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속 장소를 찾아서 ②옥천 정지용문학관

우리가 떠나온 옛 고향 찾아가는 길

▲ 정지용 시인의 동상이 우뚝 선 정지용문학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년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불러봤을 노래 ‘향수’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였다. 이 노래 덕분에 정지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 반열에 올라섰고, 잊히고 사라진 고향 풍경이 우리 마음속에 다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옥천에 있는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마치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옥천 구읍의 실개천 앞에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다. 정지용문학관에서는 시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고, 시 낭송실서 그의 시를 목청껏 낭독할 수 있다.

▲ 옥천 구읍은 고향처럼 정겹다.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 곳은 옥천 구읍이다. 예전에는 옥천의 중심지였지만, 1905년 금구리 일대에 경부선 옥천역이 들어서며 시나브로 쇠락해 구읍이라 불린다. 구읍에 들어서면 가게는 낡았지만, 정지용의 시어를 사용한 세련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시 낭독

담배 가게에는 ‘오월 소식’ 중 “모초롬 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란 구절을 간판처럼 걸었다. 담배 가게 앞으로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지나간다. 왠지 고향 마을에 온 느낌이 들어 정겹다.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이란 시구가 떠오르는 정지용생가

실개천 옆에 자리한 초가지붕이 정지용 생가다. 생가 앞에는 ‘향수’ 시비가 있다.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자 세 칸 초가와 창고가 마주 본다. 소박한 마루에 앉아 향수를 떠올린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이란 구절처럼 정지용의 늙은 아버지가 방 안에 누워 있을 것 같다.

▲ 정지용생가의 안방

안방에는 동시 ‘호수’가 걸려 있다. 정지용의 많은 시 중에 동시는 짧고 아름다운 시어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호수는 절창이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 만하니 눈 감을 밖에.”

▲ 생가에서 나오면 황국신민서사비를 밟고 지난다.

생가 바로 옆에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방향으로 나오면 긴 돌이 보인다. ‘청석교’라 부르는 이 돌에 얽힌 사연이 깊다. 이 돌은 1940년대 축향국민학교에 있던 황국신민서사비다.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우리들은 인고 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라는 구절이 적힌 비석으로, 학생들은 조회 시간마다 이 구절을 외쳤다고 한다.

아픈 역사가 담긴 비석을 꾹 밟고 지나가면 커다란 정지용 동상이 반긴다.

▲ 정지용문학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향수〉가 적힌 액자가 반긴다.

단층 건물인 정지용문학관은 크게 전시실과 문학 체험 공간으로 나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소곳이 앉은 정지용 밀랍인형이 보인다. 정지용과 기념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이다. 전시실로 들어서니 붓글씨로 향수를 적은 액자가 눈에 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볼수록 고향의 전경이 떠오른다. 마치 내 고향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 정지용의 생애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정지용 시인과 그의 시대’ 안내판

‘정지용 시인과 그의 시대’ 안내판은 정지용의 생애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정지용은 1902년에 태어나 열두 살에 결혼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향수’ ‘고향’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내놓으며 조선 문단의 대표 시인으로 떠올랐다.

▲ 정지용이 후배 조지훈에게 보낸 편지 사본

정지용은 빼어난 후배 시인을 발굴한 〈문장〉 심사 위원으로도 유명하다.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이상을 추천해 등단시켰다. 정지용이 조지훈 시인에게 보낸 편지 사본에서 그의 소탈한 인간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보고 스승이란 말슴이 만부당하오나 구지 스승이라 부르실 바에야 스승 못지않은 형 노릇마자 구타여 사양할 것이 아니오매 이제로 내가 형이로라 거들거리며 그대를 공경하오리다….” 당시 조지훈은 ‘고풍의상’으로 1회, 그 유명한 ‘승무’로 2회, ‘봉황수’로 3회 추천 받아 등단했다. 세 편은 지금까지 조지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정지용의 생애·문학 세계를 한 눈에
시어를 사용한 마을의 세련된 간판들

정지용의 작품을 전시한 곳에서 귀한 초판본 시집을 만난다. 〈백록담〉의 빛바랜 사슴 그림 표지를 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정지용문학관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시설은 시 낭송실이다. 노래방 같은 공간서 마이크를 잡고 향수, 백록담, 유리창 1, 고향, 홍시 등 시인의 명작을 낭랑하게 읽어볼 수 있다.

