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여의도-서초동 총성 없는 ‘삼각전쟁’ 막전막후

‘스르륵~’ 칼 가는 검찰, ‘바르르~’ 떨고 있는 국회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청와대와 여의도, 서초동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중수부 폐지’를 놓고 끊임없는 공방이 이어져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지부진 하던 중수부 폐지안이 여야 합의로 급물살을 타는가 싶더니 청와대가 검찰 편을 들자 한나라당은 돌변했다. 시간을 더 갖자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청와대와 검찰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다.

청와대 지원에 수사 탄력 받아 의원 줄소환 예정
거물 브로커 박태규 신병 확보 시 태풍 몰아칠 듯

저축은행 비리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사실상 정치권 초토화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의 검찰소위원회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법제화에 합의했지만, 청와대가 지난 6일 거악(巨惡)척결 차원에서 중수부 폐지에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 ‘성역없는 수사’의 추진력을 한껏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는 청와대와 검찰 간에 모종의 교감이 오갔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와 검찰은 이를 부인 했다. 청와대가 검찰의 손을 들어주자 한나라당은 입장을 선회했고 여의도는 ‘노심초사 좌불안석’이다.

중수부 폐지안 놓고
확연한 입장 차이

중수부 폐지를 놓고 청와대와 국회, 검찰은 각각 거악 제거, 검찰 개혁, 서민의 희망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검찰은 정치권 등 외부로부터 바람막이가 되는 중수부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검찰 수사가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중수부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승진이나 영전을 의식해야 하는 간부가 지휘하는 다른 수사부서는 독립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중수부가 과연 중립적이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중수부가 수사한 사건은 살아있는 권력 대신 과거 권력을 죽이려 한 것뿐이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도 “중수부가 과연 완벽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수사를 했느냐는 국민의 의혹이 과거 정권에서부터 있어왔던 것은 사실”이라고 거들었다.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중수부 수사권 폐지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역시 강경하다 못해 비장함이 느껴진다. 검찰은 일선 검찰조직의 역량만으로는 권력형 비리 수사에 역부족이라는 주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중수부는 검사 4~5명씩으로 구성된 특수부와는 구성부터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중수부는 일선지검 부장검사급인 과장들도 직접 수사하고, 소속 검사들도 대부분 특수수사 능력을 인정받은 10년차 이상의 중견들이기 때문에 한 차원 높은 수사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중수부는 총장의 직접 지휘만 받게 돼 있어서, 상부 보고단계를 밟는 일선 지검보다 의사 결정도 빠르다고 주장한다.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하고 복잡해지는 현실 속에서 강력한 수사조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공직자비리조사처, 특별검사제 등을 도입하면 굳이 중수부가 아니더라도 중요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독기 품은 김 총장
“수사로 말 하겠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6일 전국 검사들을 비상대기 시킨 상태에서 긴급간부회의를 주재한 뒤 “검찰은 수사에 매진, 향후는 수사로 말 하겠다”며 여의도를 향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했다. 이어 성명서에 없는 즉흥 멘트로 “항해가 잘못되면 선장이 책임지면 되지 배까지 침몰시킬 이유가 없다”며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대해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발언은 중수부 폐지문제를 놓고 더 이상 정치권에 밀릴 수 없다는 김 총장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자신의 거취를 걸고 배수진을 친 것으로 풀이 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강경 대응은 정치권에 대한 항의 표시와 함께 저축은행 수사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직접 전달, 중수부의 존재 이유를 심판받겠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총장은 이와 관련, “저축은행 수사를 끝까지 수행해 서민 피해를 회복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성역 없는 수사’로 정치권에 대해 수사 강도를 높이겠다는 또 하나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김 총장의 이러한 발언에 청와대는 “거악 척결을 위한 전국 단위 수사조직은 필요하다”며 힘을 실어줬다. “국회 논의를 지켜보고 있다”며 언급을 자제하던 태도에서 달라진 것이다.

국회 논의를 관망하던 청와대가 ‘중수부 폐지 반대’를 선언한 것은 사개특위 논의가 중수부 폐지 쪽으로 급진전된 데 따른 것이다. 여야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는 검찰의 저축은행 수사와 중수부 폐지 등 검찰 개혁 논의가 뒤섞여 정치적 논란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명확히 선을 그을 필요성을 느낀 걸로 보인다.

