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원수' 칭호 받은 김정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7.23 10: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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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대장' 딱지 떼고 북한 절대권력 손에 넣나?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북한 권력판도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꼬마대장' 딱지를 달고 있던 김정은이 북한에서 6번째 원수 칭호를 받은 것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지 딱 7개월 만이다. 김정은은 이날 발표가 나기 전까지 원수보다 두 단계가 낮은 대장 칭호를 쓰고 있었다. 단번에 두 계급이나 특진한 셈이다. 이것으로 김정은은 북한 내에서 1인자 자리를 굳히고 향후 내각은 김정은 체제로 대대적 개편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아들로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까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후계자로 거론된 이후로도 그의 행보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일요시사>는 김정은의 과거사를 주목해봤다.

지난 18일 12시 <조선중앙통신>, <평양방송> 등 북한매체는 중대보도를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이날 결정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의로 나온 것으로 김정은이 당과 군을 통제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앞서 지난 15일 군부 최고실세인 이영호(70)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과 이틀 뒤 현영철의 차수 승진에 이어 속전속결로 원수자리까지 꿰차 본격적으로 김정은의 절대권력 체제가 견고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수 칭호는 큰 의미
진정한 최고지도자 반열

이번 김정은의 원수 칭호 수여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오진우·최강 전 인민무력부장, 혁명1세대 이을설에 이어 역대 6번째다. 김일성은 1953년 2월 처음으로 원수 칭호를 받았고 1992년 대원수로 추대된 뒤 1994년 7월 사망했다. 김정일은 1992년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원수 칭호를 받고 지난해 사망 후로도 원수 계급을 유지해오다 올해 2월15일에 이르러서야 대원수로 추대 받았다. 그리고 오진우·최광 전 인민무력부장은 각각 1992년과 1995년 원수에 올랐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원수 칭호를 받은 인물은 혁명 1세대로서 1995년 원수 칭호를 받은 이을설에 김정은이 합류하여 2명이다. 이을설은 항일빨치산 활동 당시 소년경호원으로 활약했고 1983년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냈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는 김정은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자리를 굳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원수 칭호는 상징적인 의미가 굉장히 크다. 원수 칭호 받았다는 것은 최고지도자로서 갖춰야 하는 것은 다 갖췄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후계자로 선정되기 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원수 칭호까지 단번에 거머쥔 김정은. 그는 누구이며 북한체제 내에서 어떤 존재일까?


저택에 음악단원 상주시키며 호화로운 생활 즐겨
김정일은 어린 김정은을 왜 후계자로 점찍었을까?

7개월 전 타개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은 1983년 평북 창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군복을 입고 자랐고 평양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김정은의 신장은 175㎝, 몸무게는 90㎏으로 추정되며, 20대임에도 고혈압과 당뇨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며 결혼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은 큰형인 정남과 작은형 정철에 가려 베일에 싸여 있었다. 관련 소식이 그나마 외부에 알려진 것은 1996년 여름부터 2000년 가을까지 김정철과 함께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에서 유학하면서부터이다. 동창생들은 김정은이 미국프로농구(NBA)의 팬이었으며 수학을 잘했고, 영어·독일어 등 외국어도 제법 능통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김정일의 아들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김정은은 "자본주의에 물들면 안 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학교와 집을 오가며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택 안에 음악단원들을 상주시키다시피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으며 미성년자 시절부터 술·담배를 즐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국 후 2002년부터 2007년 4월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5년제) 특설반에서 군사학을 극비리에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선발된 교수진이 김정은의 얼굴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 특수유리를 사이에 두고 강의했다는 설도 있다. 또 2005년부터 2년 정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로부터 철학, 역사, 경제학 분야의 개입교습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포병과를 졸업한 김정은은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포사격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

김정은은 조부 김일성의 성격과 외모를 빼닮아 어릴 적부터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아버지 김정일은 김정은이 7살 때 호화 별장에서 벤츠600을 운전하게 했고, 셋째부인인 고영희가 자리를 비우면 김정철 대신 자신의 옆자리에서 식사하게 할 정도로 편애가 심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일 총애 한몸에
형들 제치고 정상 올라


김정은은 대학 졸업 후 돌연 종적을 감추는데, 이때는 후계순위가 수면위로 떠오르지는 않았던 시점이었다. 정치적 야심이 강했던 김정은은 장남이자 이복형인 김정남에 대한 견제심리도 강했다고 한다. 일례로 2004년 11월에는 노동당 작전부 공작원을 동원해 오스트리아에서 형 정남을 암살하려다 현지 정보기관에 의해 제지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북한 최고지도부 내에서 후계자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결국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김정은이 후계자로 최종 결정되었고 2009년 1월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김정은이 알려졌다. 그리고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며 북한 매체에 전격 등장했다. 당시 김정일은 김정은의 생일인 1월8일에 맞춰 그를 후계자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결정을 담은 교시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하달하면서 후계를 둘러싼 혼선이 정리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시점은 이보다 훨씬 앞선 2006년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군이 지난해 5, 6월경 배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외비 문건인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에 "2006년 12월24일 김정은 대장 동지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졸업증서가 기여된 자리에서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빛나게 이으실 것을 바라시었다"라고 언급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이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돼 후계수업을 받다가 2008년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쓰러진 뒤 짧은 시간에 후계자로 결정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리더십 남다르지만
포악한 면모도 있어

