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연평사태 후폭풍⑤ 재계는 지금?

‘열중 쉬어’ 애 타는 눈길로 지켜보기만 할 뿐…

 현대아산 잇단 악재에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직접적인 피해 없는 기업도 행여 불똥 튈세라 긴장

북한군의 집중포격을 받은 연평도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기습적인 포격에 섬 곳곳이 찢기고, 불에 타고, 무너져 내렸다. 여러 채의 집이 쑥대밭이 됐다. 거리는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로 가득 찼다. 평화롭기만 하던 연평도 마을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렸다. 주민들은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총탄은 우리 젊은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했다. 이에 대한민국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규탄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다. 정부는 대응을 위해 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재계는 지금, 이번 사태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과거 북한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영향이 있더라도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 그마저도 바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5월25일 있었던 북한의 2차 핵실험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금융시장이 흔들렸으나 당일 오후 들어 안정을 회복했다. 오히려 CDS 프리미엄(부도 위험을 사고파는 신용파생상품)은 연중 최저치로 떨어지기도 했다. 올 5월 천안함 사태 이후 열린 증시에도 0.34% 하락에 그칠 정도로 한국경제는 북한 리스크에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 왔다.

북한 리스크에도 꿋꿋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번 도발이 예전과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간인을 공격한 때문이다. 기존 해상 충돌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무력시위와는 다른 차원의 도발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재계는 지금 잔뜩 긴장한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가장 애가 타는 것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이다. 남북관계가 고비를 맞을 때마다 정작 불똥을 맞는 것은 개성공단 사업이기 때문이다. 입주기업들은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5·24 조치’로 현지 체류인원을 1000여명에서 500여명까지 제한받은 바 있다. 당시 업체들은 주문량이 급감하고 남측 관리인원 부족으로 도난사고나 납기 차질, 품질 결함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후 정부는 공단 체류인원을 800∼900명 수준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최근 공단 누적 생산액이 10억달러를 돌파하면서 입주기업들은 자생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해안포 공격 사건이 터져 나오자 개성공단 입주기업 모임인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개성공단이 생긴 이래 최악의 사태”라며 도발 여파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긴장하는 모습이다. 입주기업들은 북한의 공격 소식이 전해진 이날 오후 회원사들과 긴급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단 내 영업 상황 점검에 착수했다.

입주기업들은 북한의 이번 공격으로 연평도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 관계가 더욱 경색될 것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개성공단기업협회 배해동 회장은 “회원사 관계자와 연락하며 공단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며 “사업에 영향을 줄까봐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대북사업체인 현대아산도 잇따른 악재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된 상태에서 천안함 사건에 이어 해안포 공격까지 발생하자 당분간 사업 정상화를 기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감에 빠진 모습이다.

이달 초까지 1년 2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면서, 남북 관계가 풀리고 있는 것으로 기대하던 터라 더욱 충격적이기만 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18일 금강산 관광 12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참배한 직후 기자들에게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타이밍이 됐다”며 “너무 오랫동안 서로 대치관계에 있어 지금은 서로 대화가 오고 갈 때”라고 의욕을 보였다.

또 장경작 현대아산 사장도 같은 날 12주년 기념 조회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우리에게 맡겨진 운명”이라며 정부의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북한에 체류 중인 입주기업 직원들의 신변과 작업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는 점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개성공단에는 121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이날 현재 남측 체류 인원은 764명이다.
이번 사태로 고민이 많은 건 정부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의 폐쇄 문제와 관련,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이날 하루에 한해 출경을 제한했다. 그리고 이후 진전 상황을 고려해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유례없는 출경 불허에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개성공단이 폐쇄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는 천안함 사태로 인한 ‘5·24조치’ 당시 개성공단의 폐쇄를 검토했다. 그러나 정부는 체류인원을 축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었다. 개성공단이 남북 긴장완화를 위한 유일한 완충지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우리 측 체류 국민들이 억류돼 사실상 대규모 인질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거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해 3월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개성공단에 대한 인력 및 장비의 출입을 차단하면서 우리 측 인력들이 억류상태에 놓인 바 있다.

이렇듯 개성공단은 상황에 따라 치명적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내놓을 수도 없다. 북한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북측에서는 4만 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폐쇄할 시 자칫 북한이 더욱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개성공단은 남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로서 ‘평화의 존’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때문에 정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평화존’ 개성공단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현지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을 볼모로 삼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생각하면 폐쇄를 고려해야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와중에 개성공단 마저 철수한다면 남북 유일한 소통창구가 막히게 되는 셈”이라며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입주업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방북금지가 장기화되는 것이다. 가공업체가 많은 개성공단의 특성상 하루라도 원·부자재와 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공장 가동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공단 방문이 막히면 생산라인을 갖고 있는 업체는 전부 타격을 입게 된다”며 “회사에 엄청난 손실”이라고 토로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될 경우,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한 입주업체들은 최고 70억원 한도 내에서 투자금의 9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금전적인 부담을 줄여주는 선에 그칠 뿐이다. 사업철수 등에 따른 종합적인 피해상황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기 어렵다. 이 때문에 입주기업들의 시름은 더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입주기업들은 행여 북한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 관계자는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섣부른 판단으로 개성공단을 철수하거나 하는 행동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우려가 없는 기업들도 행여 불똥이라도 튈세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수출기업들은 당장의 피해는 없지만, 환율변동 상황과 사태추이를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후폭풍에 대비한 ‘비상대책반’ 가동을 준비하는 등 대북리스크 비상 관리 경영에 나섰다. 사태가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더라도 북한의 2차 공격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면 글로벌 사업의 차질은 물론 외환·금융시장 충격, 수출 위축, 주가하락 등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은 24일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 북한 포격의 파장을 면밀히 따져볼 것을 지시하고 상황별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고하도록 했다.

삼성은 외환시장 수시 점검체제에 돌입했다. 환율리스크가 한층 커진 만큼 내년 경영시나리오에 대한 근본적 검토에 들어갔다. 삼성경제연구소와 계열사들은 환율이나 주가, 금리 등을 체크하며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수출 물량이 많은 현대·기아차그룹과 환율 변동에 민감한 SK그룹도 SK, SK케미칼 등 환리스크 부담을 안고 있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위험관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LG도 환리스크 동향을 면밀히 주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GS칼텍스, S-Oil, SK 등 정유업계의 경우, 폭발 위험이 있는 주유소들에 대한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해 5도 가운데 연평도에 진출해 있는 GS칼텍스 주유소는 현재까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백령도에 위치한 GS칼텍스와 S-Oil 주유소 역시 모두 현재까지 피해 상황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현재 연평도와 백령도 GS칼텍스 주유소는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모두 대피한 상태”라고 밝혔다. S-Oil 관계자도 “현재까지 백령도 주유소로부터 특별한 피해 보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SK 관계자 역시 “인천 정유 등 공장과 시설물 피해가 없는지 파악하며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일단 인천 정유는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어 현재까지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번 북한 리스크 잘 헤쳐 나가야

항공업계의 경우 예매 취소 등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해안 방향으로 운항하던 인천공항발 중국·유럽노선의 경우 내륙방향으로 우회해서 중국항로로 접어들 수 있도록 긴급 조치했다. 이와 함께 순익과 직결된 환율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기존 이용시간보다 약 10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되지만 안전운항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G20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한껏 들뜬 분위기에 연평도 사태가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더 이상 충격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재계는 과거 북한 리스크를 정부와 손을 모아 잘 극복해 왔던 것처럼 이번 북한 리스크도 꿋꿋이 헤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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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