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 국회 ‘폭로의 전당’ 전락 사연

“아니면 말고?” 면책특권 믿어도 너무 믿네

여야는 저축은행 비리 사건과 관련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로비의혹에 대한 무차별 폭로전을 벌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형인 이상득 의원, 청와대 관계자, 민주당 원내대표 등 여야 고위인사들이 줄줄이 의혹 대상에 올랐지만 뚜렷한 근거 없는 루머가 많았다. ‘아니면 말고’  ‘일단 질러놓고 보자’ 식의 폭로와 맞불 대응으로 고소·고발이 난무해 ‘민의의 전당’인 국회는 지금 ‘진흙탕 폭로전당’이 됐다.

고소·고발 난무,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흠집내기
안상수 헛방 ‘폭로 리’ 이석현, 또 신빙성 논란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여야 폭로전이 점입가경이다.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전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고, 청와대, 국회 등 정관계와 측근들까지 누가 어디 저축은행과 어떤 관계더라는 식의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 나아가 의원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고소·고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고소·고발이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무죄를 해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치고 빠지기 식’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같은 당 박선숙 의원과 함께 지난 1일 배은희 한나라당 대변인을 고소했다. 배 대변인이 저축은행은 감사원 감사대상이 아니라고 한 박 전 대표의 과거 상임위 발언을 되살리며 “도둑을 감싸면서 도둑을 잡겠다는 경찰을 비판한 격”이라고 논평한 것이 중상모략과 허위사실 유포라는 주장에서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어 부산저축은행사건에 자신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지난 6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부산저축은행이 퇴출 저지 로비를 위해 청와대에 탄원서 두 통을 작성해 제출키로 결정했는데 이 과정에 부산지역의 한나라당 의원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러한 맞불 대응에 부산지역 의원들은 “부산 한나라당 의원들을 흠집 내면서 민주당에 쏟아지는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정치공작”이라며 지난 8일 박 전 원내대표를 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소했다.

부산지역 의원들은 또 “더 이상 이런 ‘치고 빠지기식’의 정치술수로 국민들을 현혹시켜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고소라는 칼을 꺼내들자 박 전 원내대표는 “탄원서가 청와대의 한 인사에게 전달된 것은 어느 정도 확인이 되는데 나머지 한 통이 어떻게 됐느냐는 당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파악하겠다”며 “민주당은 쏟아지는 제보들을 다시 한 번 검토해 정확하지 않으면 (언론에) 말하지 않는다”고 꼬리를 내렸다.

한편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 막후에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면책특권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신 의원은 최근 “부산저축은행그룹은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특수목적법인(SPC) 9개 회사를 통해 캄보디아에 투자했는데 여기에 김 원내대표가 깊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면책특권을 이용해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신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자신의 무관함을 해명하기 위한 고소·고발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언론을 향해서도 이뤄지고 있다.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이 삼화저축은행 임원들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한 모 중앙일간지 기자를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후원 당사자가 문제의 저축은행에서 퇴사 이후 이뤄진 행위임에도 이 은행과 관련된 것처럼 보도했다는 이유다.

고소·고발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확인 없이 무차별적인 폭로전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안상수 헛방’ 폭로로 이른바 ‘이(李) 폭로’라고 불리는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대정부질문을 통해 “지난 1월 서울 청담동의 K 퓨전 한식집에서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이상득 의원의 측근인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이 만났다”며 삼화저축은행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또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이 기업인이 이상득 의원에게 삼화저축은행 구명로비를 했다는데 파악하고 있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곽 위원장은 “이 회장과의 식사자리에 옆 테이블의 신씨가 잠깐 합석해 인사를 한 것일 뿐”이라 했고, 이상득 의원은 “저축은행 관련자는 한 명도 모른다. 무책임하고 야비한 정치공세”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자체 제작한 좌석배치도 등을 제시했지만 신 명예회장을 포함한 이들 3명이 회동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공개하지 못해 이 의원의 폭로를 두고 신빙성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강원저축은행의 부행장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며 이 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검사를 무마시켰다는 의혹을 받았고, 한나라당 공성진 전 의원과 민주당 임종석 의원은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역시 동생 지만씨가 신 명예회장과 절친한 사이이며 서울 모처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에 이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의 청탁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이 대통령이 직접 “국회의원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면책특권을 이용해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것이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여야 의원들의 잇단 폭로를 계기로 현행 면책특권 제도가 과연 합리적이냐는 등의 논의가 확산되는 등 정치권 내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여야 원내 사령탑은 ‘폭로자제 신사협정’을 맺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국민이 부여한 소중한 시간이 정쟁과 폭로전으로 얼룩진다면 국민 앞에 송구스러울 것”이라며 김진표 원내대표와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폭로자제 신사협정’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본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버리고 스스로 법 개정에 나서지 않는 한 면책특권 제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 국회의원들의 고소·고발 경쟁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사실 여부를 떠나 비리나 각종 의혹 주체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두고두고 약점이 되는 국회의원들에게 고소·고발은 하나의 해명 방법”이라며 “선거 과정에서 수없이 이뤄진 고소나 고발이 선거가 끝나면 모두 흐지부지 철회됐던 것처럼 이번 건들 역시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잘잘못을 명확히 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소속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카더라’는 식의 무차별적인 폭로와 고소·고발은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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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