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미국 특사로,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일본 특사로,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중국 특사로 내정했다. 이 대통령은 총 14개국에 특사를 보내 대통령의 외교 메시지를 전달하고,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여권에 따르면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호주 특사로, 박지원 의원은 폴란드 특사로 거론되고 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독일 특사, 추미애 의원은 영국 특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프랑스 특사,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유럽연합(EU) 특사로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특사단장인 김 전 위원장은 진보와 보수 진영을 넘나들며 활동한 대표적인 원로 정치인이다. 이 대통령과도 대선 기간인 지난 5월8일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하는 등 인연이 있다.
일본 특사단장인 정 전 총리도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내고 문재인정부 당시 46대 총리를 지낸 원로 정치인이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아 대선 승리를 도왔다. 중국 특사단장인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비롯 대부분의 특사단장과 특사들도 모두 정치인이다.
대통령실은 특사단의 성격에 대해 “12·3 계엄령 선포 이후 매우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이 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 급격히 안정을 되찾고 정상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각국에 알리고, 협력 관계를 정상적으로 해 나가자고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안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노력이 병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한 달 만에 특사 외교를 펼친 데 대해 많은 국민들이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사 파견 발표 후 지지율도 3%포인트 올랐다.
그런데 필자 눈에는 특사 파견이 정치 무대로 보였다. 특사 대부분이 유력 정치인이고 대선 때 이 대통령을 도왔던 인물들이다. 그런 만큼 특사단의 성격이 외교 무대가 아닌 과거 정치인을 소환하고 현역 정치인을 내세우는 정치 무대로 보일 수밖에 없다.
각 나라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가 있어 이들이 안정된 대한민국 새 정부의 모습을 알리면 되는데, 왜 이 대통령은 이들을 무시하고 본인과 가까운 정치인만 특사로 보내는 걸까? 외교 문제는 외교로 풀어야 하는데 정치로 풀려는 이 대통령의 판단에 대해 이해가 잘 안 된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특사 파견이 외교 채널을 다각화하는 차원이라고 말했지만, 필자는 검찰개혁에 이어 외교부개혁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암튼 22대 국회를 장악하고 국회 다수당의 힘으로 정권교체까지 이룬 민주당의 대표였던 이 대통령이 정치인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 대통령의 인선 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든 가운데 지금까지 이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대통령실 요직과 부처 장관에 현역 의원만 10명 이상을 기용했다. 내각만 놓고 봐도 김민석 총리 포함 8명(국세청장 제외)이 현역 의원이다. 김대중정부 초대 내각(10명)에 버금간다.
이는 이재명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만큼 국회에서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는 의원들을 기용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측근 등 당 중진 의원들을 개혁이 필요한 부처에 포진시켜 국정 과제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는 것 같다.
사법개혁을 담당할 법무·행안부에 중량감 있는 측근 의원을 배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성호 의원은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38년간 알고 지낸 최측근 인물로, 이 대통령 측근 그룹인 ‘7인회’ 좌장이기도 하다. 윤호중 의원은 민주당에서 사무총장, 원내대표, 비상대책위원장을 모두 지낸 ‘전략통’으로 지난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으로 활동했다.
물론 대통령실과 내각에 추진력이 강한 친명(친 이재명) 정치인 중심으로 인선해 집권 초기 강력한 국정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로 여겨져 이해가 된다. 그러나 외교까지 정치 무대로 만들어 정치인을 특사로 파견하는 건 모든 문제를 정치로 풀려는 이 대통령의 의지로 비쳐져 안타깝다.
국방부 장관에 안규백 의원을 내정한 것도 문민 장관을 세워 군을 개혁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로 보이지만, 남북 대치 상황에서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줄곧 대장·중장 출신이 맡아왔던 자리를 민간 정치인에게 넘기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구심도 든다. 안보는 개혁보다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안보만큼은 정치 무대로 변해선 절대 안 된다.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과 내각에 검찰 출신을 대거 기용해 검찰공화국이라는 비난을 받고 결국 국정 운영 실패로 정권을 내줬듯이, 이 대통령도 정치인 출신만 기용하다간 정치인 공화국이라는 오해를 받고 국정 운영도 실패할 수 있다.
외교 무대가 유력 정치인의 무대가 되는 건 좋지 않다. 그리고 검찰공화국보다 더 나쁜, 견제도 잘 받지 않는 정치인 공화국이 탄생하는 것은 더더욱 좋지 않다. 이 점을 이재명정부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