▲ 정지용의 초판본 시집과 산문 등을 모은 전시 ▲ 금강과 정지용의 시가 어우러진 장계국민관광지

정지용문학관서 나오면 장계국민관광지로 가자. 금강이 흐르는 낙후된 유원지를 옥천군이 ‘멋진신세계’로 꾸몄다. 멋진신세계는 정지용의 시 세계를 공간적으로 해석한 공공 예술 프로젝트다. 여러 작가가 시를 모티프로 참여해 시와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을 만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모단광장’이 반긴다. 모단광장은 원고지 한 장을 건물과 광장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모단광장서 아래로 내려오면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창’ ‘유리병’ ‘오월 소식’ 등이 기다린다. 모두 정지용의 시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시와 미술의 만남이 신선하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르면 불쑥 금강의 풍경이 나타난다. 억새와 갈대가 바람에 날리니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긴다.

▲ 추소정에서 바라본 부소담악

다음에는 수려한 금강 풍경이 펼쳐지는 부소담악(赴召潭岳)을 만날 차례다. 장계국민관광지 서쪽으로 20분쯤 가면 소옥천이 금강과 합류한 곳에 있다. 부소담악은 물 위에 솟은 기암절벽으로,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일부가 물에 잠겼다. 부소담악을 보려면 추소정으로 가야 한다.

추소리 ‘서낭재가든’서 700m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언덕 위 추소정에 오르면 시야가 넓게 열린다. 앞쪽으로 야트막한 능선이 악어처럼 웅크린 모습이 보인다. 능선이 강물과 만나는 절벽이 부소담악이지만, 물이 차서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강물과 능선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 옥천 제일의 일출 명소로 알려진 용암사 ▲ 용암사 운무대에서 바라본 옥천 일대 풍경

일출 명소 ‘용암사’

옥천 여행의 마무리는 ‘용암사’가 제격이다. 용암사는 미국 CNN이 한국의 일출 명소로 꼽았지만, 꼭 일출이 아니라도 볼만하다. 절 뒤쪽으로 데크를 따라 오르면 운무대가 나온다. 운무대에 서면 옥천 일대가 너른 분지에 들어앉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장관이다. 마침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정지용생가→정지용문학관→장계국민관광지→부소담악→용암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정지용생가→정지용문학관→장계국민관광지→부소담악→용암사→장령산자연휴양림
둘째 날: 금강유원지→둔주봉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옥천군 문화관광 http://tour.oc.go.kr
- 정지용생가·정지용문학관 www.oc.go.kr/jiyong/index.do 

문의 전화  
- 옥천군청 문화관광과 043)730-3114
- 정지용생가·정지용문학관 043)730-3408
- 용암사 043)732-1400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 서울역-옥천역, 무궁화호 하루 12회(05:56~21:50) 운행, 약 2시간15분 소요. 옥천역에서 시내버스종점차고지 정류장까지 약 150m 이동, 610번 농어촌버스 이용, 옥향아파트 정류장 하차. 정지용생가까지 도보 약 370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옥천 IC→옥천IC사거리에서 보은·대전 방면 좌회전→구읍삼거리에서 구읍 방면 11시 방향→정지용생가·정지용문학관 방면 우회전→정지용생가·정지용문학관

숙박 정보
- 장령산자연휴양림: 군서면 장령산로, 043)730-3496, www.oc.go.kr/jrhuyang
- 리베라모텔: 옥천읍 성왕로, 043)731-8712
- 명가모텔: 옥천읍 성왕로, 043)733-7744branch5 


식당 정보
- 대박집(생선국수·도리뱅뱅이): 옥천읍 성왕로, 043)733-5788, www.dbz.co.kr
- 이모네냄비백반삼겹살(냄비백반·삼겹살): 옥천읍 향수3길, 043)731-3233 
- 구읍할매묵집(메밀골패묵): 옥천읍 향수길, 043)732-1853
- 구읍식당(생선국수·도리뱅뱅이): 옥천읍 향수길, 043)733-4848

주변 볼거리
옥천 육영수생가, 이원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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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