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총리-촛불총리’ 어색한 만남 풀스토리

얽히고설킨 기묘한 인연 ‘언제까지?’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전직 국무총리와 현직 국무총리의 만남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자유한국당 대표로 당선된 황교안 전 총리와 이낙연 총리는 묘하게 맞닿아 있다. 황 전 총리는 탄핵정국 당시 국무총리였다. 이 총리는 촛불혁명 이후 탄생한 정부의 국무총리다. 동시에 이들은 각각 보수·진보진영 차기 대권주자 1위로 꼽힌다. 황 전 총리는 철저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의 국무총리 사이서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모양새다.
 

▲ 황교안 신임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27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전당대회(이하 전대)서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 동안 황 대표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황 대표는 지난해 9월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정계진출에 군불을 지폈다. 황 대표는 지난 1월 한국당에 입당해 이른바 ‘친황(친 황교안)계’라 불리는 새로운 계파의 등장을 예고했다. 같은 달 전대 출마를 선언한 후 새로운 한국당의 대표가 된 그는 원외인사로 정치경력이 전무하다.

그러나 그의 파급력은 웬만한 중진 의원들을 뛰어넘었다.

정계 진출
파죽지세

황 대표의 당 대표 당선은 여러 후폭풍을 야기할 전망이다. 황 대표는 전대 과정서 ‘탄핵 불복’ 입장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전직 법무부장관이자 전직 국무총리가 헌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진 탄핵을 에둘러 부정한 셈이다.

지난달 9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은 뒤 “특검서 1차 수사 이후 수사 연장을 요청했다”며 “제가 볼 땐 수사가 다 끝났으니 이 정도서 끝내야 한다고 봐서 수사 기간 연장을 불허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황 대표를 둘러싸고 ‘박근혜 배신 논란’이 있었던 때였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TV토론회서 황 대표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황 대표는 “헌재의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법원서 재판 중인데 탄핵이 결정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는 질문에 ‘X’ 팻말을 들들었던 그는 김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입장을 명확히 밝혀달라”며 협공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세모를 하려고 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황 대표는 토론회서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느냐’는 김 의원의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 질문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황교안 전대 승리…당 대표로 우뚝
전대 과정서 탄핵 불복, 논란 거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민주평화당, 그리고 정의당은 황 대표의 탄핵 불복 발언을 일제히 규탄했다. 한국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비박(비 박근혜)계 좌장인 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지난달 26일 황 대표의 태블릿PC 발언에 대해 “잘못된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황 대표의 당선을 두고 ‘박근혜 그림자’가 도래했다고 본다. 황 대표는 박근혜정부 당시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탄핵정국 때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는 전대를 치르면서 ‘특검 연장수사 불허’ ‘탄핵 정당성’ ‘태블릿PC 조작설’ 등을 언급했다.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하야를 야기한 일련의 과정들을 부정한 셈이다.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문재인정부와 대치되는 대목이다.


탄핵정국 국면서 촛불혁명은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촛불혁명은 황 대표가 부정한 탄핵 과정의 결정체다. 문재인정부는 박 전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던 촛불혁명 이후 집권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 광화문 촛불집회

문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후 줄곧 ‘촛불혁명 정부’를 강조하는 한편 “촛불혁명을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이를 정권의 기치로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울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서 주재한 국무회의서도 “전 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할 때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세계 민주주의의 희망을 보여줬다”며 촛불혁명을 강조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서 “3·1운동을 이끈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청년정신은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3년 차 징크스’에 맞닥뜨린 문재인정부를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황 대표는 강력한 대정부·대여 투쟁으로 존재감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불복
촛불 혁명

황 대표는 차기 대권 선호도 여론조사 등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알앤써치가 <데일리안>의 의뢰로 지난달 25일 조사해 같은 달 27일 발표한 ‘차기 정치지도자 다자구도’에 따르면 황 대표는 18.6%로 1위를 기록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낙연 총리가 15.6%로 2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8.6%로 3위를 기록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7.4%로 그 뒤를 이었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7.1%, 바미당 유승민 전 공동대표가 5.7%,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4.1%, 바미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각각 3.7%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대표와 이 총리가 접점을 벌이는 건 주목할 만하다. 황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될 당시 국무총리였다. 이 총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국무총리다. 이들은 탄핵을 배경으로 한 전·현직 국무총리다. 또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를 통해 각각 1위를 기록했다.  

차기 대선이 2022년에 열리는 만큼 두 총리의 대권구도는 다소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황 대표와 이 총리의 구도가 박정부와 문정부의 대결로 비춰지는 까닭에 관심을 끌고 있다.

