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기획>민주통합당 호남대숙청에 ‘토호세력의 난’ 조짐 내막

토사구팽’ 당한 성난 터줏대감들 ‘사고 칠까?’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민주통합당이 눈앞에 떡하니 떨어진 콩고물조차 못 받아먹는 형국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부여당의 악재에도 지지율이 역전되면서다. 여기에 공천후폭풍까지 휘몰아치며 내분이 심상치 않다. 본격 호남대숙청 움직임에 터줏대감들이 크게 반발하면서다. 통합정당의 출범과 동시에 지지율 상승으로 총선압승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던 민주통합당. 연말에 있을 대선 승리를 위해선 필수적인 총선 승리 명제를 놓고 위기에 봉착한 모양새다.

조영택ㆍ김영진ㆍ김재균ㆍ최인기ㆍ강봉균ㆍ신건 탈락…눈물의 호남선
호남계 집단 반발ㆍ공천 재심의 요구…무소속연대 결성 출마 강행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의 공천갈등이 들불처럼 번지는 분위기다. 민주통합당이 지난 5일 4차 공천명단(호남권)을 발표하면서다. 이날 공천에서 호남의 현역의원 6명이 무더기로 탈락한 것. 지난 1~3차 공천 때 현역의원들의 이름이 고스란히 올라온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호남물갈이를 단행한 셈이다.

반면 친노 인사들은 수도권이나 부산·경남 지역에서 대부분 공천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때문에 호남 인사들은 “친노세력의 호남대숙청이 시작됐다”며 거센 반발 움직임을 보여 당내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친노의 각본에
호남 정치인 학살”

이번 공천명단에서 광주는 조영택·김영진·김재균, 전북은 신건·강봉균, 전남은 최인기 의원이 탈락했다. 호남의 나머지 지역에선 박지원·주승용·우윤근·이용섭 의원 등 4명만 공천이 확정됐을 뿐 23개 지역에선 경선이 치러진다. 일부 경선지역에선 현역의원이 추가로 탈락할 가능성이 있어 호남 교체 폭은 50%를 웃돌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다.

특히 물갈이 대상이 호남의 민주계라는 점에서 계파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날 최인기, 조영택, 강봉균 의원은 급히 기자회견을 열고 함께 자리하지 못한 신건 의원까지 포함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번 공천 결과는 원칙도 기준도 없는 전형적인 코드 밀실 공천”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친노세력의 각본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유력한 호남 정치인을 학살한 것이다”고 성토했다.


사실상 1차 공천명단(영남권) 발표에서도 친노 인사가 절반이었다. 2·3차 때도 수도권과 충청·강원·제주지역에서 친노 인사가 대거 공천을 받거나 경선을 하는 구도였다. 게다가 호남의 23개 경선지역에 후보로 선정된 50명 중 박선원 전 청와대 전략비서관(나주·화순)과 서대석 전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광주 서을) 등 14명의 친노 인사들이 경선 후보로 선정됐다.

때문에 이들은 특정 세력의 특정 인물을 공천하기 위해 지지율이 가장 높은 자신이 배제됐다는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공심위가 주장하는 정체성의 기준이 무엇인가 밝혀야 한다. 정부에서 각료를 지낸 사람들은 무조건 배제하자는 것이 정체성의 기준이라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며 “부실한 공심위를 구성하고 부당한 공천심사를 진행토록 한 한명숙 대표는 결과에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힐난했다.

앞서 공천에서 탈락한 김재균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의원 역시 이번 공천이 특정 세력의 정치적 각본에 의해 연출된 공천 학살극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특정 세력’에 대해 “총선기획단의 이미경ㆍ백원우ㆍ우상호ㆍ임종석이다”며 “친노ㆍ486세력이 결탁한 심층 지도부”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공천 탈락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나를 꺾어야 나중에 호남에서 좌파세력을 구축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고 덧붙였다.

