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 ‘박근혜당 만들기’ 프로젝트 전모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마지막 퍼즐’만 남았다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명실상부한 당의 주류로 등극하기 일보직전이라는 당 안팎의 분석에 향후 박 전 대표의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4·27 재보선 패배 이후 당의 굵직한 현안에서 직접 나서 판을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원내대표 경선과 전대룰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이로써 당의 실질적인 주류로 부상하고 있으며, 7·4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까지 자신과 우호적 관계의 인물을 세우면 하반기부터 ‘박근혜당’이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지층 결집 시 더 이상의 대권후보 경쟁 무의미
‘정권 재창출?’, ‘정권 교체?’ 그의 속내는 과연…

최근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측 모두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국민들의 절반은 박 전 대표의 대선 승리는 ‘전권 재창출’이 아니라 ‘정권 교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의 주류로서 지난 3일 대통령과의 회동을 통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양측의 협력관계가 재확인됐다는 평가와는 다른 결과에 한나라당은 크게 당황하고 있는 눈치다. ‘정권 교체’를 모티브로 선거전에 돌입할 예정이었던 민주당 역시 당혹하기는 마찬가지. ‘박근혜 파워’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약점부터 보완하고
대권행보 첫걸음 ‘사뿐’
 
박 전 대표는 당분간 당내에서 범접 불가능한 존재로 부상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최근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국민들 또한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박 전 대표로 꼽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여론조사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평가에 박 전 대표가 가지는 최대 득점 요인은 전통적 지지층의 쏠림현상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의 지지도가 50%를 넘어서 중간층과 호남에서 이탈하고 있는 지지층을 보충해주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지지층의 결집은 한나라당 내 다른 대권주자들과의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대세론’에 더욱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지층의 결집 외에 친박계의 외연확대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친박계 의원이 중심인 연구단체 ‘여의포럼’은 출범 3년을 맞아 지난 17일 열린 토론회에 친이계는 물론 소장파와도 함께했다. ‘한나라당 재집권’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친이계 김영우 의원과 소장파로 정책위 부의장을 맡고 있는 김성식 의원을 토론자로 초청한 것이다. 김영우 의원은 “초청을 받고 처음에는 사실 부담스럽고 고민도 됐다”면서 “국민들은 당청을 한 묶음으로 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차기 총선ㆍ대선에서 승리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의포럼 간사인 유기준 의원은 “김영우 의원은 친이계지만 같은 상임위인데다 합리적이어서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아 섭외했다”고 말했다. 소장파인 정두언 의원도 올 초 여의포럼에 가입해 토론을 벌였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갈수록 친박계에 관심을 갖는 의원들의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 역시 다양한 인물과 함께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며 ‘월박(越朴·친박계로의 계파이동)’이 실제 일어나고 있음을 귀띔했다.

오랜 대세론 속에 그동안 ‘침묵’을 지키다 시피 해온 박 전 대표는 6·3 회동 이후 대권주자로서 행보를 차근차근 펼쳐 나가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그간 약점으로 지적된 ‘외교’분야는 대통령 유럽특사를 성공적으로 마쳐 보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약점으로 지적된 ‘경제에 문외하다’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자신의 경제·복지 정책을 단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장소는 다름 아닌 국회 기획재정위 회의장이다. 국정감사 기간이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사흘 연속 출석해 자신의 경제·복지정책 기조와 나름의 해박한(?) 경제지식을 내비쳤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고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25%밖에 안 된다”며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영세 사업주 및 근로자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소득에 따라 최고 절반까지 차등 경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이은 빈곤층과 비정규직에 대한 정책 제안은 ‘경제대통령’으로서의 인식을 심어 줌과 동시에 ‘민생’까지 챙기는 이른바 ‘두 마리 토끼 잡기’로 풀이된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지난해 하반기 기재위로 상임위를 옮긴 뒤 열린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침묵했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이며, 그간 고착되다시피 한 ‘수첩공주’ 이미지도 탈피하는 모습이었다.

‘근혜’ 좇던 ‘MB’
레임덕 쳐다본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박 전 대표는 이날 기재위에서 김중수 한은 총재를 상대로 가계부채 급증 문제를 지적하며, 한은의 금리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는가 하면, 이인실 통계청장에게도 “2010년 소득분배 지표를 보면 지니계수나 소득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에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정부 통계의 허점을 꼬집었다.

사흘 연속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잇달아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MB노믹스’에 대한 ‘정책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당이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바 있어, 현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를 구체화하고 있는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청와대도 적잖이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에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민생을 챙기기 위해 현안의 잘못을 지적 한 것이지 이명박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에 나선 것이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박 전 대표를 ‘여당 내 야당’으로 보는 생각이 줄어들고, 박 전 대표가 탈당하지 않는 이상 이 대통령과 한배를 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동인화 현상’이 나타나면 ‘정권실패 공동책임론’이 일 것으로 예상돼 박 전 대표 측은 고심하는 중이다.

