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다단 ’퍼시스그룹 승계 작전 막전막후

깎고 다듬어 대물림 마침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퍼시스그룹의 승계 작업이 한창인 모양새다. 그 발판은 차츰 선명해지는 듯하다. 창업주의 퇴진으로 2세 경영은 시간 문제인 상황. 2세 승계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게 될까.
 

사무용 가구업체 퍼시스의 창업주 손동창 명예회장은 지난해 정기 임원 인사서 회장직을 내려놨다. 그는 임원인사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손 명예회장은 지난 1983년 퍼시스의 모태인 한샘공업주식회사를 설립, 사무용 가구 시장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빈자리는 이종태 퍼시스 부회장의 회장 승진으로 채워졌다.

회장 퇴진
2세 전면

손 명예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며 ‘2세 경영’의 본격화가 점쳐졌다. 주인공은 손 명예회장의 장남 손태희 퍼시스 부사장이다. 퍼시스는 여느 그룹처럼 지주회사를 정점에 뒀다. 퍼시스그룹은 5개의 주요 계열사로 구성돼있다. 세부적으로 ▲퍼시스 ▲시디즈 ▲퍼시스홀딩스 ▲일룸 ▲바로스 등이다. 차례로 2개 상장사와 3개 비상장사다.

갈래는 두 개로 나뉜다. 손 명예회장은 지주사 ‘퍼시스홀딩스’를, 손 부사장은 그룹 핵심사 ‘일룸’을 기준으로 이하 계열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선 손 명예회장은 퍼시스홀딩스 최대주주다. 그는 80.51%의 지분을 쥐고 있다. 나머지는 자기주식과 손 부사장으로 채워져 있다.

퍼시스홀딩스는 퍼시스의 지분 32.17%를 소유하고 있다. 주주들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이다. 퍼시스홀딩스와 손 명예회장(16.70%) 등 특수관계인들의 지분 합은 절반이 넘는다. 종합해보면 ‘손 명예회장→퍼시스홀딩스→퍼시스’의 구조다.


손 부사장은 일룸 지분 29.11%를 갖고 있다. 손 명예회장의 장녀 손희령씨에게도 9.60%의 지분이 있다. 지분의 나머지는 의결권이 없는 일룸의 자기주식이다. 
일룸은 ‘시디즈’의 최대주주(40.58%)다. 또 ‘바로스’의 최대주주(55.00%)이기도 하다. ‘손 부사장→일룸→시디즈·바로스’의 형태다.

퍼시스그룹의 구조가 애초부터 두 갈래로 나뉜 것은 아니다. 그룹은 다소 복잡한 지배구조 개편 과정을 밟았다.

사무 가구업체 2세 경영 본격화
회장 부자 두 축으로 그룹 지배

과거 퍼시스그룹의 정점에는 ‘시디즈’가 있었다. 당시 손 명예회장은 시디즈를 꼭대기에 두고 그룹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6년 시디즈는 일룸 지분 45.84%를 이익 소각(기업이 이익잉여금으로 자기주식을 취득해 일정 기간 내 자기주식을 소각하는 것)했다. 절반에 가까운 지분이 소각되면서 손 부사장은 29.11%로 일룸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듬해인 2017년 시디즈는 ‘팀스’의 지분(40.58%)을 일룸에 모두 매각했다. 시디즈는 지난해 주 종목인 의자사업을 팀스에 팔았고, 사명을 퍼시스홀딩스로 교체해 지주사 역할을 맡았다. 팀스는 간판을 시디즈로 변경했다.
 

지난해 일룸은 퍼시스그룹 물류·시공 회사 바로스 지분 55%를 매수했다. 지분 취득 배경은 이렇다. 바로스는 손 명예회장이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손 명예회장은 이를 손 부사장에게 증여했고, 손 부사장은 해당 지분 가운데 55%를 일룸에 매각한 것이다.

손 명예회장과 손 부사장의 두 갈래 가운데 주축은 손 부사장 쪽이다. 손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일룸은 퍼시스그룹의 ‘캐시카우’로 꼽힌다. 일룸은 국내서 브랜드 인지도가 꽤 높은 가정용 가구업체다. 회사는 지난 5년간 그야말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일룸의 지난 2014∼2018년 매출은 994억원서 1315억원, 1555억원, 1923억원을 지나 2224억원에 등극하는 등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렸다. 영업이익도 만만치 않다. 같은 기간 일룸은 453억원을 시작으로 607억원, 719억원, 864억원, 1028억원 등의 이익을 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5년 전에 비해 100% 이상씩 오른 셈이다.

