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청와대 권력지형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7.17 10:25:34
  • 호수 1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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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전병헌’ BH 서열 바뀌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지난 5월10일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이로써 문재인정권이 출범한 지도 2개월이 지났다. 인수위 없이 출발한 문정권이기에 이 기간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는 단연 ‘인사청문회(이하 인청)’였다. 정치권은 인청 정국을 거치며 청와대 내부서 권력지형의 변화가 감지된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청와대 인사들 중 어떤 사람에게 힘이 실리고 있는지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고 하루가 지나 ‘대통령 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청와대 조직을 기존 1실장-10수석-41비서관 체제서 2실장-8수석·2보좌관-41비서관 체제로 재편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상황서 청와대의 몸집을 키워 내각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복안이었다.

몸집 키운 BH
공백 최소화

가장 큰 변화는 장관급인 정책실장 자리의 신설이다. 문 대통령은 장하성 전 안철수 후보 캠프 국민정책본부장을 초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그 밑으로 경제·과학기술 보좌관, 일자리·경제·사회 수석을 떼어줬다.

따라서 ‘왕실장’으로 군림하던 기존 비서실장의 지분은 줄었다. 정책조정·정무·민정·홍보·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고용복지·인사·외교안보 수석 등 10개 수석실을 관장하던 것에서 정무·민정·사회혁신·국민소통·인사 수석 등 5개 수석실만 관장하는 것으로 전환됐다.

비서실장의 지분은 줄었지만 청와대 내 영향력은 여전하다. 정치권은 문정권의 2인자로 임종석 비서실장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문 대통령과 임 비서실장의 인연은 대선 전으로 올라간다. 지난해 10월14일 문 당시 후보 측에 전격 합류한 임 비서실장은 당시 경선 캠프인 ‘더문캠’에 들어가 후보 비서실장이란 중책을 수행했다.
 

문 후보는 임 비서실장 영입 초부터 사실상 캠프의 전권을 줬다. 사안에 대해 캠프 내 이견이 있으면, “임 비서실장이 결정했으니 밀어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전권을 잡은 임 비서실장은 자신의 주특기인 정무 분야뿐 아니라 문 후보의 일정, 정책 결정에도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인 임 비서실장은 곧 청와대로 직행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의 공식 임기를 임 비서실장 임명으로 시작했다. 청와대 춘추관에 모습을 드러낸 문 대통령은 “임 비서실장 임명을 통해 젊은 청와대, 역동적이고 탈권위적인,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로 만들 생각”이라고 밝혔다.

왕실장은 옛말? 그래도 '실세'!
문, 임종석 믿고 국당과 협상

문 대통령의 발표가 있기 전 청와대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정치권 인맥을 갖고 있어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대화와 소통의 중심적 역할이 기대된다”며 “관용적이고 합리적 성품에 개혁주의자로서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결정과정을 중요시해 청와대 문화를 대화와 토론, 격의 없는 소통과 탈권위 청와대 문화를 이끌 적임자”라고 임 비서실장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임 비서실장은 재선(16·17대) 의원 출신이다. 당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서만 6년을 활동, 정무뿐 아니라 외교 분야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곧 정상 외교에 나서야 했던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임 비서실장의 외교 분야 전문성도 고려 대상 중 하나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임 비서실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추경안’ 등 막힌 정국을 뚫기 위해 지난 13일 임 비서실장을 국회로 급파했고 국민의당의 국회 일정 복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초 가장 힘줘 추진하는 것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 일자리 추경안 통과다. 지난달 13일 있었던 문 대통령의 첫 국회 시정연설서 이러한 부분이 잘 드러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일자리로 시작해 일자리로 연설을 끝냈을 정도다. 

30분간 이어진 국회 시정연설서 일자리라는 단어만 무려 44번 언급했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파워포인트로 수치와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이 나오면서 정국은 얼어붙었다. 추 대표가 한 라디오와 인터뷰서 “선대위원장이었던 박지원 전 대표와 안철수 전 의원이 (문준용씨 제보조작 사건을) 몰랐다고 하는 건 머리 자르기”라고 비판한 것이다.

추 대표의 발언에 국민의당은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국민의당은 추 대표의 사퇴와 민주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추가로 추 대표 발언의 배후에 청와대의 ‘야당 죽이기’ 음모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서열 2위 임종석
흔들림 없는 입지

중대한 사안서 문 대통령은 임 비서실장을 선택했다. 지난 13일 오전 국회를 찾은 임 비서실장은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을 만나 추 대표의 발언에 대해 ‘대리 사과’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곧 이은 의총에서 “청와대가 추 대표 발언이 잘못됐다며 사실상 사과하고 유감 표명을 했다”며 임 비서실장의 사과를 전했다.

“왜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을 조성했는지 청와대로선 알 수 없다. 국민의당에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진심으로 유감을 표명한다”고 임 비서실장이 말했다는 내용이다.

임 비서실장은 제보조작 사건 수사에 대해 “(문)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에선 ‘수사 개입을 해선 안 된다’고 단연코 이야기한다”며 “정치권이 이것(제보조작 사건)의 시시비비를 다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추 대표의 발언이 사실상 검찰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는 국민의당 주장에 적극 해명한 셈이다.

이에 국민의당은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꿔 국회 일정에 협조 입장을 밝혔다. 중간에 임 비서실장이 추 대표 발언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다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이 전해져 한차례 파장을 낳았지만 임 비서실장이 “추 대표 발언을 사과한 게 맞다”며 재확인 했고 사태는 수습됐다.