내년 총선 ‘여소야대’ 성적표 받을 시
‘박근혜 불가론’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


따라서 박 전 대표는 필연적으로 이 대통령과 차별화된 전략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박근혜식 한나라당’으로 만들어나가려 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화해 협력은 기본적으로 ‘동지’ 관계가 아닌 ‘비즈니스’의 측면이 커 이명박표 정책을 비판하고 갈등하는 순간 두 사람의 분열이 가시화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 전 대표는 이런 전망 속에서도 지난 97년 대선과 2007년 대선에서 집권당 대선 후보들의 현직 대통령과의 섣부른 차별화 전략을 펼치다 패배를 당했던 점을 비추어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총선’ 승리로 실질적
마지막 퍼즐 맞추기?

문제는 박 전 대표가 어느 시점에서 한나라당을 자기 당으로 만드느냐는 것이다. 여권 내부에선 사실상 대권후보로 첫 발걸음을 뗀 박 전 대표가 7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또는 자신의 우호적 인사가 대표로 당선됐을 경우를 유력한 기점으로 보고 있다. 그 경우 그의 대권행은 더욱더 탄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고 바야흐로 ‘박근혜당’이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자신과 우호적인 원내대표 당선으로 당내 입지를 넓힌 시점에 관리형 당 대표와도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경우 총선공천권 등 부수적인 소득도 챙겨 총선에 좀 더 집중 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친박계 내부에서는 지난 18대 총선 때와 같은 ‘공천학살’에 대한 공포감이 다가와 불안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박근혜당’의 마지막 퍼즐조각은 내년 총선을 전후해 맞춰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로 선출된 이후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당내에서 ‘후보교체론’이 나왔던 것으로 비추어 보아 내년 총선에서 박 전 대표가 ‘여소야대’의 성적표를 받아 쥐면 당내에서 ‘박근혜 불가론’이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로 확정된 단계에서의 총선 패배라 흔들기에 한계가 있었지만 박 전 대표는 경선 전의 총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수도권 출신 모 의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총선 결과다. 20년 만에 찾아오는 대선과 총선 해에 1당을 놓치면 대세론에 치명타를 입어 급격히 흔들리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내년 총선은 대선으로 가는 박 전 대표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최근 야권 단일후보와 맞대결할 경우 엇비슷한 일부 여론조사 결과와 황우여 원내대표의 ‘알현’ 논란 등에서 보인 권위적 행보, 동생 지만씨의 삼화저축은행 사건 연루 의혹과 그를 감싸는 발언 등도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의 끈질긴 공세도 만만치 않아 난항이 예상된다. ‘박근혜 딜레마’에 빠져 있는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을 야당이 아닌 ‘여당 내 야당’으로 평가 받는 박 전 대표로 돌릴 태세이다. 민주당 그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를 ‘동일 공동체’로 인식하게끔 일관된 여론작전을 펼쳐 왔다. 최근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반복하고 있는 부분이 그 전략인 셈이다.

정치권 뒷면에 숨어 있으니 흠집 낼 명분이 없었던 민주당으로서는 대권행보에 첫걸음을 뗀 박 전 대표가 반갑기만 한 모습이다. 그동안 2선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아 잡을 수 없었던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순탄치 많은 않다
칼 가는 민주당

향후 박 전 대표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는 더욱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민심의 딜레마’를 실감하게 된 만큼, 본격적인 대권행보에 나서는 박 전 대표에게 여권의 실책과 책임을 떠안게 하기 위한 정치적 움직임을 가속화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박 전 대표 역시 이명박 정권과의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차별화된 정책과 행보를 통해 ‘여당 내 야당’의 역할을 버릴 수 없는 만큼, 상당히 신중한 정치적 행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틈을 탄 야권의 공격은 더욱 집요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최대 잠룡인 박 전 대표의 움직임으로 최근 정치권은 요동치고 있다. 그 요동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머릿속도 복잡해 보이지만 칼자루를 쥔 쪽은 그러나 역시 박 전 대표이다. 그의 행보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움직임인지 정권 교체를 향한 움직임인지 현재로선 미지수이지만 ‘주류 박근혜’, ‘실세 박근혜’, ‘박근혜 대세’인 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박근혜당 만들기’ 프로젝트가 그의 계획대로 척척 진행된다면 대선을 앞두고 당내 장악력을 높임은 물론, 여권의 파상적인 공세까지 차단하는 이중효과를 누릴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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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