 김 총장 “수사로 말 하겠다” 비장함 속 선전포고
‘중수부 폐지’ 합의 번복한 한나라당, 비난 쇄도

청와대가 이 시점에서 검찰 손을 들어준 또 다른 이유는 정권 후반기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필요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저축은행 수사의 칼끝이 어디를 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검찰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고 청와대가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청와대 안팎에서 나왔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청와대가 여태 가만있다가 여야가 중수부 폐지에 합의하자 반대하고 나선 것은 레임덕을 걱정해 검찰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가 이날 중수부 폐지 반대 입장을 여당인 한나라당에 전달한 점은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에 “국회 논의과정에서 중수부 폐지를 막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와 사개특위 위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첨예한 사안에 청와대가 당에 특정 방향으로 지침을 내린 것”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 청와대는 지난 7일 대검 중수부 폐지 반대를 둘러싸고 민주당이 제기한 청와대-검찰간 ‘빅딜설’을 일축했다. 청와대는 저축은행 수사 수위를 놓고 제기된 청와대와 검찰의 사전 교감설은 ‘아니면 말고’식의 전형적 구태정치라고 비판하면서도 사법개혁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에서 공식 반응은 자제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 시대에 청와대가 검찰 수사의 수위를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고, 또 검찰이 그런 지시를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서 “이치에 닿지 않는 얘기에 말할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갈 길 바쁜 검찰
의원 비리수사 가속화

청와대가 힘을 실어줬지만 검찰로서도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이다. 국회가 중수부 폐지 등 개혁안을 최종 확정하기 전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함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중수부는 정치권의 중수부 폐지 논의 시한이 이달 중으로 예정된 만큼 늦어도 2~3주 안에 이른바 ‘비리 몸통’을 규명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에 수사의 칼날은 본격적으로 정치권을 직접 겨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3월 중순 본격 수사에 착수해 한 달반 동안 1단계 수사를 진행해 21명을 기소했다. 지난달부터는 부산저축은행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동시에 비호세력과의 유착의혹을 파헤치는 데 전력했다. 최근까지 금융감독원 전·현직 임직원 10여명을 구속 또는 기소하고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과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잇따라 구속했다.

때문에 이후 전·현직 정치인과 그 주변 인물 소환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삼길(53·구속기소)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에게 수천만원을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과 통합민주당 임종석 전 의원 혹은 보좌관에 대한 소환이 우선 점쳐진다. 본인들은 금품수수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제기된 의혹의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강원저축은행의 비리를 적발한 금융감독원 관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우제창 민주당 의원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친동생 박지만씨와 신 명예회장 간 두터운 친분관계로 인해 지만씨가 저축은행의 각종 이권을 위해 정치권과 금융감독 당국에 선을 댔을 것이라는 의혹에도 검찰은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구속 기소한 윤여성씨에게서 10년 전부터 로비창구역할을 하며 정·관계 고위층 인사들과 접촉한 정황을 포착하고 로비 대상자 파악에 나섰다.

검찰은 또 윤씨 외에 해외로 달아난 소망교회 출신의 로비스트 박태규씨의 신병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박씨는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씨의 신병확보가 비리 몸통 규명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박씨가 도피한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의 수사기관과 공조해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

한나라당 배신
민주당 연일 비난

청와대가 중수부 폐지 반대 입장을 한나라당에 전달하자 현행유지로 가닥을 잡고 중수부 폐지안에 대한 합의를 뒤집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사개특위 검찰관계법소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대검 중수부 폐지안을 놓고 팽팽히 맞섰다. 민주당은 기존 합의안대로 중수부의 수사 기능 폐지를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합의 무효를 선언하며 충돌했다. 앞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대검 중수부 유지 주장이 압도적 우위를 보인 점이 반영된 결과다.

소위는 찬반 논쟁 끝에 당초 합의한 폐지안과 함께 한나라당의 ‘현행 유지’ 입장을 소수 의견으로 특위 전체회의에 넘겼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선회로 인해 최종 합의 처리는 불투명해졌다.

이에 민주당은 한나라당에게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하느냐”며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공당으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비꼬며 “검찰개혁의 첫걸음인 중수부 폐지 법안을 여야가 합의한 대로 6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는데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는 “우리나라가 검찰공화국이 돼서는 안된다. 사법제도로 국민에게 봉사해야지 억압하고 탄압해서는 안된다”고 검찰에 포화를 퍼부었다.

특위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오는 30일 예정대로 활동이 종료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거대여당이 숨고르기에 들어갈 경우 중수부 수사권 폐지는 사실상 18대 국회에서 물 건너갈 것으로 보여 청와대와 검찰, 국회간의 총성 없는 전쟁의 승자는 검찰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검찰은 미소 짓고 있는 가운데 향후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몇 명의 의원이 소환될지 여의도는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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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