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남성이 왕’ 성노예 계약서 실체

“남자가 하자면 무조건 해야 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성인물에서나 나올 법한 ‘성노예 계약서’가 국내서 판을 치고 있다. 여고생, 업소여성도 모자라 심지어 처조카에게까지 성노예 계약서를 강요한 파렴치한 남성들이 적발됐다.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야동과 현실을 구분 못한다”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들은 모두 법의 철퇴를 맞았지만 피해자가 받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처조카에게 성노예 계약서를 강요한 파렴치한 이모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 A(22·여)씨가 어릴 적 부모님은 이혼했고 같이 살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혼자 남은 A씨는 18살이던 2013년 2월 인천에 있는 이모네로 거처를 옮겼다. 그때 이모부 B(44)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미성년자인 처조카 A씨와 같은 방을 쓰던 B씨는 그해 가을 처음 A씨에게 마수를 뻗었다.

천륜 져버린 범죄
핏줄의 악질 행각

이후 용돈을 주며 내연관계를 유지했다. A씨는 자신들의 관계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않아도 당시에는 이모부를 따랐다. 3년이 지난 지난해 5월, A씨는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B씨에게 그동안의 관계를 정리하자고 통보했다.

내연관계를 끝낼 생각이 없던 B씨는 A씨를 인천의 한 모텔에 데려간 뒤 “예전에 촬영한 나체 사진을 남자친구에게 보내겠다”며 협박했다. 그날 밤 결국 강제로 성폭행한 B씨는 다음날 경기도의 한 놀이공원에 A씨를 데리고 가 놀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승용차에서 성노예 계약서를 쓰게 했다.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갖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작성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보내라는 거였다. A씨는 B씨의 강압적인 태도에 어쩔 수 없이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의 내용은 이렇다. ‘저는 이모부에게 정신적 피해를 줬습니다. 보상의 의미로 한 달에 2번씩 주기적으로 만날 것을 맹세합니다. 섹스 등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겠습니다. 강요나 협박도 없었고 스스로 해 주고 싶습니다.’ 온라인 계약서는 곧 B씨의 휴대전화로 전송됐다.

이후 지난해 9월까지 A씨는 B씨로부터 5차례나 더 성폭행을 당했다. B씨는 A씨의 휴대전화로 남자친구에게 ‘그만 만나자’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둘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A씨가 보낸 것처럼 꾸몄다. 그해 여름 B씨는 A씨에게 더 구체적인 성노예 계약서를 요구했다.

12월 말까지 매주 목·금·토요일에는 B씨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남자친구도 사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거짓말을 하거나 믿음을 주지 못하면 자신과의 만남을 1년 더 추가한다는 부수 조항도 넣었다. 이번엔 종이에 진짜 계약서처럼 ‘갑’과 ‘을’이라는 글자까지 쓰도록 강요했다. 물론 갑은 B씨였고 을은 A씨였다.

지난 22일 인천지법 형사13부(김진철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카메라 등 이용촬영 및 강요, 협박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집에 살게 된 미성년 처조카와 성관계를 하고 관계를 정리하자는 요구를 받자 성폭행했다”며 “범행 경위나 수법 등을 보면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상당한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모부와 처조카 부적절한 관계
진짜 계약처럼 갑을에 사인까지

그러나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자백하며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상해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 외에는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지난 2015년 12월에는 화장품 매장서 물건을 훔치다 걸린 여고생에게 성노예 계약서를 강요한 점장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화장품 매장 점장 박모(37)씨는 지난해 2월, 매장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C(15)양에게 “50만원을 변상하라”며 윽박지르고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가 포함된 반성문을 쓰게 했다. C양이 훔친 물건은 7000원짜리 틴트 한 개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박씨는 C양을 인근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밥을 사주면서 C양에게 제시한 것은 ‘노예계약’이었다. 박씨는 “예전에 걸렸던 애도 계약서 쓰고 나체 사진을 보냈다. 너는 어디까지 각오가 돼있냐”며 한달에 한두 번 만나 성적 행위를 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타깃은 여중고생
늑대들 호시탐탐

검찰은 박모씨에 대해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7명의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양형은 배심원 다수가 징역 1년의 실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박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반성문을 썼지만 피해자는 큰 수치심을 받았을 것”이라면서 “피해자가 건전한 성적 가치관을 형성할지 걱정이 되는 상황임에도 피고인은 변명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공판서 배심원단은 “사춘기 피해자에게 노예계약서를 들이밀었다는 자체만으로 성적 수치심을 줬다고 볼 수 있다”며 유죄라고 판단했다. 가수를 지망하는 여고생에게 ‘성노예 계약서’를 작성해 협박하고 유사 성행위와 성폭행을 한 40대 남성도 법의 철퇴를 맞았다.

피의자 조모(40)씨는 지난 2012년 서울 중랑구 임대아파트에 D양 가족이 입주하도록 도와주며 D양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D양이 가수지망생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D양 가족들에게 자신을 유명 가수와 공동으로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속여 D양에게 접근했다.
 

연예인이 되기 위해 D양이 자신을 따르자 조씨는 2013년 5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자신의 집 등지에서 연습생은 방송PD에게 성 접대를 해야 하는데 이를 가르쳐준다며 D양을 성폭행하고 영화 출연 전 예행연습이라고 속여 유사 성행위를 강요했다.

