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73)제안

사로잡힌 백제의 비장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장군, 그런데 저 산의 이름이 무엇이오?”

의직이 산을 주시하다 이내 주변에 늘어선 병사를 바라보았다. 한 병사가 우물쭈물 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백화산이라고 산 중에 옥문곡이 유명합니다.”

“지금 옥문곡이라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대감.”


중상이 옥문곡을 되뇌며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왜 그러시오, 대감.”

“옥문곡이면 적의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럽니다.”

“도대체 옥문곡이 뭐기에?”

원망의 눈빛

옥문곡, 십여 년 전 일이었다. 백제의 장군 우소가 신라를 침공하기 위해 매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신라의 궁궐 서쪽에 있는 옥문지에 두꺼비들이 떼로 모인 일이 발생했었다.

그를 살핀 선덕여왕이 백화산에 있는 옥문곡에 백제의 병사들이 매복하고 있을 터이니 그를 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신라의 장군이던 알천과 필탄이 반신반의하며 그곳에 이르자 백제의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사전에 발각된 백제 군사들이 신라군에 의해 참몰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그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중상을 바라보는 의직의 표정이 마뜩치 않게 변했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고 이 지점이 매복 장소로 그만이라는 말입니다. 여하튼 수색병이 나갔으니 잠시 그들을 기다려 봅시다.”

의직이 신라군이 사라진 방향을 주시하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수색나갔던 병사들이 돌아왔다.

“어떤가?”

“대감께서 속으신 듯합니다.”

“뭐라!”

“신라군의 깃발은 보였으나 군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상이 막 뭐라 말하려는 순간 의직이 고개를 돌려 병사들에게 서둘러 신라군을 쫓으라 명을 내렸다. 

명에 따라 비장들이 앞을 다투어 산으로 내달렸다.


의직이 중상을 원망스런 눈치로 바라보며 저도 군사들의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백제의 주력군이 숲에 들어서기 무섭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라군이 응전했다. 

그러나 이미 상황을 간파한 백제군이 온 힘을 다해 신라군을 치며 뒤를 쫓았다. 

백제군이 막 신라군의 후미를 잡았을 시점에 북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백제의 의직은 어서 목을 내놓지 않고 뭐하는 게냐!”

우렁찬 고함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상장군 김유신’이라는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그 옆에 칼을 든 유신이 신라 병사들을 독전하고 있었다.


순간 당황한 의직이 급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세 갈래로 난 숲에서 화살과 커다란 그물이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함정임을 깨달은 의직이 급히 퇴각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앞서 나간 백제 군사들은 화살에 그리고 그물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인 전세의 역전으로 백제군이 정신없이 퇴각하여 요거성에 들어 성문을 닫았다. 

중상이 잠시 한숨을 돌리고 인원을 살피자 태반이 돌아오지 못했다.

“나 신라의 김유신이오. 의직 장군은 얼굴을 내미시오.” 

포로들과 성주 가족의 유골 교환
기세를 몰아 백제 국경 공략하다

중상이 혀를 차며 의직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중에 성 밖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중상이 다시 의직을 바라보았다. 

사색으로 변한 그의 모습을 흘낏 살피고는 대신 성루로 올라갔다. 

성 아래 저만치에 김유신 기를 들고 있는 병사 옆으로 김유신과 사로잡힌 백제의 비장 여덟 명이 죽을상을 짓고 서 있었다.

“김유신 장군. 나는 백제의 좌평인 중상이오. 내게 대신 말하시오.”

“누구라도 좋소. 내 긴히 제안하고자 왔소.”

중상이 가만히 상황을 살펴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시오.”

“지금 백제의 비장들이 내 포로로 잡혀 있소. 아울러 이 포로들과 지난 대야성 전투에서 희생당한 성주 가족들의 유골을 교환했으면 하오.” 

“김품석 성주 가족이라 하였소?”

“그러하오. 그들의 유골과 살아 있는 백제의 비장 여덟 명과의 맞교환을 원하오.”

중상이 생각을 위해 잠시 사이를 두고는 비장들의 몰골을 살폈다. 

살려달라는 표정이 간절하게 비쳐졌다.

“좋소. 내 궁궐로 돌아가면 반드시 그들의 유골을 관에 넣어 돌려보내도록 하겠소. 그러나 유골을 돌려주었는데 장군이 반드시 포로를 돌려 보내주리라 어떻게 확신하겠소. 그러니 지금 포로를 풀어주시오.”

“지금 한창 전쟁 중인 마당에 풀어줄 수는 없소. 아울러 유골을 받은 연후에 보낼 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오. 나뭇잎 하나 떨어진다 해도 무성한 숲에는 손실 없고, 먼지 하나가 모인다 해도 큰 산에는 아무런 보탬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신다 하지는 않겠지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함은 신라군이 바로 물러서지 않음을 아울러 백제 비장 정도는 전세에 아무런 지장을 미치지 못함을 의미했다.

“하면, 왜 이 성은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어차피 거의 전멸상태인 백제군이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우리 수중에 떨어질 터인데 무엇하러 수고하겠소. 그러니 어서 사비성으로 돌아가 맞교환을 서둘러 주시오.”

유신의 핵을 지르는 말에 가벼운 신음을 토해냈다. 

결국 백제군은 성을 내어주다시피 하고 사비성으로 돌아갔다. 

아울러 중상은 의자왕에게 보고하여 김품석 일족의 유골을 관에 담아 신라로, 이어 신라는 약속대로 포로로 잡힌 백제의 비장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유신은 곧바로 철수하지 않고 승전의 기세를 타서 백제 국경을 공략하여 악성 등 이십여 성을 쳐서 빼앗고서야 경주로 돌아갔다.

진덕여왕이 김춘추와 그의 둘째 아들인 인문을 당나라에 사절로 보냈다. 

당태종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당한 부상을 위문하고 그간 신라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부분에 대한 사은의 사절이었다.

춘추 일행이 당나라에 도착하자 당태종은 광록시경(光祿寺卿, 외빈 접대를 받는 부서의 장)인 유형교로 하여금 중도에서 김춘추를 접대하여 함께 수도에 이르게 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또한 유형교로부터 김춘추의 외모와 됨됨이를 전해들은 당태종이 여타의 다른 사절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선처를 베풀었다.

외형상으로는 춘추 개인을 들먹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직도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해진 특별한 배려에는 그만큼 커다란 보따리를 가져간 때문이었다.

사절단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가져간 신라의 진귀품이며 특산품이 배를 두 척이나 띄울 정도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으니 이세민으로서도 소홀히 대접할 수는 없었던 때문이었다.

파격적인 선처

당태종은 춘추를 위해 국학에서 석전(釋奠, 공자를 제사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당고조가 여산(廬山)온천에 가서 지은 ‘온탕비(溫湯碑)’와 자신이 태원의 사당에 가서 지은 ‘진사비(晋祠碑)’의 비문 탁본과 새로 제작한 진서(晋書)를 주는 파격의 조처를 취했다.

또한 사사로이 춘추를 불러 연회를 베풀어 춘추에 대한, 아니 신라 조정의 대대적인 사은 행위에 나름의 예를 다했다. 

“폐하, 황은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회를 베푼 이세민이 금과 비단을 하사하자 춘추가 머리를 조아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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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