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기획특집>③신(新)고부갈등, 뒤바뀐 설 풍속도

명절이 괴로운 시어머니들“며느리만 힘들단 편견은 버려”

명절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설렌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도 있다. 전자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고, 후자는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는 며느리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명절 풍속도가 변하고 있다. 시어머니 눈치를 보는 며느리가 아니라 며느리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들이 늘고 있는 것.

명절증후군 앓는 며느리 옛말, 요즘엔 시어머니가 더 ‘눈치’
맞벌이 하는 며느리 위해 혼자 장보고 음식 장만까지 마무리


맞벌이를 하면서 손자·손녀까지 키우는 며느리들 눈치를 보느라 미리 장을 봐 음식을 해놓기도 하지만 이조차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말이 화살로 돌아온다. 며느리 눈치 보며 명절을 보낸다는 시어머니들의 말 못할 사연을 취재했다.

만나는 가족 친지들로 인해 시끌벅적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반대로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그 동안 참아왔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서 간 혹은 형제간의 다툼은 다반사고 시댁과 며느리, 장인·장모와 사위간의 갈등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최근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입장이 뒤바뀐 신(新)고부갈등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신(新)고부갈등 시대
며느리 눈치 보는 시어머니

 
지난해 장남을 장가보낸 젊은 시어머니 이모(58·여)씨에게 이번 설은 시집온 며느리와 처음 맞는 설이다. 젊은 시어머니이긴 하지만 최근 오히려 며느리들의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가 많다는 소문에 명절이 돌아오면 며느리 단속을 철저히 해야겠다 다짐했지만 이 생각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식을 올린 지 두 달 만에 며느리가 임신을 한 것. 이씨는 반갑고 축하해야 할 일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임신 6주차라 조심해야 한다”고 아들 녀석까지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설음식까지 혼자서 다 마련해야 할 판이다.

또 다른 시어머니 박모(62)씨는 맞벌이하는 며느리를 위해 명절이 되면 으레 혼자서 장을 보고 음식을 미리 준비해 놓는다. 며느리가 맞벌이를 하는 것이 자신의 아들이 벌어오는 돈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일 년에 몇 번 시댁에 올 때마다 피곤해하는 며느리에게 일을 맡기자니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박씨는 “며느리에게 설거지 정도만 시키는 편”이라면서“사위가 백년손님이라더니 요즘엔 며느리가 백년손님이다”라고 하소연했다.

김모(64·여)씨는 지난 추석에 며느리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서울깍쟁이 며느리가 시골에서 명절을 보내는 동안 혹시 불편하지는 않을까 싶어 하루 전날부터 쓸고 닦고 집 청소를 하느라 분주했지만 “그러시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하다”는 말을 듣게 된 것.

가족 구조 변화하면서 시어머니 스트레스 늘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며느리는 백년손님


김씨는 며느리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 일이었지만 저런 말을 듣고 나니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사실 지금까지 명절이 되면 ‘며느리들의 명절증후군’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명절이 괴로운 것은 시어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시어머니들도 과거 어느 순간에는 며느리였고, 시어머니가 된 이후부터는 ‘집안 안살림의 리더’로서 명절 음식과 행사를 총 지휘해야 하는 책임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시어머니’라는 이름 때문에 여러 가지 노력과 고생은 수포로 돌아가고 악역으로만 비치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최근 시어머니들 사이에서는 “명절에 자식 가족이 찾아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이다.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맏며느리로 집안을 이끌고 있는 김모(49·여)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김씨는 “시어머니는 첫 아이가 2살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후 집안 살림은 내가 도맡아 했다. 시동생들을 시집장가 보내고, 명절이면 큰집인 우리집을 찾아오지만 평소 남편과 둘이 지내던 공간에 시동생 부부들이 잔뜩 찾아오면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여든을 코앞에 둔 또 다른 김모(77·여)씨는 명절이 되면 다른 시어머니들과는 다른 고민에 빠진다.

