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영향권’ 중견기업 리스트

대기업 뺨치는데 세금은 찔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세청이 대기업 사주 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검증 기회가 부족했던 중견기업 사주 일가, 부동산 재벌, 고소득 대자산가를 ‘숨은 대재산가’ 그룹으로 분류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숨은 대재산가 그룹 중 불공정 탈세행태가 심해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95명의 반칙·편법·탈법행위 유형을 소개했다. 이 같은 국세청의 강력 행보에 제 발 저린 중견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다.
 

국세청이 중견기업 사주 일가, 부동산 재벌, 고소득 대재산가 등 소위 숨은 대자산가 그룹 중 반칙·편법·탈법행위 등 불공정 탈세혐의가 큰 95명을 대상으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거래내역 전반
입체적인 분석

구체적으로 중견기업 사주 일가 37명, 부동산 임대업·시행사업 등을 영위하는 부동산 재벌 10명, 자영업자·전문직 등 고소득 대재산가 48명의 총 95명이다. 이들 95명이 보유한 재산은 총 12조6000억원으로 평균 133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주식이 1040억원, 부동산이 230억원을 차지했다. 

재산규모별로 100억∼300억원 미만이 41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0억∼1000억원 미만 25명, 1000억∼3000억원 미만 14명, 3000억∼5000억원 미만 8명, 5000억원 이상 7명 순이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31명으로 가장 많았다. 건설업 25명, 도매업 13명, 서비스업 13명, 부동산 임대업 등 부동산 관련업이 10명, 병원 등 의료업이 3명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대상자는 개인별 재산·소득자료, 외환거래 등 금융정보, 내·외부 탈세 정보뿐 아니라 사주 일가의 해외출입국 현황, 고급별장·고가미술품 등 사치성 자산 취득내역, 국가 간 정보교환자료 등을 종합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주 일가·관련인 개인 간, 특수관계 기업 간, 사주 개인·기업 간 거래내역 전반을 조망하는 입체적 분석방식을 적용했다.  
 

특히 사주 일가의 재산 현황(stock)과 관련한 정보와 재산의 형성·운용·이전 등 소득과 거래를 통한 재산의 축적 및 승계 과정(flow)을 정밀 검증했다. 개별기업 단위별 미시적 분석방식서 벗어나 거시적·단계적 접근 방식인 ‘탈루 유형별 분석 방법’을 통해 ‘불공정 탈세 혐의자’만 선별해 조사 대상자를 선별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조사 대상자들의 불공정 탈세 유형별로 주요 탈루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변칙적인 방법으로 법인자금을 유출하거나 사적으로 유용·편취해 대재산가 일가의 호화·사치생활을 영위하는 데 사용한 경우다.  

숨은 대재산가 세무조사 착수
중견기업 사주일가 37명 타깃

이어 부동산·자본거래 등을 통해 자녀들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증여 또는 경영권 승계 등 세금 없이 부를 대물림한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특수관계자 간 부당내부거래, 우회거래 등 각종 탈법적 방법으로 정당한 세부담을 교묘하게 회피한 형태도 파악됐다. 

심상치 않은 국세청의 행보에 이전에 논란이 됐던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국세청은 2017년 신안그룹 금융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던 바 있다. 당시 국세청은 여의도에 소재한 바로투자증권 본사에 사전예고 없이 투입, 재무 관련 자료를 예치하는 등 고강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일각에서는 바로투자증권이 계열사에 대출을 할 때 불법으로 담보를 제공한 혐의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처분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바로투자증권은 지난 2015년 2월 신안그룹 계열사 2곳이 출자한 주식을 해당 업체의 대출 때 담보로 제공한 사실이 금감원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현재 자본시장법은 증권사가 대주주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 신용공여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바로투자증권의 최대주주는 신안그룹의 계열사인 신안캐피탈(지분 100%)이다. 금융감독원은 2016년 바로투자증권에 대해 기관주의와 함께 과징금 8800만원을 부과하는 한편, 불법거래에 관여한 임직원 2명에 대해서도 주의와 견책 처분을 내린 바 있다.
 

2017년 국세청의 빙그레 정기 세무조사 과정서 김호연 회장의 차명주식이 드러났다. 김 회장은 아버지인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1981년 타계한 이후, 한화그룹이 1970년대 인수한 빙그레(대일유업)의 경영을 맡으면서 빙그레를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웠다.

