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원수' 칭호 받은 김정은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7.23 10: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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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대장' 딱지 떼고 북한 절대권력 손에 넣나?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북한 권력판도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꼬마대장' 딱지를 달고 있던 김정은이 북한에서 6번째 원수 칭호를 받은 것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지 딱 7개월 만이다. 김정은은 이날 발표가 나기 전까지 원수보다 두 단계가 낮은 대장 칭호를 쓰고 있었다. 단번에 두 계급이나 특진한 셈이다. 이것으로 김정은은 북한 내에서 1인자 자리를 굳히고 향후 내각은 김정은 체제로 대대적 개편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아들로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까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후계자로 거론된 이후로도 그의 행보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일요시사>는 김정은의 과거사를 주목해봤다.

지난 18일 12시 <조선중앙통신>, <평양방송> 등 북한매체는 중대보도를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이날 결정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의로 나온 것으로 김정은이 당과 군을 통제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앞서 지난 15일 군부 최고실세인 이영호(70)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과 이틀 뒤 현영철의 차수 승진에 이어 속전속결로 원수자리까지 꿰차 본격적으로 김정은의 절대권력 체제가 견고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수 칭호는 큰 의미
진정한 최고지도자 반열

이번 김정은의 원수 칭호 수여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오진우·최강 전 인민무력부장, 혁명1세대 이을설에 이어 역대 6번째다. 김일성은 1953년 2월 처음으로 원수 칭호를 받았고 1992년 대원수로 추대된 뒤 1994년 7월 사망했다. 김정일은 1992년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원수 칭호를 받고 지난해 사망 후로도 원수 계급을 유지해오다 올해 2월15일에 이르러서야 대원수로 추대 받았다. 그리고 오진우·최광 전 인민무력부장은 각각 1992년과 1995년 원수에 올랐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원수 칭호를 받은 인물은 혁명 1세대로서 1995년 원수 칭호를 받은 이을설에 김정은이 합류하여 2명이다. 이을설은 항일빨치산 활동 당시 소년경호원으로 활약했고 1983년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냈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는 김정은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자리를 굳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원수 칭호는 상징적인 의미가 굉장히 크다. 원수 칭호 받았다는 것은 최고지도자로서 갖춰야 하는 것은 다 갖췄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후계자로 선정되기 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원수 칭호까지 단번에 거머쥔 김정은. 그는 누구이며 북한체제 내에서 어떤 존재일까?


저택에 음악단원 상주시키며 호화로운 생활 즐겨
김정일은 어린 김정은을 왜 후계자로 점찍었을까?

7개월 전 타개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은 1983년 평북 창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군복을 입고 자랐고 평양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김정은의 신장은 175㎝, 몸무게는 90㎏으로 추정되며, 20대임에도 고혈압과 당뇨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며 결혼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은 큰형인 정남과 작은형 정철에 가려 베일에 싸여 있었다. 관련 소식이 그나마 외부에 알려진 것은 1996년 여름부터 2000년 가을까지 김정철과 함께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에서 유학하면서부터이다. 동창생들은 김정은이 미국프로농구(NBA)의 팬이었으며 수학을 잘했고, 영어·독일어 등 외국어도 제법 능통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김정일의 아들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김정은은 "자본주의에 물들면 안 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학교와 집을 오가며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택 안에 음악단원들을 상주시키다시피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으며 미성년자 시절부터 술·담배를 즐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국 후 2002년부터 2007년 4월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5년제) 특설반에서 군사학을 극비리에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선발된 교수진이 김정은의 얼굴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 특수유리를 사이에 두고 강의했다는 설도 있다. 또 2005년부터 2년 정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로부터 철학, 역사, 경제학 분야의 개입교습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포병과를 졸업한 김정은은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포사격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

김정은은 조부 김일성의 성격과 외모를 빼닮아 어릴 적부터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아버지 김정일은 김정은이 7살 때 호화 별장에서 벤츠600을 운전하게 했고, 셋째부인인 고영희가 자리를 비우면 김정철 대신 자신의 옆자리에서 식사하게 할 정도로 편애가 심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일 총애 한몸에
형들 제치고 정상 올라


김정은은 대학 졸업 후 돌연 종적을 감추는데, 이때는 후계순위가 수면위로 떠오르지는 않았던 시점이었다. 정치적 야심이 강했던 김정은은 장남이자 이복형인 김정남에 대한 견제심리도 강했다고 한다. 일례로 2004년 11월에는 노동당 작전부 공작원을 동원해 오스트리아에서 형 정남을 암살하려다 현지 정보기관에 의해 제지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북한 최고지도부 내에서 후계자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결국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김정은이 후계자로 최종 결정되었고 2009년 1월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김정은이 알려졌다. 그리고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며 북한 매체에 전격 등장했다. 당시 김정일은 김정은의 생일인 1월8일에 맞춰 그를 후계자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결정을 담은 교시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하달하면서 후계를 둘러싼 혼선이 정리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시점은 이보다 훨씬 앞선 2006년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군이 지난해 5, 6월경 배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외비 문건인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에 "2006년 12월24일 김정은 대장 동지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졸업증서가 기여된 자리에서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빛나게 이으실 것을 바라시었다"라고 언급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이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돼 후계수업을 받다가 2008년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쓰러진 뒤 짧은 시간에 후계자로 결정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리더십 남다르지만
포악한 면모도 있어

