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목줄 쥔 기업들 어디?

칼 뺐다 ‘다음 제물은?’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해임에는 국민연금의 개입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지분은 11% 남짓이지만 반대 의견을 미리 공개하면서 소액주주들을 결집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때 ‘주총 거수기’라는 오명까지 썼던 국민연금의 달라진 모습에 경영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저지하면서 국민연금의 투자 지분이 많은 대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이사나 감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대한항공만이 아니다. 올 들어 기아자동차와 현대건설, 효성, 신세계 등의 주총서도 이사, 감사 선임안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첫 사례

다만 이들 기업에서는 표 대결서 사측이 우세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외에 SK와 신한금융지주 등 6개 기업의 사내이사,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앞으로 주총이 열리는 동아쏘시오홀딩스, KCC, 현대그린푸드, 대창단조, KT&G, HDC아이콘트롤스, 덕산하이메탈, 호전실업, 휴맥스, 동아에스티, 한솔케미칼, 한국카본, 와이지원, 신한금융지주, 이노션 15개 사에 대해서도 반대표 행사를 예고한 상태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총 의결권 행사를 통한 경영 개입에 대해 대부분의 기업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오랜 기간 대주주를 중심으로 경영진을 구성해 여러 주요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해온 국내 기업들은 향후 국민연금의 공격에 대비해 경영권 방어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등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국민연금은 운용액 637조원 가운데 약 17%에 해당하는 109조원가량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1668조원)의 약 6.5%가 국민연금으로부터 나온 셈이다.

지난 27일 금융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총 294곳에 달한다. 이 중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90곳에 이른다. 공시 의무가 없는 5% 미만의 지분을 소유한 기업들까지 더하면 국민연금의 영향권 아래 있는 기업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로 있어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은 7개사이다. KT(12.19%), 포스코(10.72%), KT&G(10.0%), 네이버(9.48%)와 같은 국내 대표 기업들과 하나금융(9.68%), KB금융(9.50%), 신한금융(9.38%) 3대 금융그룹이 이에 속한다. 

삼성전자(10.0%), SK하이닉스(9.1%), 현대자동차(8.27%) 등 시가총액 10위권 내 대기업들 역시 국민연금의 주요 투자처로 2대 주주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시총 10위권 내 기업 중 국민연금 보유 지분이 5% 미만인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3.09%) 오직 한 곳뿐이다. 

총수 경영권 박탈…적극적 반대 표시
공포에 휩싸인 재계 ‘타깃 기업은?’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가 공개한 ‘2018년 4/4분기 기준 주식 대량보유 내역’을 살펴보면 대림산업(13.54%), CJ제일제당(12.41%), 현대위아(12.31%), GS건설(12.13%), LS(12.04%), 한국타이어(7.89%) 등에도 지분을 갖고 있다.

국내 100대 기업 중 외국인 지분과 국민연금 지분의 합계가 기업의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넘어서는 기업은 약 40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사례처럼 국민연금의 결정에 의해 오너가 이사직서 물러나는 경우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선 조 회장의 연임 부결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한 긍정적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매우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빈도가 부쩍 잦아진 국민연금이 실제로 최고경영자(CEO)의 경영권을 박탈한 첫 번째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우려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국민연금이 주주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고려해 신중한 판단을 내렸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것을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국민연금을 강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총은 “국민연금이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한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이었다”며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라는 본질적 역할을 가진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되풀이?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단일 기관투자자의 지분이 한 국가 주식시장의 6% 이상인 곳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경영 활동에 개입할 경우 눈치 안 보고 활동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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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