호남 골수당원 일각서
박근혜 지지 목소리도

이들은 재심 청구 역시 당이 모두 기각함에 따라 무소속 출마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공천 탈락자들이 낸 50여건의 재심 청구를 당이 모두 기각함에 따라 이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민주당의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최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나주시·화순 군의원, 민주당 당직자 100여 명도 그와 함께 탈당했다. 신·조 의원 등도 최 의원과 행동을 함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관악갑 공천에서 탈락한 한광옥 전 상임고문은 지난 2일 민주당을 탈당한 뒤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이훈평 전 의원 등과 함께 ‘민주동우회’ 결성을 추진 중이다.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당선 가능성이 큰 현역의원들이 가세할 경우 민주동우회는 수도권과 호남지역 선거 판도에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대철 상임고문은 최근 민주동우회에 합류키로 하고 세 규합에 나섰다. 정 고문은 아들 호준씨가 서울 중구에 공천 신청했지만 당 지도부의 전략공천 방침으로 탈락 가능성이 큰 상태다. 강(봉균) 의원은 지난 8일 “정 고문 등 민주동우회를 추진하는 인사들로부터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며 “탈당·출마 여부를 고민 중인데 민주동우회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호남계 일각에서는 호남이 이제는 ‘집토끼’가 아니라 ‘산토끼’로 변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들은 선거철이 다가오면 되풀이되는 호남대숙청으로 항상 희생양이 되어왔다는 울분을 표출하고 있다. 한 당원은 “호남은 무리해 공천해도 당선시킬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 이합집산(야권연대)으로 호남을 항상 통째로 떠넘기려 한다”며 맹비난했다.

때문에 이들은 “호남이 잡힐 듯 말 듯한 산토끼로 변해 여와 야가 박빙을 이루는 세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밀어주고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실제로 전북도민회는 4ㆍ11 총선을 앞두고, 호남 홀대론에 격분하여 김석균 새누리당 안산 상록갑 예비후보를 지지하고, 대선에서는 박 위원장을 지지할 것이란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공천진통은 감동 없는 하나마나한 공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대대적인 인적쇄신으로 공천혁명을 단행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대부분의 전ㆍ현직 의원이 공천을 받거나 경선 대상으로 떡하니 이름을 올렸다.

집토끼 말고 산토끼로…호남 일각서 캐스팅 보트 전환 목소리
공천 후폭풍 거세지는 민주통합당 지도부 내부에도 균열 조짐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 명단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 유죄판결을 받은 임종석 전 사무총장과 그 전날 불구속 기소된 이화영 전 의원이 포함된 것이다.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어느 때보다도 인적쇄신으로 국면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내분거리를 자초한 셈이다. 비록 임 전 총장은 후보직과 사무총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후다.

게다가 비슷한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한광옥 전 고문은 공천을 받지 못하며 공정성 시비도 붙었다. 일각에선 비리에 연루되면 친노 인사에게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구(舊) 민주계 인사는 대거 탈락하고, 친노 인사는 대부분 공천을 받았다는 계파공천 논란도 제기됐다. 통합의 한 축으로 참여한 시민사회세력과 한국노총 측에서까지 민주당 공천을 “계파별 나눠먹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와중에 한명숙 대표가 동문인 이대 출신 인사만 챙긴다는 비난마저 일고 있는 상태다.

앞서 모바일 국민참여 경선 준비 과정에서 발생한 투신자살 사건은 민주당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과 동시에 새누리당에 공격거리를 안겨 준 셈이다. 당장 민주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공천혁명의 일환으로 야심차게 준비해 온 모바일 경선에 대한 기대와 신뢰에 금이 간 것.

이제 민주당의 공천파열음은 지도부의 균열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지난 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이 한 대표를 향해 대놓고 쓴소리를 뱉어내면서다. 박영선 최고위원은 “공천은 늘 시끄럽다고 덮기에는 상황이 달라 보인다”며 “공천 기준이 무엇인지 확실히 답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박지원 최고위원도 “공천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넘어가면 누가 총선 결과를 책임질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오만한 공천’에 지지율 역전
‘자업자득’ 민주당 신세


그간 정부여당을 둘러싸고 잇따라 터진 악재들은 선거 국면에서 민주당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MB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바닥 치는 민심은 PK(부산ㆍ경남)지역까지 동진정벌의 천재일우였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모양새다. 다시금 새누리당에 지지율이 역전됐기 때문이다. 정치전문가들은 “구태를 되풀이한 공천과 이미 승자가 된 듯한 오만함 때문이다”면서 “자업자득”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제 다시 민주당은 절박한 처지에 빠졌다. 민주당의 당면 과제는 4ㆍ11 총선을 목전에 두고 내홍으로 번져나가는 반발 움직임을 수습하는 것이란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향후 민주통합당의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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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