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안국약품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대표이사는 불법 리베이트와 불법 임상시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하는 길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일각에선 회사 전체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안국약품은 눈 영양제 ‘토피콤에스’로 유명한 중견 제약사로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800억원대다. 창업주는 어준선 회장이다. 어 회장은 장남과 함께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어 회장이 80세가 넘는 고령인 점을 미뤄봤을 때, 실질적 회사 경영은 장남이 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00억대
중견 제약
안국약품은 올해 창업 60주년을 맞았다. 지난 9월3일 기념식이 있었지만 이날은 어 회장의 장남인 어진 부회장이 구속된 날이기도 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식품·의약조사부는 이날 어 부회장을 구속했다. 어 부회장은 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불법 임상시험을 한 혐의를 받았다.
안국약품은 관련 사안을 공시했다. 안국약품은 “어 부회장은 약사법 등 위반 혐의로 현재 구속돼 수사 중”이라며 “회사는 현재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정상적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19일 어 부회장은 구속적부심을 거쳐 석방됐다. 이튿날 검찰은 어 부회장을 비롯해 안국약품 관계자와 안국약품 법인을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미승인 임상시험을 하고, 비임상시험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어 부회장 등은 2016년 1월7일과 21일, 안국약품 중앙연구소 직원 16명에게 혈압강하제 약품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약품은 개발 중이었던 것으로, 실험은 투약 뒤 시간 경과에 따라 이뤄졌다.
이들은 연구소 직원 한 명당 20회씩 총 320회에 걸쳐 채혈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하 식약처) 승인도 받지 않았다. 어 부회장 등은 직원들의 피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창업 60주년, 잇단 악재 속 찜찜
직원 임상시험 이어 리베이트 재판
이들은 같은 해 6월22일과 29일에도 연구소 직원 12명에게 항혈전응고제를 투약했다. 어 부회장 등은 직원 한 명당 22회씩 모두 264회 체혈했다.
어 부회장 등은 시험 결과를 조작한 혐의도 받았다. 이들은 동물을 상대로 한 비임상시험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2017년 5월 항혈전응고제 개발 중 비임상시험서 결과를 얻는 데 실패했다. 비임상시험은 임상시험 전 단계다.
이들은 데이터를 조작, 비임상시험의 기존 시료 일부를 바꿔치기하고 재분석해 식약처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안국약품은 이번 사건과 별개로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어 부회장과 안국약품 관계자들은 의사들에게 80억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원에 출석했다.
첫 공판은 지난 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서 열렸는데 어 부회장은 혐의를 부인했다. 어 부회장과 공모해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 관계자 A씨는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반면 같은 혐의로 기소된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다.
어 부회장과 A씨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반박했다. 변호사는 “어 부회장은 공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전부 부인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또 현금 리베이트 금액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어 부회장이 A씨, B씨 등과 공모해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고 봤지만 금액이 다르다는 것이다.
임상시험
리베이트
공소장서 어 부회장의 현금 리베이트 금액은 56억원이다. 이 중 A씨와의 공모액은 7억원, B씨와의 공모액은 32억원이었다. 결국 모두 39억원으로 어 부회장의 리베이트 금액이 17억원 더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씨의 변호인은 “공소사실 전체와 공모 부분을 대체로 인정한다는 취지”라면서도 “공소사실 특정 문제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 공모 부분서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그런 부분은 차후 증거 등을 통해 입증하고 밝히겠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어 부회장 등은 의약품 판촉을 목적으로 불법 리베이트 지급을 공모했다. 이들은 의사들에게 80억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세부적으로 의료인 68명에게 56억원 상당, 보건소 의사 17명에게 8억원 상당, 그 외 의뢰인에게 25억원 상당의 현금 리베이트와 경제적 이익, 금품 등을 제공한 혐의였다.
재판은 30분가량 진행됐다. 재판을 마친 어 부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그대로 법원을 빠져나왔다. 2차 공판 기일은 다음 달 서울서부지법서 열린다.
앞서 검찰은 불법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지난해 11월 안국약품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확보 자료를 분석하고, 안국약품 전·현직 관계자들과 수수 의혹을 받은 의사들을 조사했다.
첫 공판서
전면 부인
검찰은 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판사는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는 지난달 25일 어 부회장 등 4명을 약사법 위반과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85명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한 명은 구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안국약품은 이전에도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안국약품은 지난 2014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적발됐다. 식약처는 이듬해인 2015년 안국약품에 대해 일부 의약품 판매업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어 안국약품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취소당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안국약품을 둘러싼 악재가 서서히 부상하는 모양새다. 어 부회장이 구속에 이어 재판까지 받게 되면서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다. 안국약품은 지난달 19일 불법 임상시험과 관련, 공시를 통해 ‘구속적부심사 인용에 따른 기재정정’을 언급했다.
안국약품은 “지난 9월3일 어 부회장에 대해 약사법 등 위반의 혐의로 현재 구속 수사 중임을 공시한 바 있다”며 “9월19일자로 어 부회장의 구속적부심사가 인용돼 불구속으로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국약품은 어 부회장이 구속될 당시 상황을 언급하면서도 “당사는 현재 각자대표이사 체제로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속에 재판까지…좁아지는 입지
안국건강, 차남에게로 쏠리는 눈
일각에선 어 부회장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어 부회장은 불법 리베이트와 불법 임상시험 혐의를 정면으로 받고 있다. 반면 어 부회장의 동생인 어광 안국건강 대표는 큰 잡음 없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안국약품의 최대주주는 장남인 어 부회장(22.68%)으로 어 회장이 20.53%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어 대표는 2.74%에 불과하다.
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안국약품 사장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지분율을 오늘날의 22.68%까지 끌어올렸다. 어 부회장이 어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안국약품을 손에 쥔 것과 다름없었다. 그로부터 3여년 뒤 어 부회장은 악재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어 부회장과 어 대표는 함께 언급되곤 했다. 일례로 장남과 차남의 경영 실적이 대표적이다. 어 부회장은 안국약품 경영을 시작한 첫 해에 기대와 달리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안국약품의 매출은 전년도에 비해 10% 이상 감소했다.
2016년 안국약품 매출액은 연결 기준 1740억원이었다. 반면 전년도 매출액은 1980억원이었다. 공교롭게도 안국약품은 2010~2015년까지 꾸준히 성장세였다.
안국약품의 2017, 2018년 매출액은 다시 상승세를 탔지만 성장폭이 작았다. 2017년 매출액은 1835억원, 2018년 매출액은 1857억원이었다. 또 매출액만 따져봤을 때, 두 해년도의 매출은 2015년에 비하면 규모가 적은 편이다.
상승세
하락세
반면 안국건강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어 대표는 애초 안국약품서 근무하다가 2003년부터 안국건강의 대표를 맡았다. 안국약품 사업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안국건강의 성장세는 뚜렷한 편이다. 안국건강의 최근 5년간 매출을 보면 2014년 125억원, 2015년 182억원, 2016년 159억원, 2017년 255억원, 2018년 290억원이다. 지난 5년간 2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안국약품의 오너 2세 승계는 이미 이뤄졌지만 귀추가 주목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