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비리의 온상’ 부산저축은행그룹 실체

저축은행의 탈을 쓴 ‘부동산 투기꾼’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전국 최대 규모의 건설시행사’. 검찰이 규정한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실체다. ‘저축은행의 탈을 쓴 부동산 투기꾼’이란 얘기다. 불법인출사태에서 촉발된 이번 수사를 진행하는 내내 검찰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저히 금융기관으로 볼 수 없다”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검찰이 이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대체 뭘까. 부산저축은행 이면에 꿈틀대던 충격적인 불법과 비리를 <일요시사>가 낱낱이 공개한다.


페이퍼 컴퍼니 120곳 세워 4조5942억 불법대출
성공 시 돈 챙기고 실패 시 예금자에 책임 떠넘겨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불법 대출이 시작된 건 지난 2006년 5월. 영업정지가 내려지기 두 달 전인 지난해 12월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 독립사업체인 것처럼 위장했다. 처음 SPC를 설립할 때는 임직원 지인들의 차명을 이용했다. 하지만 수법은 갈수록 대담해졌고 컨설팅 회사나 공인회계사를 가담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세운 SPC는 무려 120곳. 여기에 4조5942억원을 불법 대출해줬다. 고객돈 9조1954억원 가운데 절반을 부동산 투기에 동원한 것이다. 상호저축은행법은 저축은행의 부동산 투자나 제조업 진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박 회장 사금고 전락

투자결정은 매일 오전 박 회장과 김양 부회장, 김민영 부산·부산2저축은행 대표 등이 참여하는 임원회의에서 이뤄졌다. 임원회의 결정에 따라 부산저축은행 영업 1∼4팀 소속 직원 16명이 SPC 120곳의 법인 인감과 통장을 관리하며 대출해줬다. 이 임원회의에는 금감원 국장 출신 감사들도 참석했다.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감사들이 대주주 경영진의 부정행위를 눈감아주는 걸 넘어 직접 범죄에 발을 담근 것이다.

박 회장은 닥치는 대로 사업에 손을 댔다. 부동산은 물론 아파트 건설업, 골프장, 납골당, 태양광발전, 운전학원, 선박 등 마구잡이로 투자를 했다. 해외 사업도 가리지 않았다. 대 캄보디아 신도시 건설사업과 인도 발리 리조트 개발 사업 등에도 돈을 쏟아 부었다.

사업성 검토는 생략한 막가파식 투자였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말 현재 120곳 중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된 곳은 21곳(17.5%)에 불과했다. 99곳이 부실영업을 한 셈이다.

박 회장이 이처럼 고객돈을 함부로 굴린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SPC 사업이 성공하면 이익을 챙기면 되고, 실패하면 예금자들에게 손해를 떠넘기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에겐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란 얘기다.

박 회장은 또 직영 SPC에 내준 대출금이 이자 연체 등으로 부실화되자 임직원 친·인척 명의로 7500억원에 달하는 무담보 신용대출을 일으켰다. 이 돈은 기존 대출금을 돌려막는 데 투입됐다. SPC에 직접 대출해준 4조5942억원을 포함, 실질적인 불법 대출금이 5조3442억원으로 불어나는 셈이다.

박 회장이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묘책으로 택한 것은 분식회계였다. 자기자본비율(BIS)을 높게 조작한 것이다. 2008년 7월부터 2년간 분식회계로 처리한 액수만 무려 2조4533억원이다. 200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규모가 1조5900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조작된 BIS비율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투자자도 다수다. 빈껍데기만 남은 부산저축은행을 우량한 것으로 착각하고 투자했다가 돈을 떼인 투자자만 2947명, 투자액은 1132억원에 달한다. 부산저축은행은 또 가짜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1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이 500억원씩 증자에 참여했다. 두 곳은 부산저축은행 부실로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제돈 챙기기 급급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대주주들은 거액의 배당금과 연봉으로 배를 불렸다는 것이다.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박 회장 등 대주주 경영진 4명은 총 640억원의 배당금 가운데 329억 원, 연봉과 상여금은 191억 원을 각각 챙겼다. 심지어 회삿돈으로 박 회장의 개인빚을 갚기도 했다. 부산·부산2저축은행이 다른 곳에 200억원을 대출해주는 과정에서 44억5000만 원을 떼 내 채무를 박 회장의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했다. 저축은행이 박 회장의 사금고로 전락된 것이다.

이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건 영업정지를 목전에 두고서다. 박 회장은 영업정지 전 부인의 명의로 된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1억7100만 원을 빼갔다. 또 부산저축은행과 중앙부산저축은행에서 1억1500만원과 5600만원을 각각 출금했다.

영업정지 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빼돌린 정황도 발견됐다. 박 회장은 영업정지 직후 자신의 임야가 압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친구 명의로 10억 원의 근저당을 설정했고, 김양 부회장은 영업정지 전후 주식 계좌에서 수억 원의 현금을 빼서 친척에게 줬다. 고객이야 어찌되던 제몫만 챙기면 된다는 심보다.

결국 서민의 돈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던 약속은 사탕발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들의 ‘고약한 행태’에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대상이 아닌 서민 3만143명은 피땀 흘려 모은 돈 2882억원을 고스란히 떼일 처지다. 사법당국의 강력한 조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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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