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④> 대목 기다린 사람들

“한 몫 잡자” 남들 놀 때 장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부가 10월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10일간의 황금연휴’가 완성됐다. 역대 최장 기간이다. 휴가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이런 와중에 명절 대목에 가장 바쁜 사람들이 있다. 이번 연휴는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30대 주부 한모씨는 지난해 추석 당일 올해 추석에는 해외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연휴가 긴만큼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을 대비해 미리 예약을 해놓자는 말도 나왔다. 1년 전이었지만 예약은 벌써 꽤 차 있었다. 그만큼 올해 추석연휴를 기다린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항공권 다 팔려
장거리여행 늘어

사람들은 여름휴가보다 긴 연휴에 들떴다. 저마다 휴가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지만 첫 손에 꼽히는 건 단연 여행이다. 추석 연휴 기간 해외여행을 떠나는 내국인이 13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이는 명절 기준으로 최대치다. 지난해 추석(47만명), 올해 설(50만명) 연휴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

여행사들은 역대 최장 기간 연휴에 휴식도 잊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행 전문업체 모두투어 관계자는 “이미 황금연휴 기간 항공권이나 여행상품은 대부분 판매됐다”면서도 “최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선택폭이 넓어져 남아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연휴가 길어진 만큼 중국, 일본, 동남아 지역 못지않게 유럽이나 미국 등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도 많아졌다.

또 명절 연휴 때 고향에서 차례만 간단히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여행이나 나들이를 떠나는 D턴족의 증가로, 국내 여행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6일 금요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어린이날을 포함, 주말 등 4일의 연휴가 생겼다. 이때 고궁 입장객은 전년대비 70%, 전국 고속도로 통행량은 8.6%, 철도 탑승자 수는 8.5% 증가한 바 있다. 

해외 여행객의 증가로 발생할 내수 구멍을 국내 여행객들이 일정 부분 메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면세점 업계는 추석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면세점 업계의 이번 추석 마케팅 타겟층은 내국인이다. 
 

그동안 10월1일 중국 국경절을 기점으로 중국인 관광객 잡기에 몰입했던 것과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사드로 인한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뚝 끊긴 점도 한 원인이지만 연휴 때 해외로 떠나는 국내 여행객이 급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임시공휴일 지정 최장 10일 연휴
국내·외여행객수 100만명 넘을 듯


면세점 업계는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프로모션과 이벤트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신라인터넷면세점의 경우 10월9일까지 자동차, 적립금 등을 지급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롯데면세점은 오프라인 전점에서 1달러 이상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휴가비 현금 지원 이벤트를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상황이 어려운 만큼 10일간의 연휴는 단비와도 같다”며 “업체들은 다양한 프로모션을 준비해 분주하게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연휴 기간 국내 또는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방범 문제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명절 등 연휴 때마다 기승을 부리는 빈집털이범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4∼2016년) 추석 연휴 기간 일어난 침입범죄가 평소에 비해 21%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원은 긴 연휴동안 장기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아 침입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명절 때만 되면 방범장치 매출이 폭등한다. 온라인에선 빈집털이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손쉽게 장착할 수 있는 방범용품과 CCTV, 금고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G마켓에 따르면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13일까지 한달간 CCTV-IP 카메라 매출이 57% 늘어났다.

CCTV-IP 카메라는 어디서나 집 안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가정용 방범 카메라로, 외부에서도 스마트폰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집을 지켜볼 수 있다. 최근 어린아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에서 설치가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추석이 가까워오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방범장치 매출 증가는 매년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지난해에도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방범장치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심지어 CCTV와 디자인만 동일할 뿐 실제 촬영은 되지 않는 가짜 CCTV 등 이색 방범용품도 큰 관심을 받았다. G마켓 관계자는 “긴 연휴에 대비해 가정용 방범 장치를 직접 구매하는 사람이 늘었다”며 “창문이나 베란다에 쉽게 설치하는 제품도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집 지키는 물건을 구매했지만 반려동물이 남았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이른바 펫팸족(Pet+Family)이 1000만명에 이르는 등 반려동물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 중이다. 유통업계는 펫팸족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앞 다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반려동물 호텔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반려동물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반려동물 서비스업은 전년 동기 12%가 증가했다. 이 중 숙박·호텔업은 전체의 약 46%로 가장 많았다. 미용·화장업(32%), 장례·장의업 및 산책·돌보기업(각각 11%)보다 높은 수치다. 청주의 한 애견호텔은 명절을 열흘 정도 앞두고 있지만 예약률이 평균 50%를 넘었다.

