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한때 ‘신정아의 남자’이자 일명 ‘똥아저씨’로 알려진 변양균 전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이 침묵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신정아 사건이 불거지면서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2009년 1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집필 활동에 몰두해왔던 그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재조명한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이라는 책을 발간한 것이다. 변 전 실장이 책을 내고 ‘변양균.com’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활동을 재개하자 세간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참여정부 경험 토대로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출간
부인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참회’하는 뜻 담아
“노무현, 진보도 보수도 아닌 합리적 실용주의였다”
변양균 전 실장은 ‘신정아 사건’과 관련해 “내 생애 유일한 시련이었으며 가장 큰 고비였다”고 밝히며 그간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했다.
그가 이번에 저술한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은 2003부터 2007년까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했던 현장경험과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관과 복지관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가 직접적으로 소회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부인을 포함한 가족과 노 전 대통령에게 ‘참회’하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참회’의 뜻 담아
변 전 실장은 집필 후기에 해당하는 ‘글을 마치며’를 통해 신정아 사건이 “나의 불찰이고 뼈아픈 잘못이었지만, 그 결과가 그리 참혹할 줄 몰랐다는 것이 더 큰 불찰이고 잘못이었다”고 시인했다.
그는 이어 “아내와 가족에겐 말할 것도 없다”면서 “그런데 대통령과 내가 몸담았던 참여정부에 그토록 큰 치명타가 될 줄은 몰랐다”고 저술했다.
신정아 사건이 “정치적 사건으로 그처럼 악용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변 전 실장은 신씨를 “신정아씨”라고 지칭하며 “법원에서 신정아씨와 관련된 문제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으며 이는 “누명과 억측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정아 사건이 ‘개인적 일’이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하지만 그로 인해 대통령과 국정운영에 누를 끼쳤고 참회조차 못한 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변 전 실장은 “사건이 나고 나서 꽤 오랜 기간,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두려웠다”면서 “아내가 아니었다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재기의 뜻을 우회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는 서문에 해당하는 ‘글을 시작하며’에서는 “사건이 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따뜻이 품어 주셨던 추억”이 있다면서 사표를 내러 갔던 때 노 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그는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의 그런 인간적인 배려조차도 나와 함께 엮어서 고약한 ‘소설’을 썼다”고 당시 악의적으로 보도한 언론을 비판했고, 이어 “노 대통령이야말로 국가지도자로서 보기 드물게 경제 정책에 대한 수준과 철학과 지향이 원대하고 분명한 분이었다”면서 “나는 그런 사실을 낱낱이 증언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변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대한민국이 가야 할 복지 비전과 재정 개혁의 틀을 가장 체계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비전 2030’을 중심으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봤다.
변 전 실장은 ▲복지는 성장을 위한 투자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에서의 경쟁 ▲한국 경제의 새로운 기회는 한반도 평화 등 노 전 대통령이 품었던 경제원칙을 ‘노무현 경제 10원칙’으로 꼽고 노 전 대통령이 경제 예측에도 정확한 식견을 보였다고 전했다.
특히 2007년 6월 미국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손실 발표가 나오자 노 전 대통령은 즉각 사태 파악을 지시했고, 무엇보다 서민 생활과 관련된 대책 마련을 시급히 요구했다고 변 전 실장은 회고했다. 참여정부가 이루지 못한 과제에 대해서도 ‘자기반성’을 함은 물론, 이를 토대로 한 정책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세금 문제에 대한 과감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던 점, 전국 읍면동 사무소를 ‘복지사무소’로 바꾸려 했으나 행정안전부 등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 점 등을 아쉬운 부분으로 꼽았다.
변 전 실장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진보도 보수도 아니었다”면서 “마음속으로 늘 진보를 꿈꿨을지 모르지만, 정책 결정의 책임자로서 그가 가졌던 유일한 기준은 합리적 실용주의였다”고 평가했다.
변 전 실장은 “성장과 분배는 상충관계가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복지가 성장에 기여한다. 곧 성장과 복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고 강조하며 한국의 경제정책 모델로 유럽식 복지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복지 지출 규모 확대, 사회적 자본 축적 등에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문재인의 응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책 앞머리에 실린 추천사 형식의 글을 통해 “신정아 사건으로 졸지에 가려져 버린 그의 경력과 재능과 진정성이 아깝다”고 평가하고 “그의 증언이 책임 있고, 실증적이며, 사실 관계를 가장 정확히 짚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그를 응원했다.
한편 변 전 실장은 책 출간을 계기로 시민이 국가 경제 정책 수립과 집행에 참여하도록 하는 창구로 운영한다는 계획으로 지난 16일 블로그 ‘변양균.com’을 개설해 재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