한때 김정일과 성혜림(2002년 사망)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이 후계자로 지목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01년 여성 2명과 디즈니랜드에 가기 위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되는 등 기행이 알려지면서 권력에서 차츰 멀어졌다. 현재 김정남은 북한을 떠나 중국 마카오와 베이징 등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2000년대 초까지는 후계자로 차남 김정철이 거론되기도 했다. 김정은이 그를 제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김정은이 형인 김정철보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에서 앞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압도적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김정남보다 나이가 어린 김정은을 총애하여 형제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그의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를 통해 권력욕과 리더십이 남다른 김정은이 차기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당 간부들을 무차별 해고하는 등 포악한 면모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강한 면모 외에 세심함도 갖췄다고 적고 있다. 지난 2000년 7월 김정일 일가와 백두산에 올랐을 때 마실 맥주가 떨어져 무심코 김정은에게 이야기 했더니 며칠 후 김정은이 직접 방으로 찾아와 주머니에서 하이네켄 맥주를 두 병 꺼내 내밀었다는 것이다.

과거 '샛별장군'으로 불렸던 김정은은 후계자 결정 이후부터 '김대장' 혹은 '청년대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2009년 4월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만 붙는 '친애하는'이라는 수식어가 김정은에게도 붙게 됐으며, 같은 시기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인 '발걸음'이 북한 전역에 보급되기도 했다.

김정은의 '업적 쌓기'도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후계자가 되고 원수 칭호까지 부여받기 위해선 '업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로는 김정일을 따라다니며 거의 모든 공개활동을 수행하였고, 특히 군사분야에서 김정일을 각별히 보좌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지난해 5월 시행된 '150일 전투',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4월15일)을 기념해 평양 대동강변에서 펼쳐진 '축포야회'(불꽃놀이) 등이 모두 김정은의 작품이라고 주민들에게 은연중에 선전됐다는 것이 북한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또 북한은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1966년 이후 44년 만에 개최한 노동당대표자회를 통해 권력지도를 통째로 바꿨다. '김정은 시대'의 본격 진입을 앞두고 대대적인 교체·보완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리스마와 리더십 두 형들 압도…권력욕도 강해
"어머니 누구?"…베일에 싸인 출생의 비밀 아킬레스건

김정은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출생의 비밀이다. 외부에는 김정은의 생모가 김정일의 셋째부인 고영희(2004년 작고)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넷째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김정은은 김옥의 아들이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일의 정부인은 김영숙 1명뿐이고 고영희 김옥 모두 동거녀(첩)일 뿐이기 때문에 모계의 정통성은 취약하다.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은 김일성의 정부인으로서 '백두산 3대 장군'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에서 권력핵심으로 부상하면 모든 노동당원이 먼저 묻게 되는 것이 '노동당에 언제 입당했고, 현직은 무엇이며, 부모는 누구냐'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당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띄우려면 모친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그러면 김정일의 복잡한 사생활을 언급해야 하는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고영희와는 1976년부터, 김옥과는 2006년부터 동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1983년생인 김정은의 생모가 김옥이라면 김정일은 부인 김영숙과 동거녀 고영희를 둔 상태에서 당시 19세였던 제3의 여인 김옥을 통해 아이를 낳은 셈이 된다.

대북 소식통은 "당에서 김정은의 초상화 1000만 장을 찍어놓고도 못 돌리는 것이 모친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체제의 앞날에 대해서는 외국에서 유학한 김정은이 서방문화에 익숙한 만큼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개혁 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작년 6월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이 최종 결렬되고, 남측에서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자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조차 하지 않겠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특히 김정은 체제를 수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부결속을 위해서인지 대남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새로운 후계자가 확립되는 기간에는 강경한 자세를 보여 왔다.

김정은 체제
남북관계는?


다만 북한이 북미·남북대화 병행기조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로  김정은은 첫 연설에서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과 인내성 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정권 변화 후 남북대화에 나설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는 대화의 뜻을 접었지만 2013년에 들어설 새로운 정권과는 여당이 재집권하든, 야당이 집권하든 관계없이 남북대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남북대화는 6자회담 재개와 남측 새로운 정부의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인정, 이행여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주요 프로필>

·1983년 1월8일 출생 (1981년이나 1982년, 1984년생이라는 주장도 있음)
·북한에서 인민학교(초등학교) 다닌 기록 없음
·1996년 여름~2001년 1월 스위스 베른에서 공립 중·고등학교 유학
·2001년 귀국
·2002년~2006년 12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과 졸업
·2009년 1월 김정은 후계자 내정설 처음 나돔
·2009년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선설
·2009년 6월 국정원 "북한이 김정은의 후계자 선정 사실 해외 공관 전파" 국회 보고
·2009년 6월 국정원 "김정은 우상화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김정일 현지지도 수시 동행"
·2010년 9월 대장 칭호 수여
·2012년 7월 원수 칭호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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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