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년 전 묻힌 ‘김경희 파일’ 건국대-예맥 수상한 거래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2.05 10:32:05
  • 호수 1152호
  • 댓글 0개

털수록 먼지 폴폴…검찰만 몰랐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대학 법인이 이사장 지인의 화랑서 수십억원 상당의 미술품을 구입했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지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당시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고가 미술품은 재벌 비자금 세탁의 단골 메뉴였다.

김경희 전 건국대학교 이사장이 수상한 미술품 거래로 지난 2014년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건국대 학교법인은 김 전 이사장의 지인이 운영하는 화랑 ‘예맥’서 미술품 198점 28억원어치를 독점 공급 받았다는 특혜 의혹을 받았다. 미술품의 구입 가격이 경매 낙찰가보다 2배서 많게는 20배에 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사장과 무관?
혐의 없음 종결

그러나 검찰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수사 결과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때 검찰은 김 전 이사장 자택과 갤러리 예맥 등 압수수색까지 했지만 건진 게 없었다. 이를 두고 건국대 내부에선 ‘검찰이 사건을 덮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사를 받았던 건국대 핵심 관계자는 “수사관들이 압수수색 목록에 나온 미술품을 압수하려고 갔지만 해당 미술품이 없었다”며 “피의자들도 그림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서 석연치 않은 진술이 많았지만 검찰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것.  


최근 건국대 사학비리가 불거지자 미술품 수사에 대한 의혹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건국대학교 재단 현 이사장의 형사처벌 방안 등 검토 의견서’에 따르면 검찰이 미술품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이 석연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견서는 지난 2014년 1월 건국대의 정상화를 바라는 4개의 단체가 모 법무법인에 김 전 이사장의 비리에 대해 형사처벌이 가능한지 의뢰한 보고서다.

먼저 건국대 학교법인은 시가보다 부풀려 예맥서 미술품을 매입했다. 미술품 가액은 통상 시장서의 경매가로 결정한다. 감정가보다 미술품 시장인 K옥션과 서울옥션의 경매 기록이 가액 선정에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 

고가 미술품 독점 공급·매입 
모두 198점 28억원어치 매매  

예맥 납품 미술품 목록 상의 주요한 고가 작품들의 취득가액을 K옥션과 서울옥션의 경매기록에 비교한 결과 건국대 학교법인은 시가보다 2~20배가량 부풀려 예맥으로부터 미술품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종현 작품 = 건국대 학교법인은 2007년 12월24일 하종현 작가의 180X120cm 크기 작품 2점, 2008년 4월25일 같은 크기의 작품 1점을 예맥서 구매했다. 1점 당 6000만원으로 1억80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경매 기록 검토 결과 하종현 작가의 같은 크기 미술품은 이보다 훨씬 못 미치는 금액에 거래되고 있었다. 2009년 6월29일 하종현 작가의 미술품이 2800만원에 경매됐다. 건국대 학교법인은 시가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그림을 매입한 셈이다.


▲David Gerstein 작품 = 건국대 학교법인은 2007년 12월24일 David Gerstein 작가의 130X160cm 작품 2점을 총 8400만원(각 4200만원)에, 6X1.5m 작품을 3억5000만원에 예맥서 구입했다. 더불어 위 작가의 작품 7점을 총 10억800만원에 구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경매기록 검토 결과 이 작가의 작품은 경매 최고가 기록이 1250만원에 불과했다. 경매기록상 1㎠당 가액 1183원으로 환산된다. 이러한 시가로 최고가였던 크기 6X1.5m의 작품 가격은 1억602만원에 불가하다. 따라서 시가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가격에 공급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전광영 작품 = 건국대 학교법인은 2010년 9월13일 전광영 작가의 175X142㎝ 작품과 171X143㎝ 작품 등 2점을 총 2억4000만원(각 1억2000만원)에 예맥으로부터 사들였다. 또 2011년 1월31일 162X125㎝ 크기 작품 1점을 1억원에 매입했다. 건국대 학교법인은 전관영 작가 작품을 총 3억4000만원에 샀다.

하지만 전광영 작가의 작품은 위 작품과 유사한 크기인 163X131㎝ 작품이 각각 4000만~5200만원 사이서 경매된 기록이 있다. 경매 기록상의 1㎠당 가액은 2040원이다. 건국대 학교법인이 매입한 가장 큰 175X142㎝ 작품의 가격을 환산하면 5069만원에 불과하다. 시가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공급됐다. 

