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넥슨 매각 시나리오

중국에 넘어가면 게임산업 폭망?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내 대표 게임사 넥슨이 매각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련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넥슨 매각 금액이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면서 해외 기업 인수설도 거론되고 있다. 업계 맏형 역할을 해왔던 넥슨의 매각설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게임산업의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일 업계에 따르면, 김정주 NXC 대표는 자신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넥슨 지주회사 NXC 지분 전량을 매물로 내놨다. 해당 지분은 김 대표(67.49%)와 부인 유정현 NXC 감사(29.43%), 김 대표 개인회사인 와이즈키즈(1.72%)가 보유한 물량이다. 현재 NXC는 도이치증권과 모건스탠리를 공동 매각 주관사로 선정했다.

게임산업 영향
경쟁력 저하?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한 넥슨 시가총액은 현재 13조원 수준으로 이 중 NXC가 보유한 넥슨 지분(47.98%) 가치는 6조원 규모다. 여기에 고급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 유럽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스템프 등 NXC가 보유한 회사 지분 등을 감안하면 매각액은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넥슨이 매각된다면 대한민국 게임산업을 대표하며 시장을 이끌어온 기업이 해외 기업에 매각된다면 그 상징성도 함께 사라진다. 

넥슨은 대한민국 게임산업 역사를 함께한 기업이다. 1996년 사상 첫 그래픽 기반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나라’를 출시했고, 이 게임은 기네스북에도 오르며 해외에 국내 게임산업을 알리기도 했다.

또 카트라이더와 메이플스토리 등 다수의 히트작을 서비스하며 현재의 PC온라인 게임 시장을 키웠다. 당시 넥슨은 엔씨소프트와 함께 PC온라인 게임 시장을 함께 개척하며 산업 전반에 걸쳐 큰 역할을 해왔다.  


김 대표의 보유지분 매각이 현실화된 가운데 다양한 인수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게임업계에선 해외기업에 인수될 경우 국내 게임산업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또 넥슨 매각 주체에 따라 국내 게임산업에 미칠 영향이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겸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모바일게임 전환 지연과 저조한 실적 때문”이라며 “김 대표가 국내와 해외서 넥슨의 성장성에 의문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김정주 NXC 대표

현재 넥슨 매각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 중국기업 텐센트의 인수설이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다. 텐센트는 중국정부의 게임규제 정책으로 내수시장 확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중국정부가 내자판호를 발급하기 시작했지만 두 차례 진행한 허가목록에 텐센트 게임은 배제됐기 때문. 

텐센트가 넥슨을 인수할 경우 넥슨의 게임 지적재산권(IP)를 흡수하는 한편 매년 1조원에 달하는 로열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해외시장 가운데 유저 1인당 결제금액(ARPU)이 높은 한국과 일본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도 텐센트 입장에선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다.

금액 10조 넘을 것으로 관측
해외기업 인수설도 모락모락

그러나 텐센트가 넥슨을 직접 인수할 경우 중국기업에 매각했다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 어렵다. 텐센트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넥슨을 인수하는 다자간 콘소시엄 매각 방식이 대안으로 꼽힌다. 홍콩이나 미국 사모펀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텐센트가 배후에 존재하면서 인수하는 형태로 디즈니·사모펀드·텐센트 같은 다자간 협업이나 대리인이 개입하는 변형 방식도 가능하다.

국내 게임업계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부분 매각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디즈니, 넷마블 등 국내외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모델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디즈니는 10년 전 넥슨 인수를 검토한 사례가 있다. 당시 넥슨은 공식적으로 피인수설을 부인했지만 내부에선 인원 감축과 긴축 재정이 진행되기도 했다. 


EA에도 무게가 실린다. 넥슨 재팬 오웬마호니 대표는 넥슨에 오기 전 EA서 중추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만약 EA에 매각된다면 그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 경우 엔씨소프트나 넷마블 참여여부에 따라 3N사의 동맹체제를 구축할 수 있고 넥슨 개발력과 퍼블리싱 기능을 보존하는 형태가 가능하다. 게임사업 부분을 국내기업이 인수하는 한편 부가사업의 경우 해외업체에 매각해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매각이 실패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형태다. 기존 넥슨 지배구조는 한국 대기업의 구조와 유사하다. 김 대표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NXC 지분은 98.64%로 지주사를 통한 직간접적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매각이 실패할 경우 김 대표의 심리적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고 넥슨 일본법인이나 넥슨코리아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EA사

