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최규선 인생사

치밀한 사업가인가 타고난 사기꾼인가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김대중정부 시절 ‘최규선 게이트’로 떠들썩했던 최규선씨.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횡령·배임 혐의로 또다시 철창신세를 지게된 것. DJ맨에서 사업가로의 변신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여다본다.

1960년 전남 나주서 태어난 최규선씨는 부친이 버스터미널을 운영했기 때문에 상당히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최씨의 아버지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친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외대 재학 중이던 1981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통일교 재단을 통해 유학을 가게 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유학간 지 1년 만인 1982년 그는 위스콘신대 국제학생회장이 됐다.

‘게이트’ 떠들썩

최씨는 당시 미국으로 망명 온 김 전 대통령을 다른 한국 유학생 학생회장 서너명과 함께 시카고의 한 호텔서 만나 이때부터 ‘DJ맨’이 됐다.

최씨는 1986년 대학 졸업후 귀국, 김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났다. 대학원 진학 시험 준비를 핑계로 귀국했지만 사실은 1987년 대선에 출마한 김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 곁에는 박지원 뉴욕 한인회장, 유종근 럿거스대 경제학과 교수가 있었고 최씨와 유종근씨는 이때부터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1988년 최씨는 선거운동 시 종종 이용했던 서울-광주 간 비행노선서 만난 두 살 연상의 스튜어디스 손미혜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의 석사 과정에 입학, 스칼라피노 교수의 조교였다.

그러나 스칼라피노 교수가 소속된 버클리 동아시아 연구소는 “최씨가 1996년 5월 ‘평화와 분쟁학’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한 기록은 있으나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스칼라피노 교수도 최씨가 학부 학생이었음은 인정했지만 대학원 지도학생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버클리대 동문회 관계자는 “최씨는 공부보다는 수시로 한국을 드나들며 사람 만나는 일에 몰두해 유학생 사회에 수수께끼 인물이라는 평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최씨와 마이클 잭슨과의 인연도 미스터리다. 그는 지난 1992년 5월 LA의 센트럴시티서 마약퇴치 운동을 위한 자선기금 모금파티가 열린 자리에서 마이클 잭슨을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최씨는 마이클 잭슨이 만난 지 석 달째 자신을 생일파티에 초대했다고 주장했다.

사기·횡령·배임…또 다시 철창행
DJ정부 최대 스캔들 주인공의 몰락

마이클 잭슨은 최씨에게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누구라도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주선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최씨와 여러 차례 만났다는 한 기업인은 “최씨가 술자리서 흥이 나면 마이클 잭슨과 친분을 쌓게 된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최씨가 김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94년. 최씨는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미국에 유학 중인 홍걸씨를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측은 이를 부인했다. 최씨는 1996년 다시 귀국해 그해 10월, 마이클 잭슨의 한국 공연을 주선했다.
 


최씨는 또 1996년 당시 신한국당의 2인자였던 최형우 고문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내무부장관서 막 물러나 대권행보를 시작한 최 고문에게 그는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접근해 특보가 됐다. 그러나 그가 일부 기업체에 최형우 의원 특보라면서 금품 협찬을 요구한 사실이 밝혀져 그의 특보 활동은 서너달 만에 막을 내렸다.

최형우 고문 특보서 물러난 최씨는 1997년 대선운동이 시작되자 김 전 대통령의 특보로 활동했다. 그는 1997년 3월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 때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딸 진지 만델라를 참석시키면서 섭외능력을 인정받아 대외담당 보좌역으로 일하게 됐다.

그는 1997년 12월말 김 전 대통령이 당선자가 된 직후 마이클 잭슨을 통해 세계적 펀드매니저인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 회장의 입국과 알 왈리드 사우디 왕자로부터 국내 투자를 유치하는 등 IMF위기 때 긴요한 수완을 발휘, 그의 진가를 드러냈다.

당시 그는 시티은행의 최대주주인 알 왈리드 왕자를 통해 시티은행의 제일은행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공으로 최씨는 당선자 비서 5인 중 1명이 됐다. 당시 당선자 비서 5인방은 이강래, 박금옥, 장성민, 고재방, 그리고 최규선이었다. 그러나 비서 5인방 중 최씨는 유일하게 청와대 입성에 실패했다. 당시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언질로 내심 청와대 정황실장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낙마 이유와 관련해 최씨는 자신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자 “시건방지다”는 이유로 동교동계로 대별되는 가신들의 텃세와 음해에 밀려 밀려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씨가 청와대 비서실 멤버에서 제외된 이유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언행에 신뢰성이 없고 경력도 불분명한 데다 이권 개입설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8년 6월 최씨는 외자유치 커미션과 관련된 문제로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당 총재 보좌역 자리도 내놓게 됐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즈음 최씨의 미국 내 사기행각이 청와대에 알려졌고 이것이 그를 권력 핵심부로부터 멀어지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최씨는 1999년 당시 민주당 실세 권노갑 민주당 고문을 병문안 가는 방식으로 접근, 특보로 기용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 최씨는 권 고문 비서관에 승용차를 선물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최씨의 권 전고문 특보 직함마저도 대통령 특보 등을 자처하고 다니다가 문제가 돼 단기간에 그쳤다.

사우디 왕자와 친분…투자 이끌어
마이클 잭슨이 생일파티에 초대도

1999년부터 벤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최씨는 2000년초 김홍걸씨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크게 한 판을 벌이려 했다. 그는 2000년 2월 알 왈리드 사우디왕자로부터 10억달러(1조3000억원)를 끌어들여 왈리드 왕자를 회장으로 하고 자신이 사장을 맡으며 김홍걸씨를 애널리스트로 하는 벤처투자회사를 만들려는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김홍일 전 의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홍걸씨는 김 전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해 7월 최씨와 함께 포스코 유상부 회장을 만나 벤처창업에 대한 도움을 받는 등 독자노선을 걷던 와중에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면서 동반몰락의 길을 걷게 됐고 그의 화려했던 정치편력도 막을 내리게 됐다.

최씨는 2015년 코스닥 상장회사인 (주)루보를 인수해 사명을 (주)썬코어로 변경하고 대표이사 회장이 됐다. 2016년에는 (주)썬테크놀로지스의 대표이사가 되기도 했다. (주)썬테크놀로지스는 철강 산업에 필요한 압연 제조 공정의 핵심 부품인 주조 압연롤 전문 생산 업체로 일부 대형롤뿐만 아니라 중, 소형롤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제품군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들어 그의 이름이 다시금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이유는 사기와 횡령·배임.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지난달 24일 400억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0억원을 선고하고 최씨를 법정 구속했다.

최씨는 지난 2007년 1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이동식 발전설비 공급계약을 맺고 받은 공사 대금 2700만달러를 7차례에 걸쳐 빼돌리는 등 회삿돈 총 430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금 사업은?

재판부는 “최씨는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하면서 회삿돈을 빼돌렸고 피해 회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최씨가 금감원 등에 위조된 증거를 제출한 점 등을 고려하면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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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