 있듯이 그대 또한 나의 스승이 될 수 있을 터, 그러니 스승이라는 말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리고 정작 중요한 사실은 자네가 허봉의 동생이 아니던가. 그러니 아우의 아우니 나에게도 아우가 되는 게지.”

“그래도…….”

“그건 그렇고, 정작 주의할 일은 균이 자넬세.”

“집단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한다”
거문고 소리에 시작되는 허난설헌 이야기

“네!”

“자네 형도 그러하지만 정작 자네의 거처할 곳 역시 그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특히 자네의 성정으로 보아 그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저의 성정이라시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 불끈불끈하는 성정 말일세. 그 판에서는 자네 성격은 아주 위태롭지.”

“하오시면.”

“하루빨리 속세의 일을 정리하고 피안의 세계에서 함께 놀아봄이 어떤가 이 말이네.”

“그 일이 형님 되시는 분과 마지막이셨군요.”

“일이 그렇게 되었지. 결국 형님이 구가하는 세계를 내가 근접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죽음의 세계로 다가가는 형님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소.”

말꼬리가 한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나리, 소녀가 한잔 올릴까요.”

매창의 안쓰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을 바라보며 허균이 잔을 기울였다. 그 잔을 내밀자 매창이 천천히 술을 따랐다.

“매창이, 그런데 말이오.”

“말씀하시지요.”

“스승이신 사명당이 나에게도 그리로 오라고 한 말 말이오.”

“피안의 세계로 들어오시라던 말씀인가요.”

“그러이, 그 말을 이름일세.”

매창이 바짝 다가갔다.

“들어가시지 않으셨으니 소녀를 만난 것이 아닌지요.”

허균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이, 매창을 만나려고 내가 아직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일세.”

“아직이라 하시면.”

“언제고 돌아가야 할 일이지. 언제인가는.”

“돌아가실 때 소녀를 결코 모른 척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매창이!”

“네, 나리.”

“나를 위해 다시 거문고 타줄 수 있겠소.”

“물론이옵니다, 나리. 언제고 듣고 싶으시면 말씀해주시어요. 원하신다면 언제라도…….”

얼굴색이 살짝 붉어진 매창이 다시 거문고를 자신의 앞으로 당겼다.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허균의 얼굴을 주시했다.

“어떤 곡으로 잡을까요.”

허균이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대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잡아주오. 이번에는 내 누나와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낼 터이니 말이오.”

“누나라 하시면, 허난설헌?”

“그렇소. 초희 누나에 관해서요.”

매창이 바짝 긴장 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순간 무서운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허균의 아버지의 경우도 그랬지만 그의 형인 허봉 또 그의 누나인 허난설헌의 경우도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이어갔다.

누나에 관해

매창이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마음을 추슬렀다.

거문고의 줄을 살짝 튕겨보았다.

조금은 높은 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가 아닌 듯했다.

다시 줄을 튕겼다.

이번에는 너무나 가라앉은 듯했다.

매창이 다시 한 번 가벼이 호흡하고는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하늘의 달빛이 시샘하듯 열린 창문을 통해 매창의 얼굴위로 스며들고 있었다.

매창의 얼굴을 바라보며 매창의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허균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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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