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vs 정동영 ‘주도권싸움’ 막전막후

어정쩡 우향우 ‘손주몽’이냐? 확실한 좌향좌 ‘개성동영’이냐?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민주당에 또 다시 ‘내전’이 시작됐다. 지난해 민주당 10·3전당대회를 거치며 이미 ‘혈전’을 치룬 바 있는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 당내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두 사람은 대선이 내년으로 바짝 다가옴에 따라 ‘정면충돌’ 하며 요소요소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두 사람의 최종 종착역은 ‘대권’으로 같지만 좌석은 단 하나뿐. 과연 누가 대권주자 자리를 꿰차고 마지막에 웃게 될까?

해외로 뻗으며 ‘통큰정치’ 펼치는 손학규
손 대표, 미국 찍고 오면 본격 대권 레이스?

최근 대북정책 기조를 놓고 민주당에서는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의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강조하는 손 대표는 퍼주기 식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며 대북정책 기조의 변환을 꾀했다.

여기에 정 최고위원은 ‘포용’을 강조하며 빠른 대북지원의 촉구로 손 대표에 발언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하지만 손 대표도 지지 않고 응수하며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북문제로 ‘충돌’
장외공방 이어져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된 발언은 손 대표가 지난달 28일 방일 중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의 면담에서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계속 설득할 필요가 있지만 인권, 핵, 미사일 개발 문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한 데서 시작됐다. 이는 손 대표가 그간의 무조건 퍼주기 방식의 대북 햇볕정책을 비판한 것.

하지만 정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최고위원은 “마치 우리의 포용정책, 햇볕정책이 원칙 없는 정책이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손 대표는 지지 않고 원칙 없는 지원은 불필요한 ‘종북진보’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되받아쳤다. 정 최고위원도 즉각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 핵 포기를 이끌어 냈는데 이를 종북진보라 말씀하신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표현”이라며 각을 세웠다. 

이들의 충돌은 장외공방으로도 이어지며 계속됐다. 각각의 지지모임에 참석해서도 대북관련 발언은 이어졌던 것.

정 최고위원은 지난 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주희망 2012’ 출범식에서 “민주정부 10년간 북한인권의 실질적인 개선을 가져왔다”고 “실천적 해법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손 대표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핵과 미사일과 상관없이 대북지원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손 대표는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자신의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 출범 5주년 행사에서 자신의 대북정책 기조를 설명했다.

그는 한나라당 시절에도 햇볕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사실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북한의 개혁 개방과 별도로 핵무장 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어 중국을 공식 방문 한 손 대표는 지난 4일 주중특파원과 가진 만찬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햇볕정책의 원칙”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못박았다.

이러한 손 대표의 강경한 입장을 두고 일각에서는 그가 대북정책에 대해 정 최고위원 측에 더 이상 양보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개성공단 건설 경험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접견하며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정 최고위원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와 차별화를 두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

또 지난 10년간 이어온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한 의중으로 읽힌다.

중도층 껴안는 손 대표
해외로 ‘통 큰 행보’ 이어

여기에 두 사람의 ‘노선’과 ‘전략’도 차별성이 두드러진 대목이다. 손 대표는 지난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에 출전하여 승리를 거두며 명실상부한 야당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선거 승리의 요인에는 손 대표의 중도 이미지가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에 손 대표는 ‘민생 진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민주당 지지층을 넘어 중도층까지 공략하는 대안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해외로 발길을 돌리며 외교력 입증에 주력하고 있다.

손 대표는 인사개편으로 친정체제를 구축하며 당을 장악 후 곧바로 해외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달 27일 일본으로 넘어가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며 일본의 여·야 각 당 대표 및 정계 지도자들을 잇달아 만났다.

이어 그는 지난 4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초대로 중국으로 건너갔다. 내친김에 미국 방문도 일정 조율에 들어가 올해 안으로 방문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해외방문으로 손 대표 스스로의 위상을 높였고, 꾸려온 보따리가 괜찮았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한일관계와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외교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 대표는 이어진 방중 일정 역시 국가원수에 준하는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시진핑 부주석,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 등 중국의 차기 지도자들과 면담했다.

그는 시 부주석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 및 남북대화 재개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북한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 이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보 서기와의 면담에서 한·중경협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물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과 중국 측에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평창이 최종 선정된 것 역시 손 대표로서는 최고의 성과이다.

이처럼 연이어 통 큰 행보를 선보이는 손 대표는 소수정당 등과의 통합을 위한 공천제도 정비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점차 손 대표의 당 장악력이 커지자 그간 눈치를 봐왔던 수도권 등 일부 중도파 의원들이 이탈해 손 대표 쪽에 줄을 서고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당 내부에서는 그가 미국순방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시점에 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본격적으로 대권행보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진보색 강화한 정 최고
야권통합 유리한 고지 선점

반면, 정 최고위원은 보다 진보적인 색채를 강화해 나가며 손 대표와의 차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대선을 한차례 경험한 정 최고위원은 진보정책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을 피부로 느껴 중도보다는 화끈한 진보로 전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 최고위원은 복지와 노동문제에 귀를 기울이며 말로만이 아닌 실제 불철주야 현장을 뛰어 다니고 있다. 최근 노동현안인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해고 사태 등에 발 벗고 나서는 등 민주당의 진보성을 보다 강력히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 그는 진보색을 강화한 후 범야권의 진보정당과 잦은 접촉을 하며 향후 필승명제인 야권대통합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정동영 “대북문제는 내가 전문가” 차별화
진보·노동으로 야권통합 선점한 정 최고


손 대표의 경우 통합기구를 발족했지만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의구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야권대통합으로 본인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1:1구도를 만드는 데만 혈안이 됐다는 비판이 범야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

이에 일각에서는 야권대통합에 있어서는 정 최고위원이 손 대표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정 최고위원은 손 대표의 독주체제에 반기를 들며 비주류 그룹의 물밑 견제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신을 포함해 천정배,박주선,조배숙 최고위원 등이 속해 있는 비주류 연합체인 쇄신연대는 당초 정세균 전 대표로 대변됐던 구 당권파에 반대해 출범했으나, 손 대표가 당권을 쥐자 결속력이 떨어지면서 해체론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최근 쇄신연대는 해체하지 않고 존속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정 최고위원이 손 대표의 구심력 강화에 대한 위기감과 더불어 당내 세력지형의 한 축으로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겠다는 포석이란 분석이다.


손주몽과 개성동영
두 사람 갈등은 필연?

손 대표는 정치권에서 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처지가 비슷하다하여 ‘손주몽’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반면 정 최고위원은 개성공단으로 압축되는 발로 뛰는 통일행정의 달인이라는 점에서 ‘개성동영’이란 별칭이 붙었다.

시련도 같이 겪었다. 2008총선 패배로 쓴맛을 본 손 대표와 대선 패배로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며 이미지가 실추된 정 최고위원은 한동안 시련을 겪으며 낭인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두 사람 모두 지난해 ‘10·3전당대회’에서 1·2위로 건승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려 성공적으로 당에 컴백했다.

민주당의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이에 탄력을 받아 당 내외 입지 넓히기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는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손 대표가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중도층까지 공략해 대권 본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반면, 정 최고위원은 진보색체를 강화해 야권통합에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데 올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을 두고 정가 일각에서는 대권이란 공통분모 하에서 두 사람은 갈등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하면 두 사람의 ‘충돌’은 더욱 잦아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극명하게 서로 다른 행보로 같은 목적을 향해 뛰기 시작한 손 대표와 정 최고위원. 숙명의  라이벌이 펼치는 대혈투에 당원들과 국민들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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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