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SH공사 숙청 사태’ 직위해제자의 토로

30년 충성했는데 하루아침에 ‘팽’

[일요시사 취재1] 장지선 기자 =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대규모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고위급 간부들의 직위가 해제됐다. SH공사는 ‘혁신을 위한 정당한 인사조치’, 직위해제자들은 ‘인사폭거, 인사갑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요시사>가 직위해제자 A씨를 만나 현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달 21일 SH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는 ‘시민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인사혁신 단행’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는 갑질과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처장급 등 간부직원 28명을 일선서 퇴진시키는 인사 조치를 단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갑질·비리
미리 방지?

SH공사는 최근 감사원 감사 과정서 센터직원들의 갑질 및 금품수수, 자체 점검과정서 적발한 전직 직원의 보상금 편취 사건과 일부 직원들의 편법 보상 등의 비리 문제가 연이어 터지면서 조직내부의 혁신 요구를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간부직원 28명에 대한 조치는 조직문화를 쇄신하고 비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원장, 처장, 단장 등 관리직에 있던 간부직원들의 직위가 해제됐다. 일부 간부직원들은 경영지원본부 인재개발부로 발령났다. 28명 중 21명은 1960년생, 7명은 1961년생으로 정년이 23년 남은 직원들이 대상이 됐다.

특히 내년이면 전문위원으로 전보되면서 보직을 내놓는 1960년생 간부직원들은 연말까지 채 40일도 남지 않은 상황서 인사 조치의 칼날을 맞았다.


인사 조치 나흘 뒤인 월요일(1125) 직위해제자들은 직위해제 인사폭거 조치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김세용 사장은 내부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무시하고 폭압적 인사폭격을 군사작전 하듯이 단행했다이번 사태는 김 사장 본인의 경영상 무능함을 가리기 위한 면피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임명권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는 김 사장을 해임조치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1960년생 간부직원 10명은 김 사장과 인재개발처장, 인재개발부 담당자 등 3명을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김 사장 등이 SH공사 인사규정과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런 인사 조치에
간부직원 28명 ‘충격’

SH공사 인사규정 제38(직위해제)에 따르면 사장은 형사사건으로 공소 제기된 자 직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한 자 소속직원에 대한 감독능력이 부족한 자 정직 이상에 해당하는 징계의결이 요구 중인 자 비위행위로 직위해제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직위를 해제할 수 있다.

하지만 직위해제자들은 자신들이 인사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실제 이번에 인사조치를 당한 28명 가운데 직위해제 요건에 해당하는 직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SH공사 역시 지난달 26일 내놓은 해명자료서 이번 인사발령은 근무서 완전 배제하거나 급여상 불이익이 있는 조치가 아니라, 직책에서는 제외됐지만 정년 60세까지 향후 2년 동안 근무를 계속하기 때문에 인사 등 불이익을 받는 직위해제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직위해제자들은 SH공사가 고령자고용법상 배치·전보·승진 등에서의 연령차별 금지조항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 김세용 SH공사 사장

SH공사는 이번 인사발령은 2019~2020년 임금피크제 대상자 중 일부 간부직원을 대상으로 이뤄졌다원래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의 경우 해당 기간이 도래하면 현 직위서 제외되고 전문위원으로 발령 조치되지만, 대상자들의 인사시기를 앞당겨 단행함으로써 조직문화 혁신을 기하고 시민기업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공사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직위해제자 A씨는 SH공사 해명에 대해 일선서 퇴진시키는 것과 직위해제는 다르다회사 스스로도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으니 이렇게 해명이 꼬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5일 취재과정서 만난 A씨는 이번 인사조치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1121일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면.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러다 오후 2시쯤 다른 부서 직원이 인사발령 소식을 알려줬다. 인사발령 문서에 ○○○직을 면함이라고 돼있는 걸 보고 직위해제를 직감했다. 잘못한 게 있는지, 인사규정서 정한 형사사건에 연루된 게 있는지 돌아봤지만 전혀 없었다.

-소식을 듣고 난 뒤 느낌을 떠올린다면.

정말 멍했다. 혼비백산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그나마 28명이 한꺼번에 이런 일을 당했다는 소식에 창피하다는 생각이 조금 줄어들었고 나름대로 의지가 됐다.

-전조는 전혀 없었는지.

인사발령(1121) 이틀 전쯤 한 직원이 연말 인사 때 1961년생 직원까지 포함해서 정리한다는 소문이 돈다는 걸 말해준 적 있다. 정년이 2년 남은 1960년생 직원들은 올해가 지나면 전문위원으로 가기로 돼있으니 그렇다쳐도, 1961년생 직원까지 인사조치하는 것은 무슨 함정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규정 없는
직위해제?

-함정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1961년생 직원의 경우 교육을 다녀오면 현업 복귀 없이 바로 전문위원으로 발령난다. 회사에서 이번 인사조치에 1961년생 직원을 포함시키면서 원래보다 공석이 늘어나게 됐다. 과거 전임 교수 출신 사장 때도 매년 조직개편을 통해 개방직을 만들면서 고위 간부자리를 외부인사로 채웠는데, 이번에도 여기서 늘어난 간부급 자리에 외부 낙하산 인사들을 앉히려는 건 아닌지 그런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내부 분위기는 어떤지.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장이 좀 심했다. 얼마 안 있으면 나갈 선배들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등의 반응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공포감에도 인사상 불이익이 걱정돼 침묵을 지키는 침울한 분위기다.

