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588’ 어떻게 변할까?

단지나 도보권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원-스톱(one-stop) 리빙 단지’가 수요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안정적 자산가치는 물론 청약 성적도 좋으며 가격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아파트 분양시장뿐만 아니라 상가, 오피스텔, 지식산업단지 등 수익형 부동산 시장 전반에도 ‘원-스톱’이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 편리한 교통은 물론이고 우수한 교육환경, 쾌적한 자연, 편의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인프라를 단지에서 도보로 누릴 수 있는 원-스톱 아파트는 부동산시장 내 스테디셀러로 통한다. 

한 번에 해결
하나의 도시

최근 잇따른 초강력 부동산 규제에 안정성 높은 자산 확보가 중시되면서 탄탄한 미래가치까지 누리는 원-스톱 단지에 대한 주목도는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실제 청약 성적에서도 그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114 자료를 보면 KTX 진주역과 중심상업지구, 교육시설 등이 밀집해 있는 경남 진주혁신도시에서 지난해 12월 분양한 진주혁신도시의 ‘중흥S-클래스 더퍼스트’는 1순위 청약접수 결과 평균 31.75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반면 같은 달 분양한 강남동의 ‘진주강남동 일동미라주’는 평균 9.26 대 1로 중흥S-클래스 더퍼스트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가격에서도 강세다. 세종특별시 새롬동의 올 2월 기준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3.3㎡당 1391만원으로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새롬동은 이른바 지역 최대 중심상업지구인 데다 BRT정류장, 학교, 근린공원 등이 모두 밀집된 세종시 내 ‘노른자위’생활권으로 불린다. 새롬동 내 위치한 단지들의 평균 매매가는 세종시 전체 평균(1042만원)에 비해 약 33.5%가량 높은 수준이다. 

원-스톱 리빙이 가능한 단지가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높은 편의성뿐 아니라 쾌적한 주거 환경도 한몫한다. 단지 인근으로 초·중·고 등 다수의 교육시설이 있어 유해업종이나 혐오시설이 들어올 가능성이 낮다. 또한 입지 자체의 희소성이 높은 데다 풍부한 인프라로 주거가치가 높아 환금성도 좋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 중시되면서 바쁜 삶 속에서도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수요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원-스톱 단지는 지친 현대인들이 집 인근에서도 여가 및 생활편의를 모두 편리하게 누릴 수 있다는 강점으로 향후에도 더욱 각광받는 추세라는 게 업계의 견해다.

원-스톱 리빙으로 부각되는 주거단지로 MXD(Mixed Use Development·주거복합단지)가 있다. MXD는 주거와 상업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지는 미래도시 개발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MXD는 주거 외에 상업, 교통, 업무, 문화, 교육 등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상호보완이 가능하도록 연계 개발한 것이다. 도시 속 도시를 형성하는 차세대 주거단지로 떠오른다. 도시 개발용지 부족과 구도심 공동화 문제 등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구도심에서 쇠락한 기능을 효율적으로 재정비하여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수단이 바로 MXD다. 

이미 해외에서는 MXD 방식의 복합단지가 경제적 효과와 가치를 창출하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일본의 롯폰기힐즈를 비롯해 미국의 배터리 파크시티, 파리의 라데팡스,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릿츠 등이 그 예다. 

MXD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국내에서는 2000년 착공해 2005년 준공된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가 처음으로 MXD 개념을 도입한 사례다. 센텀시티에는 벡스코를 중심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해 롯데백화점 같은 대규모 쇼핑시설과 영화의전당,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KNN, 영화진흥위원회, AP EC나루공원, 부산월드비즈니스센터, 넥슨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센텀시티는 영상 산업의 메카이자 세계적인 쇼핑 명소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부산 경제에 활기를 주고 있다.

도심에 MXD가 건설되면 도시 주거 균형발전은 물론 지역경제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는 집값에도 꽤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대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랜드마크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원-스톱 리빙 단지가 대세
분양시장 스테디셀러 우뚝 

실제 국내 최초 복합단지로 일컬어지는 센텀시티가 들어서면서 해운대구 우동은 부산에서 가장 비싼 동네가 됐다. 센텀시티가 속해 있는 해운대구 우동 일대 집값은 3.3㎡당 1623만원(부동산114, 3월 4주 기준)으로 해운대구(1261만원)와 부산시 평균 집값(982만원)을 웃돌고 있다. 올해 부산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아파트 TOP3에 이름을 올린 ‘해운대 두산위브 더 제니스’(최고 31억9940만원), ‘해운대 아이파크’(15억5000만원),‘대우트럼프월드마린’(15억원)도 모두 센텀시티 내에 있는 초고층 아파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MXD는 차세대 주거공간으로도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앞서 말한 롯폰기힐즈 레지던스는 일본 연예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집으로 꼽힐 정도다. 주거와 상업시설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시설까지 함께 개발되다 보니 단지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추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나서기만 하면 대형 백화점과 할인점을 비롯한 쇼핑, 비즈니스 시설, 문화시설, 교육시설까지 이용할 수 있다. 단지 안에 모든 기능이 압축돼 단지가 하나의 도시를 형성하는 원스톱 라이프의 최적화된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현관문 나서면 
쇼핑하고 운동

