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왜 이재명 후보 옆에 김현종이 서 있는가

“나는 사람한테 충성한다. 그 사람이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몸을 던진다면 기꺼이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나는 아부·아첨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리더다.”

이 두 발언은 최근 한 유세장서 김현종 이재명 후보 외교·안보보좌관이 한 말이다. 두 발언만 보면 모순이고, 정치적 수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발화자가 김현종이기 때문이다.

김현종. 그는 어느 정치인의 측근으로 살아온 인물이 아니다. 실적으로 존재감을 입증한 실전형 외교 전략가다. 외교의 격전장서 살아 돌아온 진짜 협상가다. 정치적 수사나 미사여구가 아닌 조각처럼 잘라진 결과물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위 두 발언은 전투로 단련된 외교 전략가의 ‘선언’이자,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에게 던지는 '신뢰 보증서'다.

필자는 김현종하면 1000년 전 송·요 패권 싸움 틈바구니서 외교력을 발휘한 서희를 생각하게 된다. 서희는 송나라 편을 든 고려의 외교정책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송나라 편을 든다는 이유로 고려를 침략한 요나라도 피하지 않고 담판 외교를 통해 당당하게 극복했다.


바로 김현종이 미·중 패권 싸움 틈바구니서 미국엔 “중국의 장벽 때문에 어려움이 있으니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중국엔 현안 문제를 놓고 우리 입장을 당당하게 주장하면서 담판 외교전을 펼 수 있는 인물이다.

왜 지금 김현종인가? 그리고 왜 이재명 후보 옆에 그가 서 있는가? 이 칼럼은 이 두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프로토콜 외교’는 끝났다

우리는 지금 국제적으로 격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외교가 교과서적인 형식, 수사, 예절의 영역서 작동되는 시대는 끝났다. 특히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은 단지 국내 정세에 그치지 않고, 남북 관계의 단절, 미·중 패권 싸움,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규제 등 외적인 요소와 함께 대한민국 외교와 통상, 안보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변곡점’을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세계는 점점 더 공격적인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재집권 체제의 진입과 함께 안보는 물론 통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수출 규제 이후 사실상 외교를 정치적 흥정의 수단으로 전환했다. 중국은 반도체와 희토류를 무기로 삼고 있고, 유럽도 자국 보호주의 노선을 확고히 하고 있다. 세계는 실익 없는 우정을 포기했고, 이제는 ‘실속 있는 관계’만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외교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상투적인 발언, 의례적인 입장 표명, 도식화된 회담 등이 우리나라 외교의 전부다. 그래서 결과도 실익도 없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외교로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관리형 외교’ 시대 저물고 ‘돌파형 외교’ 전략가 필요


우리나라 외교의 한계는 ‘직업 외교관 체제’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 연·고대를 중심으로 한 관료 엘리트 집단. 그들은 자리를 물려주고 명분을 공유하며, 실속 없이 외교를 ‘자기들만의 리그’로 만들어왔다. 실패해도 책임지지 않고, 성과 없이도 생존한다. 스스로를 전문가라 자처하지만 정작 국가 이익엔 무관심하다.

이젠 외교가 ‘공장’처럼 돌아가야 하는 시대다. 24시간 가동되는 제조업처럼 외교는 통상에서 이익을 창출해야 하고, 그 이익이 국가 경제의 핵심이 돼 그것이 다시 국가 안보를 지탱하는 구조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외교는 더 이상 ‘관리의 영역’이 아니라 ‘돌파의 영역’이 돼야 한다.

실전 실익 외교 전략가 김현종

김현종은 한·미 FTA 협상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당시 국내의 극심한 반대 여론 속에서도 정면 돌파했다. 한·일 간 수출 갈등이 있었을 때도 기존 외교 관료들과 달리 “싸우지 않으면 밀린다”며 전략적 반격을 설계했다. 김현종의 외교 전략엔 ‘실익 추구’라는 명확한 방향성이 있다.

그는 통상 전문가로 출발했지만, 안보와 외교 전반을 총괄할 수 있는 입체적 감각을 가진 몇 안 되는 전략가 중 한 명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출신의 뉴욕주 변호사이자, 미국 대형 로펌의 실전 협상 경험자. 유엔 대사로서 다자외교를 수행했고, 삼성전자 사장으로 민간 경영 감각까지 갖췄다. 외교·안보·통상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오늘날, 그가 ‘외교 전략가’로 인정받는 이유다.

