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서경에 실려 있는 글 한 토막 소개한다.
“짐이 임금 자리에 있은 지 33년이나 되고, 나이도 이미 아흔을 넘어 백 살이 다 되어 가는지라, 정사를 행하기에도 이제 짜증만 나니, 그대가 게으름부리지 말고 내 백성들을 다스려 주오.”
순(舜) 임금의 말이다.
이 문장서 ‘내 백성’을 한자로 짐사(朕師)라 표현했다. 물론 짐(朕)은 임금을 사(師)는 스승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백성의 의미 역시 지니고 있어 문맥 전체 흐름을 살피면 ‘내 백성’으로 해석된다.
이뿐만 아니다. 조선조 기록들을 살피면 임금의 입에서 임금을 나라와 백성의 동일체로 여기는 표현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이는 삼척동자라도 모두 알고 있다 판단, 예시하지 않겠다.
이제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지방선거 참패로 대표직서 물러나 미국에 체류하다 귀국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공항서 만난 기자들에게 “앞으로 남은 세월도 내 나라, 내 국민을 위해 충심을 다해 일하겠다. 여러분과 함께 봄을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을 때가 되면 시작하겠다”고 밝힌 대목에 초점을 맞춰보자.
언론을 통해 홍 전 대표의 발언 내용을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물론 ‘내 나라’ ‘내 국민’이라는 용어 때문이었다. ‘내’는 ‘나’에 관형격 조사(소유격 조사) ‘의’가 붙어서 준 말로 ‘내’라고 하면 ‘내 돈’ ‘내 휴대폰’ 등의 예시서 볼 수 있듯 온전히 자신만의 소유를 의미한다.
아울러 정상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정치 일선에 있고 또 그 직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당연하게도 나가 아닌 우리를 이용해 ‘우리나라’ ‘우리 국민’이라는 전체의 의미를 지닌 용어를 사용해야했다.
그런데 홍 전 대표는 거침없이 대한민국을 내 나라, 대한민국 국민을 내 국민이라 지칭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살피면 대한민국은 홍준표가 소유하고 있는 나라고 대한민국 국민은 홍준표 소유의 국민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더욱 당혹스런 일은 이 발언이 부지불식 간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론 보도를 살피면 미리 준비한 메모를 읽어 내려가는 중에 이루어진 내용으로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홍 전 대표는 무슨 의도서 이런 표현을 이용했을까. 물론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첫 번째 경우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즉 ‘내’가 ‘자신만의 소유’라는 표현임을 모르는 무지서 비롯된 게다.
다음은 오만의 극치서 비롯된 결과다. 그동안 홍 전 대표가 보인 행태들을 살피면 도대체 이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내키는 대로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고, 그로 인해 필자로부터 ‘입방정’이라는 용어까지 선물 받기에 이른 게다. 즉 아무런 생각 없이 드러낸 발언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우려되는 부분인데, 홍 전 대표가 실제로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부분이다. 정말로 대한민국이 자신의 나라고 대한민국 국민이 자신의 소유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대목서 문득 전성기 시절 태양왕으로 불리었던 영국 루이14세의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혹시나 그럴 경우는 없겠으나 모쪼록 필자의 기우로. 그저 입방정의 실수이기를 고대해본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