전현직 총리 차기 대권주자로 만나
대권구도 지속? “변화 가능성 커”

당사자들은 대권에 대해 몸을 낮추고 있다. 황 대표는 출판기념회 당시 대권에 대해 “그런 말씀들을 잘 듣고 있다”고만 답했다. 이 총리는 지난 1월21일 CBS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해 입장을 밝혔다. 이 총리는 차기 대권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총리도 굉장히 벅차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참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황 대표와 이 총리의 대권 경쟁 구도가 유력 잠룡들의 정치적 상흔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 영장실질심사 위해 법원 출석하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진보진영 대권 잠룡들은 하나같이 위기와 직면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 지사 그리고 김 지사가 대표적이다. 안 전 지사와 이 지사는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경선을 치렀다. 이들에 대한 관심은 대선 기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선 이후에도 잠룡으로 꾸준히 언급됐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김 지사도 대권주자로서 차차 입지를 넓혀갔다.

그러나 이들은 차례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안 전 지사는 미투 논란으로 충남지사직서 사퇴했다. 이 지사는 각종 구설수와 함께 친형 강제입원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김 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파문 등으로 법정 구속됐다. 결국 진보진영 대권 잠룡들이 잇따라 침몰하는 가운데 이 총리가 주목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을 앞선 것도 유효했다. 

이 총리에게 쏠리는 관심은 그의 경력과도 관련이 있는데 대권 잠룡으로 언급될 만한 경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그는 4선 국회의원 출신이며 원내대표와 사무총장을 지냈고, 전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보수·진보
대권잠룡들

보수진영도 진보진영의 상황과 대동소이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은 지리멸렬의 수순을 밟았다.

한국당은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홍 전 대표 체제로 6·13지방선거를 치렀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한국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서 보수의 아성인 TK(대구·경북)를 지켜내는 데 그쳤다. 홍 전 대표는 6월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기 위해 물러났다. 이후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동됐다. 비대위 체제 하에 진행된 인적청산은 결정적이지 못했다. 보수진영 잠룡들의 존재감이 미미한 까닭이다.


차기 대권 여론조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황 대표를 제외하고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인물은 홍 전 대표와 오 전 시장, 바미당의 유승민·안철수 전 공동대표 등에 그치며 선호도 역시 높지 않다.

보수진영의 사분오열로 남은 자리를 황 대표가 대신하는 모양새다. 황 대표는 정계진출의 첫걸음을 제1야당 대표로 시작하게 됐다. 역대 대통령 중 대다수는 정당 대표를 지냈다. 황 대표에게 한국당 대표직은 차기 대권 잠룡으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황 대표와 이 총리가 자신들의 의사와 달리 대권 잠룡의 선두에 선 이유로 해석된다.

한편 황 대표는 대권주자로서 검증 아닌 검증을 받게 됐다. 한국 갤럽이 지난달 19∼21일 조사해 같은 달 22일 발표한 ‘한국당 대표 경선 선호 후보, 후보별 호감도’에 따르면 황 대표의 지지율은 조사 대상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 지난달 27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서 열린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서 당 대표를 확정 짓고 당선 수락연설하는 황교안 신임 대표

여론조사 결과 전체 1위는 오 전 시장으로 37%를 기록했다. 황 대표는 22%, 김 의원은 7%였다. 33%는 ‘없음·모름·응답 거절’이었다. 

반면 한국당 지지자층에서 황 대표는 52%의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오 전 시장은 24%에 그쳤다. 김 의원은 15%였다. 없음·모름·응답 거절은 9%였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대표가 한국당 대표로 당선됐지만 일반 국민들과의 괴리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한국당 내에서도 이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은 당장 내년에민심과 다소 거리가 있는 황 대표 체제 하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 황 대표는 사실상 내년 총선을 통해 심사대에 오르며 총선 결과에 따라 대권 존재감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양강구도
변화 가능

최근의 여론조사는 황 대표와 이 총리 간의 대권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다만 양강구도 형성에 두 전·현직 총리의 직접적인 의지보다 정치적 환경의 변화가 이들의 경쟁구도를 형성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탄핵정국 국무총리와 촛불혁명 국무총리의 대결 형태는 일시적일 뿐, 언제든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총리 출신 대통령은?

황 대표와 이 총리 간의 대권구도가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총리 출신 대통령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총리 출신 대통령은 있었을까? 답은 '있었다.' 대한민국 10대 대통령인 최규하가 그 주인공이다. 총리직을 수행하던 최규하 전 대통령은 10·26사태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최 전 대통령은 이른바 ‘체육관 선거’서 단독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의 압력으로 8개월 만에 하야했다.

최 전 대통령은 처음이자 마지막 총리 출신 대통령이다. 오늘날까지 총리 출신 대통령은 헌정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다만 대권에 도전했던 총리는 있다.

이회창 전 총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전 총리는 대선에 3번 출마했다. 그러나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전 총리는 15대 대선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1.5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16대 대선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2.33%포인트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 17대 대선에서는 15.0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위에 머물렀다.

참여정부 당시 국무총리를 지냈던 고건은 대선 근처까지 가는 데 그쳤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에 놓였을 때 고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서울시장까지 역임했던 고 전 총리는 명실상부 대권주자로 꼽혔지만 끝내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이홍구·이수성·박태준·한명숙·이해찬·정운찬 전 총리 역시 대권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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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