-현재 상황은 어떤지.

직위해제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눈치도 보이고 미치겠다. ‘좌불안석이라는 말이 딱 맞다. 다른 직원들 보기에도 민망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재자의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결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니 묘한 감정의 갈등을 겪고 있다. 몇몇 직원들은 다른 직원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길로 다니거나 점심시간에도 따로 식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낙하산 인사
의심 들어


-이번 인사조치서 가장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지금은 회사나 직원 모두에 매우 중요한 시기다. 11월부터 연말까지는 모든 부서에서 내년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세밀하게 다듬는 일을 한다. 고위급 간부는 부서 단위의 사업계획 관련 작업을 총괄한다. 회사는 이런 시기에 고위급 간부를 날려버린 상황이다.

-인사발령 이후 대응이 빨랐는데.

회사의 망신주기식 인사에 우리가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세용 사장이 회사의 인사규정과 고령자고용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전략을 짰다. 월요일(1125) ‘직위해제 인사폭거 조치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고,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에 인권침해, 명예훼손 혐의로 김세용 사장을 고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노동위원회에도 제소했다.
 

-사측 반응은 어땠는지.

월요일에 발표한 성명서를 내부 게시판에 두 차례 정도 올렸는데 모두 삭제됐다. 회사에서 검찰 고소, 인권위 제소 상황을 알고서는 학연·지연·과거 근무 인연을 중심으로 이야기 좀 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전화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것 같다.

-1960년생 직원들은 내년이면 전문위원으로 가는데.

하루를 살아도 명예롭게 사는 게 중요하다. 인사를 대안도 없이 가볍게 처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많은 직원들이 정년을 마치고 전문위원으로 가는 때가 되면 상당히 우울해한다. ‘뒷방 노인네신세가 됐다고 생각하는 직원도 많다. 그런데 회사는 군사작전 하듯이 기습적으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고소로 법정공방 예고
“정말 서운하다” 격분

-이번 사태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김세용 사장이 법을 위반하면서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든 게 이번 사태의 원인이다. 원상복구 해야 한다. 직위해제 조치를 철회하고, 이로 인해 후생복지가 후퇴됐다면 모자람 없이 채워줘야 한다. 또 노사합의를 통해 재발방지 약속이 담긴 합의서를 만들어야 한다.

회사는 이번 간부직원 28명의 인사발령이 징벌성 직위해제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해당 간부직원의 인사기록에는 ‘2018.11.21. ○○○직을 면함이라는 기록이 남는다. 그렇지 않아도 먼저 퇴직한 선배들이 직급도 직위도 아닌 전문위원이라는 명칭이 경력증명서에 남아 재취업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징벌성 기록은 이후 족쇄가 될 수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검찰 고소건이나 인권위, 노동위원회 제소건 모두 끝까지 진행할 생각이다. 회사 차원서 우리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해주지 않는다면 끝까지 가서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하겠다.

-김세용 사장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학교서 학생을 대하는 듯한 태도로 회사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기업서 30년 경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학문의 이론적 무대와 기업의 현실적 무대는 다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수를 포용하고 소통하며 구성원들의 감정을 잘 읽어야 한다. 직원들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조정자와 조력자의 역할을 잘해줬으면 한다.

“사장 역할
잘해주길”

A씨는 인터뷰 말미에 솔직히 정말 서운하다며 깊은 속내를 드러냈다. 이번에 인사조치를 당한 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29~30. A씨도 몇 년의 하위직 공무원 생활 후 30년 가까이 SH공사에서만 일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 번 돈으로 부모님을 부양하고 처자식을 먹여 살렸다. 사실 회사에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잘못도 없는 우리에게 40일도 못 참고 비리, 갑질의 덫을 씌워 팽개친 공사에 실망감이 크다퇴사한 선배들이 회사 쪽으로 오줌도 누고 싶지 않다고 한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30년을 일한 직원에 대한 작은 예우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회사에 평생을 바쳤다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SH공사 반응은?