사람들이 많이 찾고 수요가 있는 만큼 개발 30년에 다다른 1기 신도시 등의 구도심에서도 M XD를 모델로 한 도시 재생 움직임이 최근 가시화되고 있다. 집 근처서 모든 생활을 해결하는 올인원 라이프 이른바 ‘올인빌(All-in-Vill)’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공간 효율 집약적인 주거복합단지가 급부상하며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MXD가 바로 이러한 니즈와 콘셉트에 딱 들어맞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MXD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지역 랜드마크이자 시세 리딩하는 부의 대명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 최고가를 달리고 있는 청주의 지웰시티, 성남 분당 알파리움,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등이 그 예다. 이들 MXD가 들어선 곳들은 현재 지역의 강남이라 불릴 정도로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성장했는데, 지역 시세를 리딩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MXD 성공사례로 꼽히는 지웰시티는 유일하게 청주에서 10억이 넘는 아파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판교 알파리움이나 동탄 메타폴리스 역시 지역 내에서 비싼 아파트로 유명하다. 이처럼 MXD는 탁월한 주거편의성으로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이것이 MXD가 도시개발 트렌드로 급부상하며 개발에도 탄력을 받고 있는 이유다.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정책에 발맞춰 요즘 복합개발 움직임은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MXD로 개발 본격화하는 수원 구도심 화서역세권 개발이 그것이다. 1호선 화서역 인근에 13년간  유휴지로 남아 있던 KT&G 옛 연초제조창 부지를 복합지구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곳에 대형 테마파크형 쇼핑몰과 업무시설, 공동주택(화서역 파크 푸르지오, 최고 46층, 총 2355가구), 그리고 약 4만평의 도시공원 등을 포함하는 일본 롯폰기힐즈 같은 도시 속 미니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다. 개발면적 규모는 30만5000㎡에 달하고 사업비가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달해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단지 안에 모든 기능이 압축
원스톱 라이프 최적화된 모델

서울 여의도 옛 문화방송(MB C) 부지도 MXD로 개발된다. 1만7795㎡에 달하는 부지에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가 한 곳에 들어서는 복합형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청량리 588’로 불리던 청량리 4구역에도 호텔, 쇼핑몰과 공동주택(최고 65층) 등으로 구성된 MXD가 들어선다. 

부동산 관계자는 “MXD가 많은 장점과 가치를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사업추진 절차가 복잡하고 개발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상대적으로 고분양가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이 한계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조언했다.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서도 투자 성공 키워드로 원-스톱이 급부상하고 있다. 상권 중에서 원-스톱 소비가 가능한 대표적인 곳으로 ‘항아리 상권’이다. 항아리 상권에 위치한 상업시설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 받는다.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나 기업, 관공서 등 고정된 배후 수요가 있다. 상권 내에서 유통시설, 각종 편의시설, 여가시설 등 원-스톱으로 누릴 수 있어 입주민들과 유동인구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내에서 생활을 해 독립적인 상권을 유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신도시 및 택지지구와 같이 주거용지와 상업용지가 체계적으로 계획된 지역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항아리 상권에 위치한 상업시설은 풍부한 배후수요를 갖춰 투자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1인 가구 증가로 소형 오피스텔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함께 두각을 나타낸 것이 바로 원스톱 생활 인프라를 갖춘 오피스텔이다. 지난해 9월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 진건지구에 공급된 ‘다산자이 아이비플레이스’오피스텔은 270실 공급에 1만8391건이 접수돼 평균 68.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아파트 평균 경쟁률 (6.80대 1)을 크게 웃돈다. 한화건설이 같은 해 10월 분양한 서울 ‘영등포뉴타운 꿈에그린’오피스텔(111실)도 아파트보다 높은 평균 22.4대 1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계약 시작 이틀 만에 완판 됐다.

높은 편의성
쾌적한 환경

업무시설의 경우 업무와 주거, 여가 기능을 하나로 합친 원-스톱 서비스 제공 비즈니스 콤플렉스가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지식산업센터도 예외가 아니다. 비즈니스, 제조, 업무지원, 주거 등 각 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일과 주거를 동시에 해결하는 원-스톱 라이프를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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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