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성종 7년(1476) 5월19일 기록이다.
『경연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임금이 영사(領事)에게 이르기를, “원상(院相)을 없애자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가 사실 덕이 모자라기 때문에 대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의논할 일이 있을 경우 여러 재상에게 나아가서 문의하려면 늦어질 듯하여 없애지 않았던 것인데, 다만 정원(政院, 승정원)의 품격이 낮아서 대신을 그 곳으로 오게 하는 것은 대신을 공경하는 도리가 못되므로 마음에는 사실 미안했었다. 그래서 지금 원상을 없애겠다. 그러나 아침 경연에는 그전처럼 참석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조선조 제7대 임금인 세조 말기에 일이다. 세조는 건강 이상으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어렵다 판단하고 궁여지책으로 승정원(현 대통령 비서실)에 원상 제도를 설치한다. 그에 따라 세조의 중신들이었던 신숙주·한명회·구치관 등을 원상으로 삼아 항상 승정원에 나와 정무를 보도록 했다.
당연하게도 세조 사후 모든 정치권력이 승정원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신의 비서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성종의 마음은 어땠을까. 허수아비 임금으로 전락한 성종은 결국 상기 기록처럼 좋은 말로 원상 제도를 없애고 육조직계제를 시행한다.
육조직계제는 태종과 세조 초에 실시되었던 제도로 왕이 6조에 직접 명령을 하달해 실행했고 6조도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왕권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지만 왕이 실무부서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측면 역시 강하다. 이로 인해 성종은 사후 ‘조선을 완성시켰다’라는 의미의 성종(成宗)이라는 시호를 받게 된다.
이제 시선을 현실로, 지난 해 실시된 제19대 대통령선거로 돌려보자.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심지어 그를 위해 ‘광화문 대통령 공약 기획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와 맞물려 문재인 후보는 기자회견을 갖고 “광화문 대통령 시대는 상처받고 아픈 국민들을 치유하는 그런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이라면서 “친구 같은 대통령, 이웃 같은 그런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연하게도 청와대 비서실 중심이 아닌, 청와대의 기능을 축소하고 내각 중심의 정치를 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였을 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이 청와대로부터 시작되었던 점이 그리 믿도록 한몫했다.
그런데 최근 기가 막힌 기사가 언론에 실렸다. 청와대가 자영업·소상공 담당 비서관직 신설을 검토 중이며 그럴 경우 현재 486명인 청와대 비서실 인력이 500명에 육박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울러 지난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 인력 수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그에 따르면 200-300명 정도에 머물던 비서진 수가 김대중정부 들어 400명을 넘어섰고, 노무현정부 때 513명, 이명박정부 때 456명, 그리고 박근혜정부 때 465명이었음을 언급했다.
이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숫자뿐 아니라 내용이다. 아마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배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비서진 확대를 밝힌 모양인데, 그런 경우라면 결국 문 대통령 역시 박 전 대통령처럼 청와대만 끼고 돌겠다는 심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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