업계 관계자는 “차명주식은 김 회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거나 직접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린 아니다”
쉬쉬하는 기업

금감원은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표면적으로는 지연공시가를 조사한다는 이유지만 조사 과정서 차명주식과 관련한 또 다른 불법 정황을 발견한다면 검찰 수사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5% 이상 보유 대주주는 지분변동 관계를 제대로 보고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 김 회장에 대한 조사가 끝나야 과징금 부과 등의 행정제재나 검찰 고발 등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연공시보다는 차명주식 보유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조사와는 별도로 김 회장은 주식 실명전환으로 증여세로만 50%를 납부해야 했다. 김 회장은 이에 서울 삼성세무서와 강동세무서에 빙그레 주식 17만1000주(지분율 1.74%)를 납세 담보로 맡겼다. 

‘커피 재벌’ 동서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경제개혁연구소는 동서 계열사 성제개발의 2014년 내부거래 비중이 43.78%이며, 2010∼2014년 평균 내부거래 비중은 65.15%라는 점을 들어 일감 몰아주기 수혜회사로 꼽았다. 1986년 설립된 성제개발은 건축공사업, 임대업, 비주거용 건물건설업 등을 영위하고 있는 회사다.

성제개발은 2014년 이후 감사보고서를 공시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2014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성제개발의 지분은 동서 43.09%를 포함해 김 전무(32.98%) 외 3세인 동욱(13.00%)·현준(10.93%)씨 등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변칙 대물림
관행 손본다


다만 동서의 감사보고서에서는 2015년에도 2014년과 동일하게 성제개발이 주식의 43%를 보유하고 있어 당시 지분구조는 2014년과 동일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성제개발은 높은 배당성향을 보여왔고 내부거래를 통해 얻은 수익은 배당을 통해 3세들에게 제공해왔다. 실제로 2011년 68.22%였던 배당성향은 이듬해인 2012년 88.4%, 2013년 88.86%, 2014년 91.59%로 확대됐다.
 

그런데 동서의 2017년 사업보고서부터 동서는 성제개발 지분 100%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서의 이 같은 행보는 정부의 재벌개혁 움직임에 꼬리를 내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동서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동서는 지난해 10월 서울국세청 조사1국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당시 세무조사는 2013년 세무조사에 이은 정기세무조사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동서그룹이 수년간 높은 내부거래 비중으로 사정당국의 주목을 받아온 점과 오너 일가 고배당 문제 등이 꾸준히 불거졌다는 점에서 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풀이도 나왔다.

신안, 동서, 빙그레, 풍산… 
그동안 논란됐던 기업들 긴장

지난해 10월 굴지의 방위산업체 풍산그룹이 부산시의 센텀2지구 개발사업 관련 특혜의혹을 받았다. 과거 국방부로부터 헐값에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는 공식문서가 공개됐기 때문. 개발이 진행될 경우 토지보상금이 5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돼 특혜 의혹은 가라앉지 않았다. 

1981년 당시 27만평 규모의 조병창(현 풍산 부지) 부지였던 이 땅은 3년 거치 후 7년 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모두 259억원에 풍산에 매각됐다. 이 과정서 국유지를 비롯한 부동산, 각종 장비 및 운영 자재 등의 동산, 사업권이 수의계약을 통해 풍산에 매도된 것.


방위산업 목적의 국유지인 이 땅은 풍산의 공장부지 및 건물 30여개를 제외하면 절반 이상이 개발제한에 묶여있다. 하지만 이 부지는 2015년 부산시와 풍산이 맺은 센텀2지구 첨단산업단지 MOU에 따라 현재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어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풍산그룹은 2016년 국세청 세무조사를 한 차례 받은 적이 있다. 풍산홀딩스는 지주사로 전환한 뒤 내부거래 비중이 늘었다. 류진 회장을 포함한 특수 관계인의 지분이 40.05%에 달한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풍산홀딩스 내부거래는 2010년 40.45%, 2011년 60.52%, 2012년 74.05%, 2013년 75.65%, 2014년 80.09%, 2015년 67.79%로 나타났다. 특히 2016년에는 81.6%(915억원)를 기록, 6년 평균비중이 70%에 육박한다. 계열사로부터 일감을 받으면서 총수 일가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검찰 수사로
엄중 처리 방침

김명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탈세 사실이 확인되면 세금추징은 물론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 고발조치 등 엄중 처리하겠다”며 “반칙·편법·탈법행위 통한 호화·사치생활 영위, 편법 상속·증여, 정당한 세부담 회피 등을 일삼는 불공정 탈세행위에 지속적으로 세무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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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