한때 김정일과 성혜림(2002년 사망)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이 후계자로 지목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01년 여성 2명과 디즈니랜드에 가기 위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되는 등 기행이 알려지면서 권력에서 차츰 멀어졌다. 현재 김정남은 북한을 떠나 중국 마카오와 베이징 등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2000년대 초까지는 후계자로 차남 김정철이 거론되기도 했다. 김정은이 그를 제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김정은이 형인 김정철보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에서 앞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압도적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김정남보다 나이가 어린 김정은을 총애하여 형제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그의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를 통해 권력욕과 리더십이 남다른 김정은이 차기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당 간부들을 무차별 해고하는 등 포악한 면모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강한 면모 외에 세심함도 갖췄다고 적고 있다. 지난 2000년 7월 김정일 일가와 백두산에 올랐을 때 마실 맥주가 떨어져 무심코 김정은에게 이야기 했더니 며칠 후 김정은이 직접 방으로 찾아와 주머니에서 하이네켄 맥주를 두 병 꺼내 내밀었다는 것이다.

과거 '샛별장군'으로 불렸던 김정은은 후계자 결정 이후부터 '김대장' 혹은 '청년대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2009년 4월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만 붙는 '친애하는'이라는 수식어가 김정은에게도 붙게 됐으며, 같은 시기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인 '발걸음'이 북한 전역에 보급되기도 했다.

김정은의 '업적 쌓기'도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후계자가 되고 원수 칭호까지 부여받기 위해선 '업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로는 김정일을 따라다니며 거의 모든 공개활동을 수행하였고, 특히 군사분야에서 김정일을 각별히 보좌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지난해 5월 시행된 '150일 전투',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4월15일)을 기념해 평양 대동강변에서 펼쳐진 '축포야회'(불꽃놀이) 등이 모두 김정은의 작품이라고 주민들에게 은연중에 선전됐다는 것이 북한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또 북한은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1966년 이후 44년 만에 개최한 노동당대표자회를 통해 권력지도를 통째로 바꿨다. '김정은 시대'의 본격 진입을 앞두고 대대적인 교체·보완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리스마와 리더십 두 형들 압도…권력욕도 강해
"어머니 누구?"…베일에 싸인 출생의 비밀 아킬레스건

김정은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출생의 비밀이다. 외부에는 김정은의 생모가 김정일의 셋째부인 고영희(2004년 작고)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넷째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김정은은 김옥의 아들이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일의 정부인은 김영숙 1명뿐이고 고영희 김옥 모두 동거녀(첩)일 뿐이기 때문에 모계의 정통성은 취약하다.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은 김일성의 정부인으로서 '백두산 3대 장군'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에서 권력핵심으로 부상하면 모든 노동당원이 먼저 묻게 되는 것이 '노동당에 언제 입당했고, 현직은 무엇이며, 부모는 누구냐'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당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띄우려면 모친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그러면 김정일의 복잡한 사생활을 언급해야 하는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고영희와는 1976년부터, 김옥과는 2006년부터 동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1983년생인 김정은의 생모가 김옥이라면 김정일은 부인 김영숙과 동거녀 고영희를 둔 상태에서 당시 19세였던 제3의 여인 김옥을 통해 아이를 낳은 셈이 된다.

대북 소식통은 "당에서 김정은의 초상화 1000만 장을 찍어놓고도 못 돌리는 것이 모친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체제의 앞날에 대해서는 외국에서 유학한 김정은이 서방문화에 익숙한 만큼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개혁 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작년 6월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이 최종 결렬되고, 남측에서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자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조차 하지 않겠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특히 김정은 체제를 수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부결속을 위해서인지 대남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새로운 후계자가 확립되는 기간에는 강경한 자세를 보여 왔다.

김정은 체제
남북관계는?


다만 북한이 북미·남북대화 병행기조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로  김정은은 첫 연설에서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과 인내성 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정권 변화 후 남북대화에 나설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는 대화의 뜻을 접었지만 2013년에 들어설 새로운 정권과는 여당이 재집권하든, 야당이 집권하든 관계없이 남북대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남북대화는 6자회담 재개와 남측 새로운 정부의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인정, 이행여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주요 프로필>

·1983년 1월8일 출생 (1981년이나 1982년, 1984년생이라는 주장도 있음)
·북한에서 인민학교(초등학교) 다닌 기록 없음
·1996년 여름~2001년 1월 스위스 베른에서 공립 중·고등학교 유학
·2001년 귀국
·2002년~2006년 12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과 졸업
·2009년 1월 김정은 후계자 내정설 처음 나돔
·2009년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선설
·2009년 6월 국정원 "북한이 김정은의 후계자 선정 사실 해외 공관 전파" 국회 보고
·2009년 6월 국정원 "김정은 우상화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김정일 현지지도 수시 동행"
·2010년 9월 대장 칭호 수여
·2012년 7월 원수 칭호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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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