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받던 ‘야권 대통합론’ 흔들리는 까닭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니까!

4·27재보선 승리 이후 민주당 내에서 야권통합 논의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반드시 야권이 통합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공식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는 논리에서다. 선거용 일시적 연대나 단계적 통합보다는 대통합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방치 속에 ‘한-EU FTA 비준안’ 통과로 인해 대통합론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연대보다 통합의 길로 가야 승산 있어
결속 다지던 야권, FTA 놓고 파열음

4·27재보선의 승리로 사실상 ‘대표 2기’ 체제를 연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통합’과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야권 ‘잠룡’ 중 최고의 지지도를 가지고 당내는 물론 야권에서 확고한 입지를 마련한 손 대표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재보선 이후 야권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일고 있는 가운데 손 대표의 최근 발언은 ‘야권 대통합론’에 힘을 실었다.

여러 가지 통합론

손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혁신과 통합”이라며 당의 제도적·인적 혁신과 민주개혁진영의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 잔치는 끝났다” “이번 야권연대 단일화 과정을 통해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평가 받았다”며 또 하나의 화두로 연대가 아닌 통합을 강조했다. 이어 “양보와 희생, 헌신의 정신으로 야권연대에 임했는데 이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재보선의 교훈”이라며 “민주개혁진영을 하나로 통합하는 굳은 의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경남 김해을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야권이 연대가 아닌 통합이 필요하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내 486그룹과 재야파, 친노그룹 등으로 구성된 진보개혁모임은 지난 1일 대전에서 첫 워크숍을 열고 향후 야권 대통합 방안을 논의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본격적으로 통합을 논의할 때가 됐다”며 “재보선에서 피어난 희망의 불씨를 정권교체의 불길로 타오르게 하려면 강력한 수권정당으로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내년 민주진보진영의 공동 승리를 위해서는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그러나 낮은 자세로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 내 또 한명의 잠룡으로 분류되는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6·2 지방선거에 이어 4·27 재보선에서도 우리는 경쟁적 후보 단일화 방식이 갖는 2%의 부족함을 경험했다”면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야권통합 단일정당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선후보출마 질문에 묘한 여운을 남겼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야권 단일정당론에 찬성하고 있다. 그는 “진보개혁진영이 다시 집권하려면 구체적 대안 내놔야 한다”며 “한나라당에 맞서는 정파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고 그 안에서 각 정파들의 독자성을 보장해 주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야당들은 민주당 중심의 야권 단일화 논의에 거부감이 적지 않다. 일방적 항복을 요구하는 ‘흡수합병식 통합’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정당은 ‘선(先) 진보진영 통합, 후(後) 민주당과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다수의 당원이 진로를 결정하면 평소 내 생각(선 진보대통합·후 민주당 연대)과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힘을 실어 줄 것”이라고 밝혀 야권대통합론 수용 가능성 열어뒀다. 이번 재보선에서의 패배가 상당한 교훈이 된 모양이다.

한편 진보신당 노회찬 전 대표는 “야권 단일정당은 선거 이후 지속하기 어렵다”며 ‘가설정당론’을 주장하고 있다. 선거에 앞서 한시적 가설정당을 만들어 각 정당의 당원들이 하루만 가설정당에 입당, 투표로써 단일후보를 선출하자는 내용이다.

야권 단일정당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민주당에서도 참여당과의 통합은 가능하지만 진보정당까지 아우르는 통합은 이념적 문제 등에서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위기의 ‘통합론’

야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길은 ‘통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4·27 재보선 후 급물살을 탔던 ‘통합론’에 급제동이 걸렸다. 비준안 합의처리를 다짐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FTA 비준안은 결국 민주당 의원들의 본회의 불참 속에 한밤중 표결 처리로 국회 관문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진보정당들은 ‘배신’이라고 강력 반발했고, 일제히 여·야·정 합의안을 낸 민주당에 대해 ‘4·27 재·보선에서의 정책연합 파기’라고 맹비난하며 공격하고 나섰다.

게다가 잠복해 있던 민주당 내 노선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야권연대·통합 논의에 난기류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4일 국회에서 야3당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안타깝고 고통스럽지만 야권연대에 중대한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당 안팎에서 ‘한·EU FTA’를 둘러싼 내홍이 커지면서 갈 길이 먼 야권연대·통합 협상은 한동안 완보나 횡보로 바뀔 가능성이 제기된다.

4 ·27 재보선 이후 힘을 받은 야권통합론의 험난한 미래가 예상돼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야권 지도자들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공식이 갈수록 명약관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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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