지분 처분
구조 구축

의자가구 제조업체 시디즈의 성장세도 매섭다. 시디즈는 최근 3년간 99억원, 12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다가 지난해 140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동기간 4억원, 2억원의 손실을 냈지만 ‘1000억 매출’을 기록한 지난해 43억원의 이익을 냈다.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시디즈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146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58% 증가했다. 누적 영업이익은 7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55% 상승했다.

손 명예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퍼시스홀딩스는 퍼시스 지분을 꾸준히 매입했다. 지난해 5월 기준 퍼시스홀딩스의 퍼시스 지분은 30.77%였다. 이후 퍼시스홀딩스는 차츰 퍼시스 지분을 늘려가기 시작, 현재 32.17%까지 확대됐다.
 

퍼시스홀딩스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모두 11만1671주를 사들였다. 세부적으로 ▲2018년 5월 8898주 ▲6월 1만471주 ▲7월 1만5132주 ▲8월 1만1637주 ▲ 9월 1만4463주 ▲10월 1만5765주 ▲11월 3만2878주 ▲12월 2427주 등이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퍼시스홀딩스는 지난 1월부터 이번 달까지 모두 5만820주를 확보했다. ▲1월 6565주 ▲2월 3457주 ▲3월 1972주 ▲7월 624주 ▲8월 4005주 ▲9월 4510주 ▲10월 1만3687주 ▲11월 8000주 ▲12월 8000주 등이다.

지분 매입
승계 위해?

일각에선 이를 두고 손 명예회장의 승계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손 명예회장은 퍼시스홀딩스의 최대주주로 ‘손 명예회장→퍼시스홀딩스→퍼시스’ 구조의 가장 상부에 위치해 있다. 퍼시스홀딩스의 퍼시스 지분 매입으로 퍼시스에 대한 손 명예회장의 장악력도 높아지게 된다.

반면 해당 영역서 손 부사장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손 부사장의 퍼시스홀딩스 지분은 채 1%가 되지 않는다. 결국 손 명예회장이 지주사 지분을 손 부사장에게 증여할 경우, 경영권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양될 공산이 크다.

또 ‘손 부사장→일룸→시디즈·바로스’의 구조가 형성돼있는 만큼 손 부사장이 손 명예회장의 갈래만 이어 받는다면, 안정적으로 승계 작업을 매듭지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계열사 지분 처분 등을 통한 지배구조 변경으로 뒷말이 계속되고 있다.
 

▲ 퍼시스 공장

퍼시스는 그룹 핵심사 일룸 등과 마찬가지로 ‘호실적’을 내고 있다. 최근 3년간 퍼시스의 매출액은 2316억원, 2894억원, 3156억원 등으로 증가세를 보인다. 영업이익도 168억원, 230억원, 277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231억원, 220억원에서 455억원으로 크게 개선됐다.


올해 실적은 관망세다. 퍼시스의 3분기 누적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207억원, 155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각각 4.9%, 25.7% 감소한 수치다. 누적 분기 순이익의 경우 275억원으로 1.6% 소폭 줄었다.

꾸준한 지분 매입 승계 위한 포석?
문어발 구조 개편…무게는 장남에게 

손 부사장이 2세 경영의 막을 열면서 향후 경영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손 부사장은 그룹 사업 가운데 미래 먹거리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손 부사장은 사업 관련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의 관심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게 되면서 업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퍼시스는 디지털 기반 운송 스타트업 ‘로지스팟’과 계약했다. 로지스팟은 자체 개발한 운송 플랫폼 기반 B2B 통합운송관리 서비스를 제공, 200개 이상의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기존 물류업체에서 담당하던 사업 부문을 스타트업에 넘긴 셈이다.

퍼시스는 아파트 리모델링 스타트업 ‘아파트멘터리’에 투자했다. 퍼시스그룹은 아파트멘터리와 전략적 투자 이후 첫 공동 프로젝트를 실제로 선보였다. 이들은 대규모 신규 입주를 앞둔 아파트의 실제 평형 모델을 쇼룸으로 재현했다. 스타트업과의 사업 구상은 손 부사장이 직접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 부사장은 지난 2010년 퍼시스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약 6년 만에 퍼시스 정기인사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손 부사장은 병원 시스템 가구 브랜드 ‘퍼시스케어’의 해외 인증 및 영업 관련 업무 등을 맡은 바 있다. 이 외에도 그룹 계열사 등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퍼시스는 일룸과 시디즈의 성장으로 묵직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저성장 국면에 빠진 국내 제조업체와 비교했을 때 재무적 안정성이 돋보인다는 분석이다.

지휘봉
어디로?

정홍식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9월30일 “퍼시스의 내수 부문 실적이 안정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관계사인 일룸과 시디즈로 공급 규모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퍼시스의 순현금은 2014년 1120억원, 2015년 1210억원, 2016년 1391억원, 2017년 1575억원, 2018년 2013억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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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