이재명·김현종, 다르지만 같은 ‘위기 돌파형 리더십’

이재명 후보는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상징되는 정치인이다. ‘양복 입은 글라디에이터’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에겐 승부사 기질이 있고, 필요하다면 몸을 던지는 용기가 있다. 김현종은 이재명 후보를 “말보다 실천이 먼저인 리더”라 평한다. 둘은 전혀 다른 궤적을 걸어왔지만, 공통점은 명확하다. 실용, 실전, 성과 지향. 등이 공통점이다.

이재명 후보가 국내 정치의 거친 전장을 돌파할 리더라면, 김현종은 외교의 포화 속에서 국가를 방어할 전술가다. 이 둘의 결합은 단순한 캠프의 기능 보완을 넘는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 위기 돌파형 리더십의 구조화’를 의미한다. 지금 이 둘이 대통령 후보와 외교·안보 보좌관으로 함께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다.

통상이 안보, 외교는 국가 경쟁력

이젠 단언할 수 있다. 수출 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는 ‘통상=생존’이고, ‘생존=안보’다. 자원은 수입해야 하고, 기술은 보호해야 하며, 안보 위기로 번질 수 있는 무역 분쟁은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외교는 생존 기술이자 국방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운이 좋다. 외교·안보·통상 3축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전략가 김현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재명 후보 곁에 서 있다. 이재명 후보가 대선서 승리해 새 정부가 탄생한다면 이 둘의 조합은 국가의 실질적 경쟁력을 키우고,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혜택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외교는 신뢰로 승부⋯김현종은 그 자체


국제 사회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성과와 행동만이 신뢰를 만든다. 상대 정상이 무시할 수 없는 국가 지도자, 그리고 그 지도자를 보좌하는 실전형 전략가. 그 구도가 갖춰져야 우리나라가 세계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

김현종은 더 이상 외교의 조연이 아니다. 그는 국가 전략의 중심에 서야 할 실전 지휘관이다. 그가 이재명 후보와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재명 리더십의 대외 신뢰도다.

김현종은 지금 “우리가 위대한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첫째, 독자적 외교를 할 수 있는 국가 ▲두 번째, 독자적 국방을 할 수 있는 국가 ▲세 번째, 기업하기 좋은 나라 ▲ 네 번째, 개천서 용이 나오는 나라 ▲다섯 번째, 사회 안전망을 갖춘 나라가 돼야 선진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돌파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돌파는 외교·안보·통상 전략가 김현종의 손끝에서 시작될 것이다.