전문가들은 이번 넥슨 매각사태를 통해 국내 게임업계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전망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국내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세 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며 “김 대표는 한국 게임산업을 해외에 팔았다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신중히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김정수 명지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결론적으로 당장 넥슨을 사갈 수 있는 곳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디즈니나 비방디그룹 등 해외기업의 경우 게임분야에 대한 IP 소유욕이 적고 현실적으로 중국 및 일본기업이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넥슨이 이번 계기로 글로벌파트너를 끌어들인다면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어디에 매각?
쉽지 않을 듯

김 대표가 몸값 10조원에 이르는 넥슨을 매각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며 그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창업주라고 하더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회사 매각을 개인이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NXC는 외부 인사가 관여할 수 없는 지배구조를 가진 까닭에 김 대표가 경영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번 넥슨 매각 결정 또한 대주주인 김 대표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넥슨이 국내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개인 결정에 따라 10조짜리 회사가 좌지우지되는 게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에 따르면 넥슨의 내부 쇼크 또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내부서 아무리 대주주라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이렇게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며 “그동안 넥슨의 성장을 위해 함께 노력해온 직원들은 넥슨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돼 흉흉한 분위기라고 한다”고 전했다.
 

넥슨 노조 스타팅 포인트에 따르면 매각설 이후 넥슨 직원들의 노조 가입률은 평소 주간 가입자 수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노조는 “직원들의 헌신으로 성장한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이 일방적일 수 있다는 점이 심히 우려된다”며 “함께 넥슨을 이끌어온 수천명의 고용안정을 위협하거나 국내 게임산업 위기를 불러오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김 대표의 결정에 대해 경영구조나 사업전략에 있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10조를 개인이?
벤처 1세대 고민

김정수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이번 매각설은 김정주 대표뿐만 아니라 성공한 게임 벤처 1세대들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고민”이라며 “게임을 발판으로 10조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켰다면 앞으로는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전략들에 대한 고민할 시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혼자 경영을 가져가기보다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외부 파트너들을 끌여들여 도움을 받으면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개인이 조 단위 대기업을 좌지우지하는 구조로는 기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긴 어렵다”며 “특정 개인과 상관없이 시스템 경영을 위해서는 긍정적인 견제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의 보유 지분 전량 매각 추진설이 나오면서 넥슨 직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넥슨의 올해 사업 전략은 예정대로 추진되면서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넥슨은 네온스튜디오가 개발한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스피릿위시(SPIRITWISH)’를 지난 17일 국내 시장에 공식 출시했다.

넥슨은 전날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스피릿위시 사전 다운로드를 실시했으며 이날 정식 출시와 함께 배우 신세경의 평범한 일상을 게임과 접목한 형식의 유튜브 광고와 론칭 이벤트도 공개했다.

업계는 충격…내부 쇼크도 상당
일단 사업 전략 예정대로 추진

산책, 요리, 친구 등 신세경의 일상을 활용해 만든 다섯 편의 광고는 30일까지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모바일 게임 출시를 기념해 세 종류의 이벤트도 진행한다. 다음달 7일까지 게임을 통해 달성한 팀 레벨에 따라 캐릭터, 승급석, 레전드 장비 상자, 마스터피스 장비 상자 등 아이템을 추첨을 통해 지급한다.

또 이달 31일까지 레이드와 난투장에 참여한 횟수에 따라 즉시 이동 주문서, 마스터피스 재련석 상자 등 아이템을 제공하며 공식카페 가입자 수에 따라 게임 내 재화인 10만골드, 칼레바의 장비 상자 등 아이템을 지급한다.

김민규 넥슨 모바일사업 A실 실장은 “국내 출시된 모바일 MMORPG 장르 중 최초로 세 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조작하는 멀티 전투 방식을 도입했다”며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가슴 뛰는 모험을 담아낸 스피릿위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중국기업 텐센트

넥슨은 신규 게임 출시 이외에도 예정돼있던 주력 게임들의 콘텐츠 업데이트도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는데 간판 PC온라인 게임인 ‘던전앤파이터’와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던전앤파이터에서는 신규 전직 캐릭터 업데이트를 앞두고 이날 배우 여진구가 등장하는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메이플스토리에선 신규 궁수 직업 ‘패스파인더’ 업데이트를 앞두고 캐릭터 사전 생성 이벤트가 진행된다. 또 1인칭 슈팅 게임(FPS) ‘서든어택’과 액션 접속역할수행게임(MORPG) ‘클로저스’도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맡은 일은 계속
예정 사업 진행

넥슨 관계자는 “김정주 대표의 지분 매각설이 알려진 이후 적지 않은 직원들이 불안해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직원들 사이서 동요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의 결정이 어떻게 되든 일단은 맡은 업무와 예정된 사업 전략에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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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