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안철수 플랜B

또 철수…일단 피하고 보자?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승승장구하던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위기에 봉착했다. 기존 정치와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며 대표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정치권에서는 ‘철수 정치’라는 비아냥도 들려온다. 2선으로 물러난 그의 다음 계획은 과연 무엇일까?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29일, 선거 비용 리베이트 수수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지난 2월2일 국민의당 창당과 함께 당 공동대표로 선출된 지 149일 만이다.

국면탈출 위한
승부수 던졌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언론에 홍보 리베이트 관련 의혹이 보도된 지 20일 만의 일이다.

국민의당의 계파 수장이자, 최대주주인 안 전 대표는 대표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번 사퇴는 지난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시절 7·30 재보선에서 패하자 “선거 결과는 대표들의 책임”이라며 물러난 데 이어 두 번째다. 그는 리베이트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초기대응 실패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사건 발생 초기 국민의당은 중앙선관위가 지난 8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박선숙, 김수민 의원과 왕주현 사무부총장을 검찰에 고발하자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안 전 대표도 9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받았다”며 당 자체 조사를 신뢰했다. 하지만 추가 의혹이 보도되자 안 전 대표는 다음 날인 10일 “사실관계를 적극적으로, 객관적으로 확인하겠다”고 첫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후 4차례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안 전 대표의 고정적 지지층으로 불리는 10%대 지지율이 흔들렸다.

상황은 지난달 27일 이후 급박하게 흘러갔다. 같은 날 리베이트 수수 의혹 혐의로 박선숙 의원이 검찰에 소환되고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다음날 안 전 대표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달 29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사퇴 의사를 피력했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만류했고 특히 국회부의장인 박주선 최고위원은 “당헌·당규대로 해야 한다. 지금 수습이 목적이지 현실도피를 해선 안 된다”며 “지금 안 대표가 책임져서 당이 수습이 되겠느냐”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이번 사태와 대표직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결국 천정배 공동대표와 함께 대표직에서 내려왔다. 국민의당은 안 전 대표 사퇴 이후 긴급 최고위 회의를 열고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박 원내대표는 최고위와 협의한 뒤 의결 절차를 거쳐 비대위를 구성할 예정이다. 비대위가 구성되면 최고위는 해산된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박 원내대표는 박선숙·김수민 의원에 대해 당헌·당규 이상의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의원총회에서) 그분들이 스스로 참석 안 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 임명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는 “원내대표도 세 번째, 비대위원장도 세 번째”라며 “새로운 비대위원 그리고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 김성식 정책위의장 등과 함께 튼튼한 원내 중심의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당대회를 위한 조직강화특별위원회도 흔들림 없이 일하도록 하겠다. 기강도 확실히 잡겠다. 신생 정당이기 때문에 3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해 위기에 처한 당의 쇄신을 강조했다.

현실 도피?
지지율 반등


안 전 대표의 사퇴 결심 배경에는 그가 리베이트 사건 연루자 출당 등 강한 징계를 요구했음에도 의원총회에서 수용되지 않아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점이 거론된다. 또한 사퇴가 더욱 악화돼 결국 이반된 호남민심에 떠밀려 자리에서 내려오는 그림이 그려지면 향후 대권 가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건이 측근 비리로 확대될 경우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위기 때마다 등장한 ‘철수 정치’가 재현된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안 대표 측은 “어떤 대응책을 내놓아도 여론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 대표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며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놓고 백의종군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철수 정치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대표의 사퇴를 두고 ‘리베이트 의혹’ 국면 탈출을 위한 승부수에 가깝다고 평하기도 한다. 앞서 국민의당은 박선숙·김수민 의원에 대해 당헌·당규대로 검찰이 기소하면 당원권을 정지키로 결정했지만 비상한 상황에 걸맞은 특단의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민의당이 사법적 판단에 앞서 선제적으로 정치적 책임을 짐으로써 국면 전환계기를 만든 것이다.
 

당 관계자는 안 전 대표의 이번 결정을 두고 “안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며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2일 창당대회 대표 수락 연설에서 온몸을 던져 정치 부패, 가짜 정치 등 우리 정치를 지배해 온 낡은 관행과 문화를 완전히 퇴출시키고 정치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당 관계자는 “부패 문제를 외면한 채 새로운 정치를 실천할 수 없는 데다 선거 과정에서 일어난 것(리베이트 의혹)도 대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의혹 확산…결국 사퇴 표명
안철수표 초강수…지지율 반등 효과

리베이트 사태로 줄곧 곤두박질쳤던 지지율은 안 전 대표 사퇴 이후 반등했다. 국민의당은 호남지역에서 더민주를 제치고 1위를 탈환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당 지지도는 지난 조사 대비 0.8% 오른 16.3%로 집계돼 최근 한 달간 이어진 하락세를 극복했다.

리베이트 의혹에 여론의 뭇매를 맞을 시기에는 총선 직후 최저 지지율인 15.5%를 기록하기도 했다. 안 대표의 대권 지지율도 소폭 상승해 지난 조사때 보다 1.3% 오른 12.8%를 기록했다. 단순 지지율만 놓고 봤을 때 사퇴카드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안 전 대표의 사퇴 이후의 행보는 대표직을 유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 전 대표는 사퇴의사를 밝힌 후 “평의원으로서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난 안 전 대표가 당분간 당 행사 참석 및 의정활동을 중단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퇴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열린 당 정책역량강화워크숍에 참석해 “공부하는 국민의당을 만들기 위한 아주 중요한 전통이다. 그런 전통을 이어가자는 뜻에서 참석했다”고 말해 우려를 불식시켰다. 안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는 물러나지만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는 정치행보를 보임으로써 정책 정당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정책역량강화워크숍은 지난 5∼6월에 걸쳐 제20대 국회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정책역량 강화, 정책정당으로서 당의 이미지 강화, 제20대 국회 핵심 정책의제 개발 및 추진 목적 등으로 진행됐다. 정쟁이 아닌 정책을 강조한 안 전 대표의 철학이 담긴 프로그램으로 알려진다.

