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불똥’ 튄 박근혜 타는 속 엿보기

친인척 구설수에 대권행보 브레이크 ‘끼~익’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레이스 준비에 한창인 박근혜 전 대표가 최근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저축은행 비리 사태의 불똥이 박 전 대표에게 튄 것이다. 줄곧 ‘대세론’을 이어가던 박 전 대표는 이번 사태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대 잠룡으로 불리는 그가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생 박지만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
올케 서향희 미래권력 후광 톡톡히 받아

‘미래권력’으로 점쳐지는 ‘대권 0순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요즘 표정이 몹시 어둡다. 동생 박지만씨의 과거 행보가 의혹을 받자 박 전 대표는 “본인이 아니라 밝혔으니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특유의 짧고도 간결한 화법으로 일축했다. 하지만 야당은 박 전 대표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고 한나라당도 반박에 나서 난타전을 벌였다.

또한 박 전 대표의 조카 한유진(50)씨가 연루된 ‘저축은행 비리’에 징계 수위를 대폭 낮춰줬고, 박 전 대표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도 미래권력의 후광을 받아 왕성한 경제 활동을 한 것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래권력 견제

민주당 이윤석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지만)씨가 이미 구속된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만날 때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 외에 다른 청와대 인사와 국정원 고위 간부도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권재진 민정수석과 정 정무수석, 민병환 국정원 제2차장, 박지만씨, 신 명예회장 등이 서울 청담동의 W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자주 회동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해당 음식점 사진을 공개했다. 그의 주장은 “지만씨가 신 명예회장, 정 수석과 긴밀한 관계”라는 지난 3일 홍영표 의원의 의혹 제기에 이은 추가 폭로이다.

‘박근혜 견제’가 필요했던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집중 포화를 쏟아 붓고 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지만씨에게 적용되는 특별한 법이 있는 것인가”라며 “박 전 대표의 끝없는 특권의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고 개탄했다.

이에 친박계는 발끈했다. 이한구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상대로 해야지 가족을 자꾸 건드리면 비열하다”며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은) 누구하고 누가 친하다는 것 말고는 더 내용이 없다. 공격하고 싶으면 박 전 대표를 상대로 하라”고 반격했다. 야당 폭로는 박 전 대표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려는 무책임한 정치공세임을 부각시켜 차단하겠다는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동생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당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조사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어야지, 박 전 대표가 ‘그걸로 끝’이라고 말하면 검찰이 어떻게 수사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여의도의 선덕여왕’은 동생이 말했으니 끝이라고 하면 그만인가. 이게 수사지침이냐”고 따졌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도록 동생을 설득하는 것이 박 전 대표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지만씨는 자신과 신 회장 간 관계가 문제로 불거지자 “신 회장과는 친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여전히 신 회장이 지만씨와의 관계를 활용해 삼화저축은행 퇴출과 자신의 구속을 막기 위한 구명 로비를 했을 것이란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동생 지만씨의 의혹 외에도 박 전 대표의 조카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지방 저축은행의 불법행위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통상보다 크게 낮은 수준의 징계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과 금융계에 따르면 박 전 대표의 조카인 한씨가 이사로 재직하는 ㄷ사와 그 계열사는 지난해 5월 광주의 모 상호저축은행을 240억 원에 인수했다. 한씨와 남편 박모씨(56)는 ㄷ사 모회사의 최대 주주이다. 한씨는 저축은행을 인수한 뒤 상호를 ㅅ저축은행으로 변경했고, 전 대표 문모씨(75)가 은행 대표를 계속 맡도록 했다.

한씨가 이 은행을 인수할 당시 문씨는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각종 비리가 적발된 상태였다. 대손충당금을 적게 쌓고 당기순이익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자기자본비율(BIS)을 과대 산정하는 등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견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2월부터 이 은행 등 4개 저축은행에 대해 검사를 실시한 뒤 비리 정도에 맞춰 각각의 징계 수위를 금융위에 통보했다.

그런데 금융위 논의 과정에서 ㅅ저축은행의 징계 수위만 대폭 낮아졌다. 금감원은 문씨의 비리 정도가 심각하다고 보고 직무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금융위에 요청했지만 금융위는 1개월로 단축했다. 반면 경영진 직무정지 등 중·경징계를 요청받은 나머지 3개 저축은행은 금감원이 통보한대로 결론이 났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행위·부실경영을 ‘고강도’ 처벌하겠다는 금융위 방침이 한씨가 인수한 저축은행에는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사실 외에도 박 대표의 올케인 서 변호사가 삼화저축은행 고문변호사를 지낸 사실이 알졌다. 서 변호사가 그동안 여러 기업의 고문변호사와 사외이사를 맡는 등 왕성한 경제활동을 한 것에 대해 ‘미래권력의 후광’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 변호사가 사외이사나 고문변호사 등으로 몸담은 기업들은 증권가에서 ‘박근혜 테마주’로 분류돼 느닷없이 주가가 치솟기도 했다. 가죽가공업체인 신우는 서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틀째 가격제한폭까지 오르기도 했다. 동부티에스블랙펄도 서 변호사의 사외이사 재직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급등했었다.

서 변호사는 지난 4월 미주제강의 자문변호사로 선임됐다. 이 무렵 증권가에선 미주제강이 박근혜 테마주라는 소식이 퍼지며 주가가 급등했다.

또한 3년 전부터 국내 폐기물 처리 분야 선두기업인 인선이엔티(ENT)의 자문변호사로 활동하며 지난해 ‘장하성펀드’로 알려진 라자드기업지배구조펀드가 장내 매수를 통해 5%에 가까운 지분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조카를 매우 예뻐하기 때문에 서 변호사와의 관계도 각별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며 “기업들로선 박 전 대표에 줄을 대려면 서 변호사에게 고문변호사를 맡기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된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변호인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아킬레스건 부상?

동생, 올케, 조카의 연이은 의혹에 박 전 대표 측의 한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주변 인물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고는 있지만 누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전부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면서도 “잘못이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변 사람의 활동 모두를 박 전 대표와 연결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 ‘원칙공주’ 이미지를 고수해온 박 전 대표는 이번 친인척들의 의혹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만씨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박 전 대표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아킬레스건 부상은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본격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박 전 대표는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지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