SH공사 측은 검찰 고소나 국가인권위원회 제소건에 대해 조사가 들어오면 받을 것이라면서도 당연히 기각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26일에 낸 해명자료가 SH공사의 공식입장이라며 추가로 드릴 말씀은 없다고 전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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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이미 내란죄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래서 살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 절실함은 ‘방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9월부터 거론됐다. 한 전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등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 따라서 모두가 차기 대선이 오는 2027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여기던 시점이었다. 윤 어게인 대타 역할?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서 파면돼 정계서 사라졌다. 차기 대선은 오는 6월3일로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란 절대 강적을 이길 방법을 놓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그 다양한 논의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서 퍼졌던 ‘윤 어게인’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요 보직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처장이 내란 공모 혐의 피의자란 사실도 큰 문제였다. 한 전 총리와 이 처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이 처장을 지명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였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추후 진행될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 방어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란 거대한 사건의 공범 의혹을 받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심이었다. 이는 곧 “윤 어게인의 구체적 구현일 수도 있다”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윤 어게인의 본질은 윤 전 대통령의 복귀 추진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냈고, 파면됐다. 헌법·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다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친윤(친 윤석열)계 진영 일각서도 이를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대신 출마하는 것”이란 해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년 중임제인 헌법 규정 때문에 지난 2008년엔 3선을 위한 출마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 러시아 대표가 대신 출마해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메드베데프 대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메드베데프 대표조차 대통령 재임 당시 바지사장·허수아비로 통했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설령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치 기반은 국민의힘 내 친윤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적 구도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처럼 총리로서 국정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 것이다. 푸틴·메드베데프처럼… ‘윤 총리’ 임명 관측도 이 같은 조롱 섞인 관측에 굴하지 않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 75세의 나이에 강한 정치적 집념을 보이는 이유로는 ‘내란 혐의 피의자’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언급된다.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엄법 규정대로 한 전 총리를 거쳐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도 비상계엄 실행에 참여한 것이 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이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소집 협조·참여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회피의 다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내란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관에 줄곧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총리로선 생존을 위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후보의 집권을 막거나,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대선에 출마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자처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의힘에도 큰 여파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집요하게 당 장악에 집착했다. 지난 2022년 7월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됐고, 윤 전 대통령은 여기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대통령이 당 장악에 집착하면, 내부서 차기 주자를 키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전직 대통령들의 지나친 당 장악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에게 강한 시선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반면교사를 거론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중진들은 겉으로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전혀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감정이 있다. 사실은 당권 경쟁?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한다”는 취지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어 부위원장직서 해임됐고, 당 대표 출마마저 저지당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하던 혁신위원회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대표직 유지를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한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날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고 말하는 등 순간적으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이렇듯 국민의힘 주요 중진과 경선 출마자 중 상당수는 윤 전 대통령과 상당한 갈등 끝에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윤 전 대통령 같은 강성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 이번 대선서 범 국민의힘 계열 대선후보들은 이 후보와의 승부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경선은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대권후보들도 당권에 강한 아쉬움이 있다. 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당내 주류들과의 갈등 끝에 힘없이 물러났던 경험이 있고, 당으로부터 등을 떠밀려 출마했던 선거서 패배해 치욕을 겪은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을 중진들이 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 대표를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의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생 관료로 살았고, 국민의힘·민주당 정권서 모두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인정했다지만, 한 전 총리는 “여당 대표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책임총리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과도 정부체제를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한 전 총리가 이래도 따르고, 저래도 따를 것”이라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에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수사 피해 대선 출마? 자당 대선후보와 외부 대선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당 대선후보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단일화도 노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이하 후단협)를 구성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후 진행됐던 것이었다. 이 갈등은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협조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의 후단협은 지금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정치 원로에게 단일화 지원을 요청했단 것은 당내 대권주자들과의 불신·갈등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 따르면, 내란중요임무종사자는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혐의가 적용돼 수사를 받고 있어서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지원을 매개로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란 구호로 함께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고 해서 아무 목소리도 못낼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전 총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은 한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최 여사는 화가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라며, “무속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무속의 지배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인 무속·해몽 일화 정치 공세 가능성도 최 여사에 대해선 한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서도 같은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최 여사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여성이 강남에 있는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란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공직 생활 동안 명리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이 공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 여사가 무속에 관심을 가진단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조선일보>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서 최 여사의 해몽 과정을 언급했다. 칼럼에 따르면, 최 여사는 한 전 총리가 무역협회장이 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되기 전엔 헬리콥터 조종사가 권총으로 부부를 쏘는 꿈을 꿨다. 부총리가 되기 전엔 스프링 콩콩을 타고 뛰는 꿈을 꿨다. 현재 소유 중인 주택을 사들이기 전엔 집이 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는 꿈도 꿨다. 최 여사는 특이한 꿈을 꾸면 ‘영험한 해몽가’로 알려졌던 고 임훈씨와 해몽 상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태민씨 일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해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해몽은 야심을 동반한단 측면서 의미심장하다. 신라 원성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권좌에 오른 사람의 설화 중엔 꿈과 해몽이 곁들여진 사례가 많다. 최 여사가 정기적으로 해몽가를 방문했단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두 전직 대통령의 전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힘이 세 번째 배신을 당할 가능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변인의 구설수로부터 야당의 공세가 시작돼 파면됐단 공통점이 있다. 대선서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당해 체면을 구기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정치 공세의 소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 전 총리까지 포함한 빅텐트를 친다고 해서,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시종일관 강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중범죄자를 봐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는 국민 판단에 따를 일”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 이재명 경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 등 비상계엄 관련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과 그 여당을 일극 체제로 지배하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진행될 각종 수사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 전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 주요 종사자들과 부화뇌동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중요 직책을 갖고 남아있는 것 같다”며 “내란 세력이 끊임없이 귀환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발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의 ‘몸부림’은 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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