손학규 러브콜
전화위복 계기

당초 국민의당은 리베이트 파문이 일기 전 국회부의장과 핵심 상임위 2개를 확보함으로써 들뜬 분위기를 숨기지 못했다. 더불어 ‘새판짜기’를 언급하며 야권정계개편의 핵으로 부상한 더민주 손학규 전 고문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사실상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 플랜에 돌입했었다.


그러나 국민의당 리베이트 파문이 지지층 민심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안 전 대표의 대권행보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가 적기에 물러났기 때문에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할 길을 닦았다고 평하기도 한다. ‘새정치’ 이미지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정치권의 예상과 달리 대표직을 던진 것은 기성 정치와의 차이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안 전 대표가 대권 행보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 대표 측 관계자는 “우선 안 전 대표가 ‘일하는 국회’와 교육혁명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상임위에서 이를 구현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을 겨냥해 대외활동을 서서히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이번 선택이 홍보비 파동을 통해 남긴 부정적인 인식을 만회할지 단언할 수 없지만,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된 대응을 통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안 전 대표의 색깔과 일치된 목소리를 내놓았던 국민의당이 개헌론 등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등 불일치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계속 손학규에 러브콜 “함께하자”
7∼8월 전국투어…대권행보 본격화

안 전 대표의 사퇴 이후 박 원내대표는 더민주 손학규 전 고문에 다시 한 번 러브콜을 보내면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강진 토굴에 계신 손 전 고문 같은 분들이 우리 당으로 들어와 활동도 하고 안 전 대표와 경쟁을 하는 구도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을 안 전 대표의 대선 러닝메이트로 만들어 대선 경선 흥행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총선 이후 수차례 손 전 고문에게 국민의당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고 목포에서 만났다. 하지만 아직 손 전 고문은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더민주에는 문재인 전 대표라는 대주주가 있는 만큼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에 합류해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사퇴한 안 전 대표에 대해서는 “실질적 리더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치켜 세웠다. 이어 “안 전 대표가 당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다”라며 “안 전 대표가 목표로 하던 대권가도를 위해 국민 속으로 들어가 일을 할 때 아무래도 당의 조직을 이용해 활동할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당장 대표직에서 내려온 안 전 대표의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과거 대표로서의 활동과 앞으로 평의원으로서의 목표는 행보는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 지도부의 구성이나 당의 의사결정에 전면에 나서기는 어려운 만큼 민심다지기 행보에 나선 다는 생각이다.
 

국민의당 이용호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당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브리핑을 열고 “당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주축이 돼서 7∼8월 전국 투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변인은 당의 얼굴로 안철수·천정배 전 공동대표를 꼽았다.

이번 투어는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으로 돌아선 민심을 돌려세우는 한편 전당대회를 치르기 위한 당의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진행된다. 국민의당은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간담회를 열어 민심을 청취하고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민심 다지기
칩거는 ‘NO’

국민의당에서는 안 전 대표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안 전 대표가 나서서 홍보를 하면 당원 모집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최근 진행되는 지역위원장 선정 등 조직 정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안 전 대표로선 손해 볼 게 없다”며 “당대표직을 유지했으면 수사에서 뭐가 나올 때마다 계속 욕을 먹었을 텐데 이제부턴 '할 일은 다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손학규 어디서 뭐하나?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이른 시일 내 정계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개막식에서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손 전 고문에게 “서울은 언제 올라오실 거냐”고 물었다. 이에 손 전 고문은 “이제 올라가야죠”라고 답했다. 2년여의 전남 강진 칩거생활을 접고 상경해 본격적으로 정계 복귀할 것을 시사했다.

그는 꾸준히 당 안팎으로부터 정계복귀 요청을 받아왔지만 응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지난 4·13 총선 직전 김 대표로부터 총선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 받았지만 거부했다. 이후 ‘새판짜기’를 거론하면서 제56주년 ‘4·19혁명’ 기념식, 5월 말 방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는 8월에는 ‘대한민국 대개조’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담은 저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손 전 고문의 최측근은 “정치는 생물인지라 하루하루가 바뀌긴 하지만, 손 전 고문의 정치복귀·재개 가능성이 상당히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훈>
 

<기사 속 기사> 정동영은 언제 등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사퇴로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경제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위한 직접시공제 도입과 일자리정책 주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를 지낸 정 의원은 그 동안 여의도와 거리를 유지했다. 리베이트 파문에 뚜렷한입장을 밝히지도 않았다.

당내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호남 의원들 일부는 벌써부터 ‘정동영 역할론’을 꺼내들고 있다. 정 의원의 역할론이 힘을 받는 이유는 과거 대권주자로써 가지는 정치력과 4·13 총선 리베이트 의혹에 자유로운 도덕성 때문이다. 특히 전북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 구도를 언급하면서 정 의원의 등장이 전북, 전남·광주의 지역갈등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북 정치권의 한 인사는 “당 이미지를 바꾸지 않고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담대한 진보와 공정한 분배라는 정 의원 정치철학이 지지율 회복의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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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