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12년 만이다. 우리나라는 3만불 시대의 문턱을 넘었다. 국민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 진입 기준으로 통한다. 경축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실질적인 체감이 어렵기 때문이다. 3만불 시대의 도래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조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취약한 경제구조가 선명해지는 역설을 낳았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국민소득 3만달러에 대한 기대를 불어넣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7일 제55회 무역의 날 기념식서 “올해 우리는 경제 분야서 또 하나의 역사적 업적을 이루게 됐다”고 힘줘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2000달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경제 강국을 의미하는 ‘30-50 클럽’에 세계서 7번째로 가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30-50 클럽
실제로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달러를 돌파했다. GNI는 한 나라의 국민이 국내외서 벌어들인 총소득이다. 이를 해당 국가의 인구수만큼 나눈 것이 1인당 GNI다. 3만불 시대는 2만달러의 문을 열었던 지난 2006년에 이어 12년 만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달러로 30-50 클럽에 가입됐다.
30-50 클럽은 1인당 GNI 3만달러 이상, 인구수 5000만명 이상을 의미한다. 이 클럽에 속해 있는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이다. 우리나라는 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3만달러의 이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발표한 ‘2018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1359달러(약 3449만4000원)였다. 지난해 기록한 2만9745달러(약 3363만6000원) 대비 5.4% 증가했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2.7% 성장했다. 지난 1월 발표된 속보치와 동일했다. 다만 2012년(2.3%) 이후 6년 만의 최저치다. 명목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3.0% 상승했다. 20년 만의 가장 낮은 성장률이었다. 지난 1998년 당시 명목GDP는 -1.1%의 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명목GDP 성장률의 하락으로 체감 성장률은 낮았을 것으로 풀이된다. 명목GDP 성장률이 낮으면 경제주체가 체감하는 성장률도 낮다. 물가를 감안했을 때 가계의 소득과 기업의 영업이익 등은 덜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명목GNI 증가율은 2.9%로 명목GDP(3.0%)보다 낮았다. 지난 1998년(-1.9%) 이후 20년 만의 최저치다. 요인은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의 적자였다.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은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서 생산요소(노동, 자본 등)를 제공한 대가로 받은 소득서 국내 외국인이 생산 활동에 참여해 번 소득을 뺀 것이다.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은 지난 2017년 1000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1조2000억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GDP디플레이터의 증가율은 전년 대비 0.3% 상승했다. 12년 만의 최저치다. GDP디플레이터는 실제 우리나라의 포괄적인 물가수준을 의미한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GDP를 실질GDP로 나눈 값이다.
올 1인당 GNI 3만2000달러 예상
“체감이∼” 알고 보면 사상누각?
실질GNI는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실질GDP 성장률(2.7%)보다 낮았다. 실질GNI는 물가 등을 감안해 국민들의 실제 구매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 실질GNI의 저성장은 교역조건 악화로 실질무역이익이 줄고,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의 적자 전환에 기인했다. 지난 2008년(0.1%) 이후 10년 만의 최저치다.
삶이 팍팍해진 국민들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19년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확장실업률은 13.0%로 전년 동월 대비 1.2%포인트 상승했다. 확장실업률은 체감실업률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맡은 30대와 40대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30대 취업자는 12만6000명 감소했고, 40대 취업자는 16만6000명 줄었다.
가계소득격차도 심각하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소득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3만8000원으로 17.7% 감소한 반면, 소득5분위(소득 상위 20%)의 소득은 932만4000원으로 10.4% 증가했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47배였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은 소득의 상하위 격차를 나타내는 만큼 소득의 양극화 정도를 알 수 있다.
가처분소득 역시 악화일로다. 지난 3일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가구주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가장 많이 감소했다. 가처분소득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돈을 뜻한다. 50대는 직장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세대다.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있는 50대의 경제력 약화는 자칫 노인 빈곤과 같은 사회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매번 증가하는 가계부채도 간과하기 어렵다. 지난달 22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계부채는 1534조6000억원이었다. 지난 3분기 가계부채에 비해 20조700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사상최대였다. 그러나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로 빚이 적게 증가한 측면도 있다.
핵심은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소득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으로 꼽힌다.
악재 수두룩
국민소득 3만달러 등의 내용을 발표한 신승철 한국은행 국민계정부장은 “3만달러 달성의 축배를 들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소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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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3만달러’ 다른 나라는?
30-50 클럽 국가 중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가장 빨리 넘어간 국가는 독일과 일본이다. 이들은 각각 1990년, 1987년 이후 5년 만에 클럽에 가입했다.
미국은 1988년 이후 9년, 영국은 1991년 이후 11년이 걸렸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모두 1990년 이후 14년 만에 3만달러의 고지를 밟았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