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장기불황이 거듭되면서 실업자 문제는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문재인정부는 책임감을 느끼고 강력한 조치를 내리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요원하다. 80만개의 양질의 일자리 공약이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자 재계가 직접 나섰다. 정부의 기조에 힘을 보태고 있는 셈. 정부 눈치 보기의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정부는 대선 당시 일자리를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정운영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하다. 지난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확장실업률은 11.8%로 집계를 시작한 201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팔 걷는 기업들
특히 상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로 평가받는 제조업 부문에 취업하는 취업자 수가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제조업 취업자 수는 453만1000명으로 2014년 상반기에 443만2000명으로 집계된 이후 상반기 기준 최저치다. 문정부로서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가운데 재계가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다.
삼성은 앞으로 3년간 180조를 투자하고 4만명 규모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 확대와 혁신성장, 대·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하는 문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응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삼성은 지난 8일 신규투자 확대, 청년일자리 창출, 미래 성장사업 육성을 골자로 하는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했다. 삼성에 따르면 향후 3년간 투자 규모를 총 180조원으로 확대하고 국내에 총 130조원(연평균 43조원)을 투입한다.
반도체는 PC, 스마트폰 중심의 수요 증가에 이어 미래 AI(인공지능), 5G, 데이터센터, 전장부품 등의 신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에 대비해 평택 등 국내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한다. AI·5G·바이오·전장부품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에도 약 25조원을 투자한다.
삼성은 이 과정서 일자리 4만개를 새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필두로 속속 대규모 투자 계획
기업들 눈치 보며 ‘도대체 얼마나?’
삼성 관계자는 “이번에 마련된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방안은 관계사 이사회 보고를 거친 것으로, 진정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실행해 삼성과 중소기업, 청년이 윈윈할 수 있고 국가경제의 지속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전했다.
하지만 삼성의 이번 발표를 두고 재계에선 정부의 눈치 보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부의 강한 압박 속에서 삼성이 투자를 하는 모양새로 읽힌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삼성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등의 부정 이슈가 나오면서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의 인도공장 준공식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국내에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6일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예상되기도 했다. 정부의 이 같은 행보가 압박으로 보일 수 있다고 정부 스스로도 판단하는 모양이다.
김 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한 것을 두고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투자를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한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 김 부총리가 대기업을 방문한 곳은 대규모 투자가 약속되기도 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말부터 LG(지난해 12월)·SK(3월)·현대차(1월)·신세계(6월) 등 4개 그룹을 방문했고, 이들 기업은 화답하듯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LG그룹은 지난해 12월 정부에 19조원 신규 투자, 1만명 신규 채용을 약속했다. LG그룹은 신성장 동력인 전기차 부품, 자율 주행 센서, 카메라 모듈, 바이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화학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현대동차그룹은 5년간 23조원 투자, 일자리 4만5000개 창출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차량전동화, 로봇·인공지능(AI), 미래에너지, 스타트업 육성 등 5대 신성장 사업에 투자를 결정했다.
SK그룹은 올해 27조원5000억원, 향후 3년간 80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3년간 2만8000명 규모의 신규 채용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 대상은 5대 신사업으로 반도체·소재, 에너지, 차세대 ICT, 미래 모빌리티, 헬스케어 등 5개 부문이다.
정부 기조에 보조 맞추는 모양
첫 번째 대선 공약 달성에 속도
지난 6월에는 김 부총리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을 만나 “우리 경제의 화두는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신세계는 김 부총리와의 간담회서 향후 3년간 연평균 3조원 총 9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투자 방안도 제시됐다. 신세계는 유통부문에 5조5000억원을 비롯해 향후 3년간 연평균 3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는 향후 3년간 신규채용을 3만명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김 부총리가 방문하지 않은 기업 가운데서도 투자를 약속한 기업이 있다. 한화그룹은 매년 7000여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태양광 9조원·석유화학 5조원·방산 4조원·서비스부문 4조원의 투자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향후 5년간 총 22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연평균 투자금액은 4조4000억원 규모다. 최근 3년 평균 3조2000억원보다 37%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다만 한화의 경우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문했던 기업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주요 인사가 방문했던 재계 상위 주요기업들이 일자리 채용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정부의 기조에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가 됐다. 이들이 약속한 일자리는 18만명, 투자규모는 333조원에 이른다.
문정부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80만명에 상당부분 보탬이 되는 숫자. 이후에도 재계의 주요기업들에 투자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만간 GS이 투자 계획을 밝힐 가능성이 있다. GS칼텍스는 2021년까지 여수공장에 2조6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일자리 창출 규모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들의 투자가 기업 스스로의 성장을 위한 투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들의 투자가 일종의 정부 눈치 보기에 따른 행보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다른 목적?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기업들이 공교롭게 문 대통령이나 김 부총리의 방문이 있었던 곳”이라며 “대부분 문 대통령 임기 기간 동안의 투자규모를 밝힌 것은 결국 정부 눈치보기의 결과물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