김현종의 본격적인 외교·안보·통상 행보는 지난 9일 이재명 후보의 외교·안보보좌관 자격으로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을 만나면서부터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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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도 ‘전권 부여’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송 비대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구성할 것”이란 예상엔 여전히 힘을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끝났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새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송 비대위원장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비대위원으로는 ▲4선 박덕흠 의원 ▲재선 조은희 의원 ▲초선 김대식 의원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홍형선 경기 화성갑 당협위원장이 내정됐다. 이들은 모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로 구분된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반대했고, 공조수사본부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저지 집회에 참석했다. 친윤 일색 새 비대위 지난 2일엔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4선 중진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송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의 임명 사실을 밝혔다. 안 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일컬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 치유를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스를 들어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며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회 구성은 송 비대위원장의 원내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3년 인요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혁신위는 다양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 등 혁신안 2개만이 실행됐다. 혁신위엔 의결권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도 당 내외에서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일 뿐”이란 말을 들은 위원 3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렀다. 안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꼭 필요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비대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국민의힘이 김 전 비대위원장의 5대 개혁안을 무위로 돌린 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안 의원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친윤(친 윤석열)계도 아니고, 친한(친 한동훈)계도 아니다. 대선주자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당내 세력이 부실하다. 지난해 12월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시도 당시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이후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독자적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찬성 견해를 꾸준히 유지했고, 지난 1월엔 국민의힘에서 유일하게 내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됐던 지난 4월엔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도 오랫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준석 의원과 화해하고, AI와 미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친윤계로선 안 의원의 혁신적이면서도 당내 충돌을 자제하는 성향과 이미지를 당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안 의원에게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점도 매력적이었던 대목으로 해석된다. 어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인 의원은 친윤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혁신위원장 임명하고 권한 부여에 말끝 흐려 안 의원이 2회에 걸쳐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국민의힘에 불리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이어야 한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계보를 거느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만 해도 친윤계로선 상대하기 까다롭다. 세가 없는 안 의원이 당시와 같은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당내 세력이 없어서 ‘제2의 한동훈’이 되긴 어렵다. 지난달 27일부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6일 동안 숙식 농성을 잇던 국민의힘 5선 나경원 의원은 묘한 견제구를 던졌다. 나 의원은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는 것”이라며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라”는 말은 당내 다수인 친윤계의 요구 수렴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송 비대위원장조차도 안 의원과 혁신위에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이 특위 형식 기구를 만들면, 당의 의사 결정 체계 내서 운영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고려해 혁신위를 운용할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잘 마련되도록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의 의사결정 체계 내’라는 것이다. “안 의원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강하다. 이를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며, “당을 잘못 이끈 사람들에 대한 조치 등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걸 못하면, 혁신위는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등 혁신위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5대 개혁안 발표 당시에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으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로 급선회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했지만,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비대위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을 놓고 갈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만… 권한 없다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 설치 외에도 많은 구상을 밝혔다. 비대위 활동 방향으론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혁신안 추진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도약 ▲유능한 정책 전문 정당으로 발돋움 등을 제시했다. 또 정책 정당화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 ▲청년 자산 형성과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국민의힘이 추진할 3대 중점 정책도 밝혔다. 문제는 불과 한 달여 남짓 활동할 비대위임에도 너무 많은 구상을 밝혔단 것에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전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비대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거시적이고 분야도 넓다. 이렇게 되면 구상의 진정성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차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송 비대위원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누가 집단지도체제를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저는 얘기한 적 없고,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힘을 모아 강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서 힘의 결집을 방해하는 이야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는 친윤계 입장에선 매력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대표로 선출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최고위원을 맡아 함께 지도부에 입성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탈락한 후보들이 지도부서 배제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나 의원이다. 이들 중 나 의원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 치열하게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나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전당대회 출마 및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놓고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지층도 다르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이들 모두가 지도부에 모이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서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에서는 계파 간 밥그릇 싸움·진영 간 내홍·주도권 다툼을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협의와 조율이란 핑계로 시간만 허비하고 혁신은 실종되면서, 당이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친윤 중심 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쉼 없을 내부 투쟁 집단지도체제는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덩샤오핑·김일성 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선 파벌별로 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원들을 추천하고, 그들 중에서 당과 국가를 통치할 수장을 배출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정치투쟁이 매우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서 개혁도 지지부진해진다. 김일성은 파벌을 모두 숙청한 후 1인 지배체제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다른 파벌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휘하인 시자쥔으로만 정치국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도 게오르기 말렌코프·라브렌티 베리야 등 경쟁 상대를 몰아내 권력 독점을 완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당사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에서 지난 2016년 발생한 ‘옥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무성 전 대표가 대표직을 차지했고, 2위에 머물렀던 서청원 전 의원 등은 최고위원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였지만, 최고위원 중 상당수는 친박(친박근혜)계였다. 당시의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2004년 총선 패배 후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갈등은 외부에도 격렬하게 표출될 정도로 극심해졌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엔 대부분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곧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고, 친박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전 의원 등 비박계 핵심에 대한 공천을 거부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전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김 전 대표를 공천 과정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천을 의논했다. 현 수석도 직속상관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건너뛴 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이 위원장과 공천을 논의했다. ‘옥새 들고 나르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 위원장은 유 전 의원 등 비박계 인사 5명의 공천을 취소하고,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천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에 직인을 찍어야 할 김 전 대표는 날인을 거부하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을 대거 몰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대형 선거 홍보 현수막을 배경 삼아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제목을 따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패러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당 대표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서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으면 이 같은 내부투쟁은 쉼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옥새 들고 나르샤’는 불과 9년 전 일이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패배 후 지도 체제를 현재와 같은 단일지도체제로 바꿨다. 아픈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단지도체제라는 구상이 외부에 거론된 것에 대해선 “구 친윤계의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후보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 친윤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당권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어 서로 싸우게 하다 자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친윤계는 대선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와 옹립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당내 후보 경선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외부의 한덕수 전 총리를 데려와 새벽에 기습적으로 대선후보를 교체하려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당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대충 대선을 치르고, 대구·경북과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당만 유지하면 된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텃밭 지역구와 특정 이익집단의 지원만 있으면 계속 여의도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식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당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정치인 중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구 ▲후원회 ▲특정 이익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반영구적인 정치생명을 누린다. 현재 일본에서 이어지는 쌀값 상승 파동과 관련해, 농협·쌀 도매상 등과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형성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쌀을 사본 적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주신다. 팔아도 될 만큼 있다”는 망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엔 특정 집단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윤계가 집단지도체제를 배경 삼아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숙청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안 좋은 방식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 겉핥기 자민당 내부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총리를 배출하는 파벌만 달라져도 정권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비결이었다. 집단지도체제 구상엔 당의 혁신엔 무관심하고 자리 다툼에만 집착하는 일부 계파의 뻔한 속내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는 안 의원과 “혁신위와 안 의원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끝을 흐린 송 비대위원장이 크게 대비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