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승 대웅제약 회장 ‘5년 천하’ 풀스토리

어렵사리 올라 허무하게 추락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윤재승 대웅제약 회장이 직원들에게 퍼부은 폭언과 욕설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갑질 논란이 확산됐다. 윤 회장의 폭언·욕설 논란은 업계에선 이전에도 꾸준히 입방아에 올랐다. 윤 회장은 모든 지위서 물러나겠다며 전격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비난 여론이 여전히 거센 상황인 만큼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 매체가 윤재승 대웅제약 회장이 직원과 대화를 나누며 욕설하는 녹음 파일을 입수해 보도했다. 윤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폭언과 욕설 사실을 인정했다. 윤 회장의 상습적인 욕설과 폭언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폭언이 일상?
인정하고 사임

대웅제약의 창업자인 윤영환 명예회장은 재룡, 재훈, 재승 등 3남 1녀를 뒀는데 그룹을 셋째인 윤재승 회장에게 물려줬다. 윤영환 당시 회장은 지난 2009년 후계자로 차남 윤재훈 부회장을 선택했다. 

1997년부터 12년간 대웅제약 대표 자리를 지키며 공식적인 후계자로 알려졌던 윤재승 회장은 형에게 자리를 넘기고 경영 일선서 밀려났다. 당시만 해도 업계는 차남과 3남의 경영권 싸움서 형이 승기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상황은 급반전했다. 2012년 윤재승 회장이 다시 대웅제약 대표로 선임된 것이다. 2년 뒤인 2014년 9월 대웅제약은 이사회를 열고 윤재승 회장을 선임했고 윤영환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또 대웅제약의 지주사인 대웅도 윤재승 회장을 신규 선임했다. 대웅제약은 윤재승 회장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2세 경영 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윤재승 회장이 2012년 갑작스럽게 복귀한 이유는 업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윤재훈 부회장이 이렇다할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하자, 오너 1세인 윤영환 회장이 3남 윤재승 회장을 복귀시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윤재훈 부회장이 2015년 알피그룹을 꾸려 독립한 뒤 형제 사이는 멀어졌다. 알피그룹의 연질캡슐 생산 계열사 알피코프는 대웅제약으로부터 수백억원 규모의 물량을 받아왔는데 계열 분리 이후 대웅제약으로부터의 일감이 급감했다. 

형인 윤재훈 회장이 2016년 10%에 달하던 대웅 지분 상당수를 정리하면서 형제간 분쟁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윤 회장은 재계 경영자들 중에서 특이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1962년생인 그는 서울대 법학과 재학 시절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 부산지검서 7년 동안 검사 생활을 했다.

장·차남 제치고 경영권 잡았는데…
직원에 욕설 파문으로 씁쓸한 퇴장

이후 대웅제약 감사로 회사에 발을 내디뎠고, 1997년 대웅제약 사장 자리에 올랐다. 대웅제약 경영에 뛰어든 이후에도 변호사로 활동했다. 


윤 회장은 2014년 대웅제약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 오른 뒤에야 본격적으로 회사 일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윤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중국, 베트남 등 신흥 시장에 진입해 2020년까지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보다 높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임직원들과 등산을 하고, 맥주를 마시는 등 참신한 2세 경영인의 행보를 이어온 것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욕설 파문’으로 인해 회장님의 민낯이 고스란히 알려지게 됐다.

공개된 녹음 파일을 통해 윤 회장은 직원의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자 “정신병자 XX 아니야. 이거? 야. 이 XX야. 왜 이렇게 일을 해. 이 XX야. 미친 XX네. 이거 되고 안 되고를 왜 네가 XX이야”라며 폭언을 쏟아냈다. 

또 직원의 설명에도 “정신병자 X의 XX. 난 네가 그러는 거 보면 미친X랑 일하는 거 같아. 아, 이 XX. 미친X이야. 가끔 보면 미친X 같아. 나 정말 너 정신병자랑 일하는 거 같아서”라며 욕설을 이어갔다. 

이 매체에 따르면, 대웅제약 전·현직 진원들은 이 같은 폭언이 일상이었으며 공식 회의 석상서도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어 굴욕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또 언어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경쟁
3남이 대권 

대웅제약 직원들은 검사를 지낸 윤 회장이 법을 잘 아는 만큼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으며,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사람도 많았다고도 했다.