문 대통령과 임 비서실장의 실리를 챙기는 결단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제보조작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에 놓인 국민의당에게 사과는 물론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를 자진 사퇴케 해 국회로 복귀할 충분한 명분을 줬다는 평가다. 청와대가 추경안 심사 개시라는 실리를 챙긴 건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당의 국회 복귀는 임 비서실장만의 작품이 아니다. 최근 청와대 권력서열 3위로 올라섰다고 평가받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의 지원사격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임 비서실장이 국회를 방문하기 앞서 전 수석은 지난 12일 저녁 박 비대위원장과 긴급 회동을 가지고 세부사항을 조율했다. 이후 13일 오전 국회로 출발하기에 앞서 추 대표에게 “추경안의 시급한 처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니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임 비서실장이 국민의당 지도부를 만나 사과할 때는 함께 동석해 힘을 실어줬다.

힘 실린 전병헌
서열 3위 우뚝

인청 정국을 맞아 전 수석은 동분서주했다. 청문회가 시작된 이후 정무라인을 풀가동해 전방위로 여야 인사들과 만나 설득했다. 일례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 때 전 수석은 주말을 반납하고 야당과 접촉해 인준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인청 정국서 현재까지 낙마한 사람은 2명, 조 전 후보자와 안경환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다. 조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일자리 추경안과 ‘딜’을 한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문 대통령과 청와대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반면 안 전 후보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각종 논란 속에서 사퇴 압박을 받던 안 전 후보자는 문 정권에 부담이 되는 존재였다. 민주당 의원들까지도 전 수석을 통해 안 전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전할 정도였다.

당시 인사검증 부실에 따른 ‘조국 책임론’이 대두됐다. 앞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청와대에 입성, 서열 3위로 불렸다. 인청을 앞두고 있는 상황서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에게 힘이 실리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청문회서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며 조 수석의 입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대부분의 후보자가 문 대통령이 밝힌 이른바 5대 인사원칙(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인사는 공직 배제)을 위배해 부실 검증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5대 인사원칙 위배 논란이 일자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서 인사원칙 준수 의지를 밝히고 위배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지만, 이후에도 원칙을 위배하는 후보자는 계속 등장했다.

조 수석의 과거 발언도 그의 입지를 약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조 수석은 지난 2010년 8월 ‘위장과 스폰서의 달인들’이라는 <한겨레> 칼럼서 이명박정부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사례들에 대해 “맹모삼천지교? 맹모는 실제 거주지를 옮긴 실거주자였기에 위장전입 자체가 거론될 수 없다”며 “인지상정? 이는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이나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 파는 소리”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전 지원사격, 정무감각 '빛나'
부실검증 도마 오른 조 '흔들'

위장전입에 대해 이같이 강경한 발언을 했던 조 수석이 정작 청와대에 입성한 후 위장전입 후보자들을 잡아내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자연스레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인사검증 기준과 관련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비판이 쏟아졌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서 “현 (인청) 정국을 풀기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5대 원칙을 위배한 것에 대한 사과와 조 수석의 부실 인사 검증에 대한 규명과 조치, 새 장관 내각서 추경안 재편성 등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수석에 대한 책임론은 안 전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야3당은 일제히 조 수석 사퇴를 주장하며 들고 일어났다. 

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인사 검증 부실 책임이 큰 조 수석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국민의당 초선 의원 10명은 성명을 통해 “인사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검증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검증 시스템은 있지만 직무를 유기한 것인지 철저히 따지겠다”고 불을 지폈다.

더욱이 조 수석과 안 전 후보자가 특수 관계임이 알려지면서 안 전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안 전 후보자가 지난 2000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일할 때, 조 수석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2001년 12월 조 수석이 동국대서 서울대로 교수직을 옮겼을 때 안 전 후보자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자가당착’
조국 흔들

정치권서 권력은 권력자와의 거리에 비례한다. 이는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해당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는 문 대통령이다. 

그와 물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지척의 거리서 보좌하는 임 비서실장이며,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은 인청 정국을 주도하는 전 수석이다. 문 대통령은 이 두 사람에게 강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 임 비서실장과 전 수석을 서열 2, 3위로 꼽는 이유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무-조대엽 엇갈린 희비
희생양 조, 구사일생 송

‘청문회 동기’의 희비가 교차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의 운명이 엇갈렸다. 조 전 후보자는 결국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는데 반해, 송 후보자는 바로 뒤 국방부장관에 임명됐다.

조 전 후보자는 지난 13일 복수의 언론을 통해 “본인의 임명 여부가 정국 타개의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장관 후보자 사퇴의 길을 택하겠다”고 밝혔다. 음주운전과 사외이사 의혹으로 논란을 빚어왔던 조 전 후보자는 청문회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형식은 자진사퇴지만, 사실상 지명 철회로 풀이된다. 일자리 추경안 통과를 위해 국민의당 설득에 나선 청와대는 조 전 후보자를 내주며 국민의당의 국회 복귀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시각이 중론이다. 

그러나 함께 논란을 빚었던 송 장관은 조 전 후보자가 자진사퇴한지 1시간 반 뒤 국방부장관에 전격 임명됐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송 장관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철저히 검증하고자 한 국회의 노력을 존중한다”면서도 “엄중한 국내외 상황서 흔들림 없는 국가 안보를 위해 국방부장관 임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입장을 이해하여 주실 것을 요청 드린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로 국가의 안전을 걱정하는 국민 여러분을 이제는 안심시켜 드려야 할 때”라고 송 장관 임명 강행 사유를 밝혔다.

야당은 송 장관 임명 강행에 반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두 분(조대엽·송영무)이 다 부적격자”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국민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은 “방산비리 의혹까지 제기된 인물에게 국방개혁을 맡길 수 없다”며 송 장관 임명에 반대했다. 그러나 조 전 후보자를 지명 철회한 청와대가 송 장관을 사퇴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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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