침입범죄 기승
방범장치 불티


최근 반려동물 호텔만큼이나 인기를 끌고 있는 게 펫시터다. 펫시터는 타인의 반려동물을 위탁 받아 일정 기간 돌봐주는 사람을 말한다. 많은 반려동물을 거의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반려동물 호텔보다 맞춤형으로 돌봐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 호텔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

차가 없는 사람이 반려동물과 멀리 이동할 때 이용 가능한 펫미업 서비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SK플래닛 11번가에서 추석 연휴를 맞아 펫미업 택시 서비스 이용권을 정가 대비 50%에 제공하는 등 이색상품이 나올 정도. 

차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안전벨트는 물론 배변패드 등이 갖춰져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주목하면서 신사업으로 떠올랐다.

반려동물과 함께 동반 여행을 떠나는 비율도 늘었다. 숙박O2O인 ‘여기어때’에 등록된 반려동물 동반 숙소는 지난해 7월 70여곳에서 올해 7월 210여곳으로 1년새 3배가량 증가했다. 반려동물 동반 호텔에서는 반려동물 베드 겸 쿠션, 식기, 물그릇, 배변판 등을 제공하고 있다. 

가평에 있는 한 펜션에는 온수풀이 구비된 애견수영장과 놀이터는 물론, 훈련 기구까지 마련돼 있어 펫팸족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벌초·차례 등 명절에 직접 챙겨야 했던 일을 대행해주는 서비스도 점차 확대 중이다. 가족의 규모가 줄고 일정이 바빠지면서 조상의 묘 관리를 대행업체에 맡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전문가가 예초기를 들고 산소의 풀을 베다 큰 부상을 입거나 벌집을 건드려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늘면서 그 수요는 더 많아지고 있다. 또 예초기를 빌려 벌초를 하는 것보다 가격이 저렴한 점도 대행서비스가 각광을 받는 이유다.


벌초에 상차림
대행서비스 인기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농협의 벌초 대행 서비스인 ‘산소 관리 서비스’의 지난해 이용건수는 1만8308기로 전년대비 39%가 늘었다. 전국 300여개 지역 농협과 산림조합은 물론 사설 대행업체도 500곳에 이른다. 

농협의 경우 이용료가 1기당 6만∼10만원이지만 분묘가 있는 지역이나 위치·거리·봉분 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조상의 묘 관리는 업체에 맡기는 것을 두고 부정적인 시선이 있긴 하지만 이용자들의 전체적인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차례 상차림 대행업체도 예약이 폭주 중이다. 편리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이용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모든 음식을 직접 조리해 배달해 주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차리기만 하면 된다. 
 

지난해 기준 차례상 대행서비스의 가격은 20만원 초반대로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추정한 4인 가족 기준 명절 차례상 준비 비용(24만∼33만원)과 비교해도 저렴한 편이라 앞으로도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성형외과·극장 물만나
‘혼추족’ 잡으려 마케팅

명절 대행 서비스가 증가하면서 고수익 단기 아르바이트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추석 장을 보는 주부들을 겨냥한 제수용품 판매와 상차림 음식을 시연하는 등의 초단기 실속 아르바이트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것. 

추석선물 판촉·배달·상하차 업무에 사람을 구한다는 게시물은 온라인 카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짧고 굵게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명절 기간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경기불황 속 용돈을 마련하려는 대학생·취준생뿐 아니라 귀향하지 않는 직장인에 주부까지 가세했기 때문. 명절 단기 아르바이트는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높은 데다 임금도 즉시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아르바이트생 16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이 추석 단기 아르바이트를 희망하는 이유는 ‘평소보다 시급이 높아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40.7%)였다. 