또 자신의 내연녀 이모(36)씨와 함께 집단 성관계도 갖도록 했다.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는 조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연예계 활동에 필요한 연습이라고 속여 청소년인 피해자와 수차례 성관계를 갖는 등 조씨의 범행 수법과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성노예 계약서사건에는 공무원까지 합세했다. 한 세무공무원이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돈을 갚지 못하면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성노예 각서를 작성하게 한 사실이 밝혀진 것.


대전지방국세청 청주지역 세무서 8급 공무원 E(35·8급)씨는 2012년 피해 여성인 김모(32)씨를 성매매업소에서 알게 돼 친분을 쌓아왔다. 김씨가 사채 이자로 힘들어하자 2013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4000만원을 빌려줬다.

이 과정에서 E씨는 김씨에게 ‘매달 원금과 연 40%의 이자를 상환하고 이를 어길 시 징벌로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성노예 계약서를 강요했다. 실제 E씨는 김씨가 상환 기일을 지키지 않자 “차용증 내용처럼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덕 사채업자에게 넘겨 외딴 섬에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해 모두 26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졌다.

E씨는 상환 일자를 하루라도 넘기면 성관계를 요구했다. 또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평생 노예로 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섬으로 팔려가고 싶으냐’ ‘노예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등의 협박을 하기도 했다.

공무원까지…
믿을 사람 없다

E씨는 또 2013년 2월 대전지방국세청 모 세무서 전산망에 무단으로 접속해 김씨와 그 가족의 세무정보를 열람한 것으로 드러났다. E씨는 이를 바탕으로 “네 가족이 누군지, 주소지가 어딘지 알고 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성매매 여성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채무를 빌미로 성관계를 강요했다는 혐의에 대해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네티즌들은 인터넷상에 “타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공무원이 성노예 계약서를 강요했다는 사실만으로 도덕적인 문제서 벗어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법을 잘 모르는 20대 여성들의 약점을 잡아 성노예 계약서를 쓰도록 한 뒤 성 노리개 등으로 삼아온 30대 남성도 있었다. 네일아트 학원에 다니던 이모(21·여)씨는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돼 잠시 수원의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게 됐고 손님으로 사채업자인 김모(38)씨를 만났다.

야동 많이 봤나…미성년 피해자도
“연예인 시켜줄게” 방법도 가지가지

김씨는 이씨와 만나 성관계를 맺은 후 이를 빌미로 ‘부모님께 알리겠다’며 이씨를 협박했다. 급기야 이씨는 김씨가 불러주는 대로 종신 노예계약서를 써야 했다. ‘40년간 봉사해야 하며 이 계약서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효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김씨는 이씨를 수차례 성폭행하고 돈을 갈취하는 등 파렴치한 범행을 일삼았다. 계약 무효를 주장한 이씨에게 주먹질까지 했다.

김씨의 범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씨의 친구인 김모(21·여)씨에게까지 ‘위장 취업하면 은행대출 1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우선 550만원이 필요하다’고 속여 돈을 가로챈 뒤 ‘이 돈을 받고 싶으면 노예계약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결국 김씨마저 ‘이 계약서를 갖고 계시는 분께 평생 시키는 대로 할 것이며 이를 어겼을 때는 민·형사상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라는 계약서를 건넸다. 이후에도 김씨는 이들에게 “너희들은 내 거다”라는 언행을 일삼으며 수시로 불러내 노리개로 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씨와 김씨가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계약서에 효력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김씨를 신고하면서 김씨의 파렴치한 행각은 막을 내렸다. 수원남부경찰서는 김씨를 강간, 강도, 상해, 폭행, 협박, 사기 등 무려 6개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어려 법에 대해 잘 모르는 20대 여자들을 사채업자가 이용한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연예인 스폰서 계약 관련 종사자의 폭로도 있었다. 한때 연예인 성 스폰서 계약 관련 종사자였다던 F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F씨는 지난 2013년 12월 수원지검 안산지청서 수사한 연예인 성매매 사건 당시 관련자 조사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F씨는 “보통 스폰서 하면 도움이 필요할 때 대가 없이 후원하거나 백그라운드가 돼주는 것이다. 여기서는 약정된 돈(대가)을 건네고 계약에 따라 약속한 서비스(성)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렇지 않다면 왜 계약서를 별도로 쓰겠나”라고 말했다.

또 “단발성이 아니고 ‘몇 차례에 얼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해당 여자 연예인이 돈만 받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로 보면 되겠다. 한 번에 5000만원 이상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스폰서 입장에서는 신상명세가 상세히 기록된 약정서가 있으면 아무래도 믿고 거래하기가 쉽다”고 계약서를 쓰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어디에든 있다
연예계도 성행

연예인 성매매 스폰서 계약서는 명칭이 ‘디지털 서비스 계약서(방송인)’로 돼있다. 이는 성매매로 인한 돈 거래 내역이 적발될 경우를 대비해 ‘광고계약서’의 형태로 위장한 것이다. F씨는 “이미 저는 손을 뗐지만 여전히 비슷한 형태의 거래는 이어지고 있고 이름난 연예인일수록 워낙 철저한 보안을 거쳐 은밀히 거래되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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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