직원들에 대한 상습 욕설과 폭언으로 공분을 산 윤 회장은 결국 지난달 28일 대웅제약과 그 지주회사인 대웅의 모든 직위서 물러나 회사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이날 대웅제약 홍보팀 명의로 언론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다시 한 번 저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과 회사 발전을 위해 고생하고 있는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저는 오늘(2018년 8월 28일) ㈜대웅 대표이사 및 등기임원(이사), ㈜대웅제약의 등기임원(이사) 직위를 모두 사임했으며, ㈜대웅제약과 그 지주회사인 ㈜대웅의 모든 직위서 물러나 회사를 떠난다”며 “자숙의 시간을 가지고 제 자신을 바꿔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대웅제약은 이제 전문경영인 체제 하에 임직원들이 성장하고 발전해나갈 수 있는 기업문화를 강화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대웅제약은 전승호·윤재춘 공동대표 중심의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된다. 앞서 윤 회장은 직원들에 대한 갑질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지난달 27일에도 이메일을 통해 사과 입장을 밝혔다. 
 

윤 회장은 이날 보고하러 온 회사 직원에게 욕설이 담긴 폭언을 한 내용의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며 경영 일선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가족 일정을 이유로 미국에 체류 중이며, 귀국 일정은 아직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회장이 대웅제약 회장과 지주회사 대웅의 대표이사 회장 자리를 내려놨지만 경영 제일 앞인 ‘일선’서 물러났을 뿐이다. 실제로 윤 회장은 대웅제약의 지주회사인 대웅 지분을 11.61% 가진 최대주주다. 

대웅은 대웅제약 지분을 40.73% 갖고 있다. 대웅제약의 주요 의사결정에 윤 회장의 의견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직위는 내려놨지만, 경영서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다. 이에 윤 회장의 사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들이 나온다.

물러나도 
여전히 오너


한 업계 관계자는 “윤 회장의 사퇴는 얼핏 봤을 때 용감해 보이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변화를 약속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상 면피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피해를 고발한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실질적인 대책 발표가 있어야 한다”며 “내부고발 직원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모욕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고 불이익도 각오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해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회사원 A씨는 “윤 회장이 직위를 다 내려놔도 바지사장을 앉히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외부 인사가 사장을 하더라도, 총무, 인사, 기획 등 주요 직책에 자기 심복을 심어 놓으면 모든 의사결정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제대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려면 내부 익명 신고제도, 윤리경영 관련 국제 기준 도입, 해당 내용에 대한 제삼자 검증 등 장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임은 그저 ‘쇼’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재벌 갑질 문화를 바꿔야 할 때라는 의견도 나왔다. 

회사원 B씨는 씨는 “실제 사임했다고 해도 가족경영인 국내 재벌 경영 체제서 그게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하다. 이제는 이 기본이 안 된 오너와 그에 따른 경직되고 인권이 보장 안 되는 조직 분위기가 재벌 가족 경영의 부작용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안다”며 “앞으로는 체질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조직의 이해관계자, 주주들 사이서 이런 논의가 나와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윤 회장의 사퇴는 그저 여론이 가라앉길 기다리는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자영업자 C씨는 “대주주인만큼 경영에 참여를 아예 안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다만 대중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언젠가 모습을 다시 드러낼 것이다. 조현아도 땅콩회항으로 사퇴했지만 슬그머니 경영 복귀를 시도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처음 아니다” 녹취록 공개로 망신
지분 40.73% 소유…여전한 영향력

그는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나올 것으로 본다”고 꼬집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아직까지 윤 회장의 복귀 여부나 시기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윤 회장의 회사 지배력이 견고하고, 형제들 중 회사 업무에 관여하는 인물이 없어 언젠간 경영에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선 윤 회장의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안타까워하는 반응도 나온다. 갑질 및 인성 논란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져야 하겠지만 지금껏 대웅제약 윤 회장으로서 걸어온 길을 버리기엔 안타깝다는 주장이다. 

실제 윤 회장은 국내서 보기 드문 경영 실험자로 불릴 정도였다. 무엇보다 제약업계서 이 같은 평가를 내렸을 정도다.

윤 회장은 인사에 보수적인 제약업계 룰을 깨고 연 2회 정기 인사로 기대와 우려를 부른 인물이다. 더욱이 지난해 3월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를 사외이사로 깜짝 선임하면서 동종업계서 이례적인 족적을 남겼다. 

이는 모두 회사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행보로 증명되면서 윤 회장의 가치를 높였던 바 있다.

무엇보다 오너 일가가 수장 자리를 이어받는 제약업계서 이례적으로 젊은 전문 경영진을 기용하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으로 전환하며 역시 남다른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단 해외로
잠잠해지면?

그러나 이 모든 평가는 윤 회장의 인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무너져내렸다. 무엇보다 윤 회장은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면서 올해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는 어렵게 됐다. 매출액을 높여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자신으로 인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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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