언제부턴가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 사라진 것. 셋이나 되는 며느리 중 한 명도 시댁에 오지 않는 일이 몇 해 전부터 발생하고 있다고. 문제는 몇 해 전 명절 기간 동안 막내며느리의 해외여행을 허락한 이후부터 시작됐다. 처음이 어렵지 그 이후에는 큰 며느리와 둘째까지 가세해 대놓고 여행을 가버리는 바람에 말릴 겨를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남편도 없는 마당에 자식들까지 명절 발걸음을 안 하니 명절이 되면 여간 외로운 게 아니다”면서 “명절이면 앞집 뒷집 친척들이 모여 깔깔대며 재미난 이야기 소리가 대문 밖으로 넘쳐 나는데 우리집만 고요하다. 홀로 집에 남아 벽만 바라보는 명절이 정말 싫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어머니들의 이 같은 명절 스트레스를 두고 “한국 사회의 급격한 가족 구조 변화가 가져온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가족의 범위가 점차 축소되다 보니 서로의 공간에 배우자와 자식이 아닌 사람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족 구조 변화에 따른
시어머니 스트레스


여성가족부가 2005년에 이어 지난해 조사를 실시해 최근 발표한 ‘제2차 가족실태’ 결과에서 가족의 의미변화는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조사 결과 가족의 범위는 대체적으로 축소됐다. 배우자의 부모도 내 가족이라고 답한 사람은 50.5%에 그쳤고, 자신의 부모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77.6%로 나타났다. 5년 전 92.8%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다. 이어 형제·자매를 가족으로 여기는 응답자 역시 63.4%로 5년 전의 81.2%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가족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그야말로 급감했다. 5년 전 각각 63.8%, 47.6%로 집계됐던 수치가 이번 조사에서는 각각 23.4%, 20.6%로 나타난 것. 심지어 자녀와 배우자를 가족으로 인식하는 비율도 각각 84.5%, 81.1%로 나타나 1차 조사와 비교했을 때 각각 14.2%p, 17.3%p 감소했다.

사회적으로 1인 가구와 아이가 없는 부부가 늘었고, 혈연보다는 동거 개념의 협소한 가족관이 확산되면서 시어머니는 물론 며느리들이 느끼는 유대감이 과거보다 끈끈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핵가족을 이뤄 살면서 협소한 가족관에 익숙한 사람들이 명절을 비롯해 일 년에 몇 번 정도만 일시적으로 ‘대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서로 어색해진다는 것.

바로 이때 이 어색한 상황을 타파하고 가족 간의 동질성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위치가 ‘집안의 안주인’인 시어머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평상시 아들 가족들의 생활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고 쿨하게 생각했던 시어머니지만 명절 ‘대가족’의 틀 안으로 자식들이 들어오면 ‘우리 가족의 동질감과 유대감을 확인해야 한다’는 핏줄 의식이 팽배해져 강박관념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며느리의 이질적인 행동이 눈엣가시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 뿐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동질감을 회복하기 위한 제스처는 취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가족의 개념과 범위가 대폭 축소되는 바람에 과도기적인 가족 변화를 가장 절감하게 되는 위치가 ‘시어머니’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시어머니에게 바짝 붙어 음식과 살림살이를 배우던 과거자신들의 모습과는 달리 세대가 바뀌어 현대 며느리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당혹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어머니 스스로
강박 떨쳐야 스트레스 탈피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시어머니 스스로 자신이 ‘전통의 수호자’라는 강박을 벗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야만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변화하는 사회현실에 발맞춰 ‘차례 상에 올라갈 음식은 반드시 집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 보거나 ‘아들에게 설거지 등 자잘한 일을 배분’하는 등 며느리와의 세대 차이를 줄이도록 노력해 보라는 것. 또 며느리들은 명절 내내 가족이 집안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시어머니에게 ‘쉬는 시간’을 주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시어머니들이 느끼는 명절 스트레스는 며느리들이 느끼는 것보다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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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