갤러리 대표와 
30년 지기 친구

▲이정자 조각 = 건국대 학교법인은 2009년 10월30일 이정자 작가의 45X30X100㎝ 및 30.6X37X102㎝ 작품 2점을 예맥을 통해 총 7000만원(각 3500만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이정자 작가의 조각은 건국대 학교법인이 구입한 것보다 훨씬 큰 높이 141㎝과 144㎝ 크기 작품이 각각 630만원과 420만원에 경매된 기록이 있다. 

이정자 작가의 작품 가액은 1㎠ 당 13.85원으로 환산된다. 이런 시가를 건국대 학교법인이 산 작품인 45X30X100㎝ 작품의 크기로 환산하면 가격은 197만원에 불과하다. 건국대 학교법인은 시가보다 무려 스무 배 가까운 비싼 가격에 예맥으로부터 작품을 구입한 셈이다.
 

이처럼 예맥서 공급한 주요 작품 대부분을 시가보다 수십배 비싼 가격에 건국대 학교법인이 매입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한 법무법인은 “이런 미술품의 독점 공급, 그것도 부당하게 부풀려진 가격으로 공급을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 중 상당부분은 이사장에게 전달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이를 본 복수의 화랑 관계자들도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인사동서 갤러리를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큰 거래를 할수록 뒷돈을 안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고가 미술품은 재벌 비자금 세탁의 단골 메뉴였는데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서 400여점의 미술품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의 이름으로 고가 미술품을 사들였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특검의 핵심은 고가 미술품이었다. 미래저축은행 로비 사건 때도 미술품이 등장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로비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고가 미술품=비자금’이라는 공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때 그 작품들 어디?
공중에 뜬 차익 누가?

그렇다면 왜 건국대 학교법인은 예맥을 통해서만 고가의 미술품을 매입했던 것일까. 이는 예맥 대표 정모씨가 김 전 이사장의 절친한 친구였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씨는 김 전 이사장과 30년 지기다. 김 전 이사장이 화랑서 일하던 시절 같이 근무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정씨는 김 전 이사장의 집안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김 전 이사장과 그의 둘째 딸이 전시회가 있을 때 장소 섭외는 물론 다과까지 챙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관계 때문에 당시 정씨가 예맥 갤러리와 카페 임대료 특혜를 건국대 학교법인으로부터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2014년 교육부 감사에서 정씨가 운영하는 카페와 화랑 갤러리가 ‘법인 수익사업체 및 대학 부속병원 임대료 책정 부적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건국대학교 병원은 지하 1층 노른자 위치인 로비공간을 정씨와 임대보증금 5000만원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건국대 병원 내 임대료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건국대 학교법인 소유 호텔 ‘더 클래식 500’에 입주한 예맥 갤러리는 당시 바로 옆 ’우리투자증권‘ 사무실의 평당 임대료와 비교했을 때 임대료가 3분의 1수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이사장과 정씨의 이런 긴밀한 커넥션이 있었음에도 검찰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건국대 한 내부 관계자는 “당시 정씨는 참고인 조사만 받았다. 미술품 구입 형태나 미술품이 현존하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계좌 압수수색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학교법인이 소유한 그림들의 행방을 둘러싸고 뒷말도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안했나
부실수사 의혹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김 전 이사장과 정씨 그리고 건국대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답했다. 먼저 김 전 이사장은 전화 및 문자 등으로 입장을 듣기 위해 시도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정씨는 “검찰 수사도 다 받았으며 아무 문제없이 끝났다. 어떠한 비리도 없었다”고 말했다. 

건국대 관계자도 “이미 검찰서 혐의없음으로 끝난 사안이다. 현재 미술품 관리는 학교서 잘하고 있다. 당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미술품 갖고 불법적인 일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술품 수사 어려운 이유

미술품 거래는 주로 현금으로 이뤄지고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재벌가의 비자금 조성 및 탈세의 ‘온상’으로 지적돼 왔다. 미술품 거래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미술품의 특수성과 비과세 영향이 크다. 미술품은 특성상 ‘정가’를 못 박기 어렵다.

얼마든지 가격 조작이 가능해 기업의 비자금 조성 및 세탁 창구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과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 증여 수단으로도 용이하다.

과세 당국은 고가의 미술품 보유 여부를 알 수 없고, 존재 자체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상속세나 증여세를 아예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술품 비자금 수사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