하루 8시간 노동을 최저시급인 6470원으로 계산하면 5만1760원이지만 명절 기간 마트 단기 근무를 하면 최저 5만5000원서 10만원이 넘는 일급을 받을 수 있다.

추석연휴 동안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고향집에도 내려가지 않고 혼자 있길 자처하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새로운 세태라고 볼 수 있다. 

1인 가구는 자신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 업계에선 이들을 잡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당장 혼추족의 증가로 호텔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혼자 호텔에 묵으면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호캉스(호텔+바캉스의 합성어)’족이 늘었기 때문이다. 

호텔업계에선 혼추족을 겨냥한 패키지 구성에 나섰다. 그랜드힐튼 서울호텔은 1인 북맥(책과 맥주의 합성어) 패키지를 선보였는데 예약이 폭증 중이라고 밝혔다.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도 1인 예약 손님을 위한 싱글즈 패키지를 내놨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스파 서비스와 칵테일 등을 제공한다.

유통업계도 혼추족의 증가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백화점에서는 혼추족을 위한 1인 명절음식 세트를 내놓은 것은 물론 소포장 셀프 선물세트도 등장했다. AK플라자에서는 ‘명절음식 DIY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삼색나물, 동태전과 쇠고기 완자전 등 제수용 전, 송편과 같은 명절음식 중 원하는 상품을 골라 세트로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편의점 업계도 혼추족의 증가로 도시락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한 대형 편의점 업체의 추석 연휴 기간 도시락 매출은 무려 580%나 급증했다. 추석 대목을 노리는 편의점 업계는 혼추족의 입맛을 잡기 위해 제품 늘리기에 나섰다.

추석 대목을 맞이한 곳으론 성형외과도 빼놓을 수 없다. 연휴 기간을 이용해 간단한 성형수술·안과수술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성형외과는 이들을 위해 연휴 기간에도 진료를 하는 등 본격적인 ‘대목 맞이’에 나섰다. 

특히 이번에는 최장 10일을 쉴 수 있기 때문에 연휴 첫날 수술을 받고 남은 기간 푹 쉬면 바로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들은 연휴 동안 정상 진료는 물론 야간 진료까지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가 역시 추석 성수기를 대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추석 연휴는 영화 산업 최대의 대목이다. 가족, 연인 단위 고객은 물론 1인 고객들도 긴 연휴 기간 극장가를 찾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로는 조선 인조14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남한산성>이 선봉에 선다.

1인 가구 잡아라
셀프 선물세트도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사도> 등 추석 연휴 흥행 영화의 계보를 잇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외화로는 최근 주연배우가 내한한 <킹스맨: 골든서클>이 있다. 1편의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속편으로 극장가를 노리고 있다. 영화계는 굵직한 국내외 영화간 대결로 추석 관객몰이를 기대 중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속기사> 추석 연휴 ‘스미싱’ 주의보
‘아차’ 순간 다 빠져나간다

여행사, 유통업계뿐 아니라 인터넷 사기꾼들도 추석 연휴를 대목으로 잡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소액 결제를 유도하는 피싱 사기 수법인 스미싱 주의보가 내렸다. 명절을 맞아 선물세트를 주문하거나 항공권을 예매한 사람들을 노린 범죄다.

‘OO통운인데 OOO고객님이 주문한 선물세트의 배송지가 불확실해 정정을 부탁한다’는 내용과 인터넷 주소가 섞인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식이다.

아무 인터넷 주소 클릭 금지
선물 주문자 노린 범죄 늘어

실제 선물세트를 주문해놓은 고객이 무심코 인터넷 주소를 누르면 그 순간 숨겨진 악성코드가 작동해 저장된 지인들의 연락처나 사진, 금융거래에 사용되는 공인인증서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빼앗기게 된다.

‘추석맞이 상품권·숙박권·항공권 떨이’ 등의 문자에 속아 돈을 실제로 입금하면 다시 되돌려 받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지난 추석의 경우 연휴 전후로 2주간 212건의 피해가 접수돼, 한 해 평균보다 16%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출처가 불분명한 문자메시지 인터넷 주소는 절대 누르지 말고 휴대전화 소액결제 기능을 사전에 차단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