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감사원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서로에게 날이 섰다. 그동안 이들 두 기관은 사이가 유독 좋지 않았다. 특히나 이번 감사원의 금감원 감사가 ‘감정’이 실렸다는 뒷말이 많다. 이를 두고 ‘금감원 청첩장 사건’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물증 없는 피상적인 해석일 뿐. <일요시사> 취재결과 두 기관은 전 정권서 암투를 벌이다 서로가 내상을 입은 게 악연의 시작이다.
감사원이 금감원을 제대로 털었다. 지난달 20일 금감원에 대한 기관운영감사 결과 인사비리에 내부자 주식거래 등 각종 비위가 드러나면서 금감원은 그야말로 적폐가 됐다. 내부에선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최대 위기라는 반응이다. 감사원의 지적에 수긍하는 목소리도 많다.
보복성 의심
진짜 이유는?
하지만 일부에선 감사원이 보복성 감사를 벌였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번 감사 때 비리 명단에 오른 직원 40여명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 면직, 정직 등을 요구한 것이 ‘너무 심하다’는 것.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 배경에 ‘청첩장 사건’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월 감사원이 금감원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던 시기에 결혼식을 올린 여성 감사관의 결혼식 시간과 장소가 ‘알림’이란 제목으로 금감원 팩스로 보내졌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감사원은 ‘갑질 논란’으로 곤욕을 치뤘다.
결국 해당 여성 감사관은 감사원을 그만뒀다. 이 사건으로 독이 오른 감사원이 고강도 감사를 벌였고 감정 섞인 감사결과를 내놨다는 게 금감원과 언론의 시각이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피상적인 해석이라는 게 금융권과 정관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요시사> 취재결과 두 기관이 원수가 된 건 전 정권서부터다.
사건의 발단은 ‘KB금융 사태’가 불거진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 행장 간 다툼이 있었다. 또 정보유출사태와 부실대출 등의 여러 문제로 KB금융은 금감원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금감원 조사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KB금융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KB금융 회장 교체를 원했다”며 “금감원과 금융위원회를 통해 임 전 회장을 찍어냈다는 게 정설이다. 이 두 기관은 사실상 한몸이었다”고 말했다.
‘청첩장 사건’ 때문에 틀어졌다?
2014년 KB사태 당시 악연 시작
이때 임 전 회장을 끌어내리기를 주도한 게 ‘최경환 라인’인 조원동 전 경제수석과 정찬우 전 금융위 부위원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임 전 회장과 조 전 수석은 재경부 시절부터 악연이 있다.
임 전 회장은 경기고-서울대 상대(KS)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경부 차관보를 맡은 지 4개월 만에 KS 대표주자였던 조 전 수석에 자리를 내준 적이 있다.
금감원은 KB금융에 대한 조사 후 6월9일 금융위 제재심의위원회 유권해석을 근거로 임 전 회장을 ‘중징계한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같은 날 감사원이 금감원에 임 전 회장의 주요 중징계사유인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금융위의 유권해석을 문제 삼으며 징계 유보를 요구한 것.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감사원은 두 달 전인 3월12일부터 4월11일까지 카드사 정보유출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이후에도 2개월 동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임 전 회장에 대한 징계통보 직전 징계 절차에 제동을 건 것.
당시 정치권과 금융권에선 임 전 회장이 감사원에 구명 로비를 벌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실제로 임 전 회장과 김영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사건의 전말을 내밀하게 알고 있는 국회 관계자는 “김 전 사무총장과 임 전 회장은 오래전부터 호형호제했던 사이”라며 “김 전 사무총장 주변 사람들이 임 전 회장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감사원 사무총장
금융위 부위원장
여기서 드는 의문도 있다. 과연 김 전 사무총장이 임 전 회장과 친분을 이유로 청와대 뜻을 거스르며 금감원과 금융위의 징계에 브레이크를 걸 만한 힘이 있었느냐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고 한다. 김 전 사무총장은 감사원 내부서 실세였으며 친박 핵심인사를 뒷배로 두고 있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새누리당 친박 핵심인 ‘이정현 라인’으로 평가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뿐만 아니라 PK 의원들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다고 한다.
앞서 국회 관계자는 “김 전 사무총장과 이정현 의원의 인연은 18대 국회서부터 시작됐다”며 “이 전 의원이 김 전 사무총장 능력을 높게 샀다. 사무총장에 앉힌 것도 사실상 이 의원이다”고 말했다.
감사원의 개입으로 임 전 회장은 한시름 놓았다. 중징계가 확정됐다면 그는 퇴진 압박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하명을 받은 금감원과 금융위도 가만있지 않았다. 금융위는 징계 절차를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징계를 주도한 사람이 정 전 부위원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부위원장은 전 정권에서 ‘금융계 황태자’로 통한 대표적인 최경환 라인이었다. 그 역시 친박계 핵심 인사와 청와대 실세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정 전 부위원장의 인사 개입 흔적도 나왔다.
감사 두고 “감정 실렸다” 뒷말
전정권서 암투 벌이다 서로 내상
2012년 말 이건호 국민은행장 인선과 정부가 최대주주인 이광구 우리은행장,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의 인선에 정 전 부위원장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금융권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이때 김 전 사무총장과 정 전 부위원장이 임 전 회장 징계 여부를 놓고 상당한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소식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까지 들어갔다. 그 해 7월 중순 감사원과 금융위, 금감원 관계자들 8∼10명이 이와 관련해 민정수석실서 경위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도 금융위 제재심의위원회는 세 차례나 징계 수위를 번복한 끝에 9월16일 임 전 회장에게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임 전 회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임 전 회장은 “자진사퇴는 없으며 진실 규명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정면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가 사퇴할 생각이 없자 금감원은 임 전 회장을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서 업체 선정에 부당한 개입을 했다는 혐의(업무방해)로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은 또 다시 응수했다. 같은 달 18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감사원 직원 5∼6명이 금감원에 나와 KB검사 및 제재 과정 등을 집중적으로 살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금감원 내부에서는 ‘감사원이 뭔데 우리를 줄 세우느냐’라는 불만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감사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 전 회장은 이날 새벽 이사회서 해임됐다.
이 싸움으로 감사원과 금감원은 내상을 입었다. 먼저 감사원은 김 전 사무총장이 이 사건 이후 사정기관의 첩보에 시달려 정치권 눈치를 많이 살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정 전 부위원장과 틀어진 이후 그쪽에서 김 전 사무총장과 관련 첩보를 사정기관에 많이 흘린 것으로 안다. 이 때문에 그의 운신의 폭이 좁았다”고 말했다.
KB 회장 놓고
감정 더욱 악화
금감원은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먼저 감사원 감사로 임 전 회장 징계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임 전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결국 금감원이 임 전 회장 찍어내려고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비난도 피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앞서 감사원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금감원은 자기들 선에서 임 전 회장을 끌어내릴 계획이었지만 감사원의 개입으로 실패했다”며 “청와대의 하명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검찰 고발까지 하면서 임 전 회장을 찍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과 정관계에서는 이런 감정의 골이 깊어져 드러난 게 이번 감사원의 금감원 감사라고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