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쏘는 의문의 주파수 추적

라디오로 비밀지령 내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북한을 향해 쏘는 '난수방송'이 최근 재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난수방송은 정부나 행정기관이 현장에 있는 요원과 접촉하기 위해 암호를 전송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방송이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을 상대로 한 심리전 차원에서 이 방송이 재개된 것으로 보인다.

난수방송 또는 암호방송은 숫자나 문자, 단어 등의 난수를 조합해서 만든 암호를 전달하기 위해 특정 상대에게 비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출처불명의 방송이다. 행정기관이나 각종 정보기관이 ‘현장’에 있는 요원에게 암호화 한 내용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이 암호방송을 사용하고 있다.

요원에 암호 전송

그 숫자나 문자들을 해독하기 위한 올바른 키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론적으로 해독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방송들은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송수신자 간의 거리 관계로 원거리 전파가 가능한 단파대역을 이용한다.

방송마다 구체적인 차이가 있지만, 기본서식을 따른다. 일반 통신보다 특별한 점은 없고, 보낸 사람·받는 대상을 식별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보낼 내용을 각각의 형식에 맞춰 방송한다. 난수방송 전송은 정시 또는 30분에 시작하며 방송 도입 부분에는 송신자와 수신자를 나타내는 신호를 포함한다. 보낸 사람의 신호에는 숫자나 알파벳 코드 등의 특징적인 문구, 특별한 음악, 혹은 전자음이 이용된다.

시작 전 문장의 숫자 조수를 선언하는 방송도 있지만, 보통 전문(電文) 내용을 바로 열거한다. 그리고 각각의 조를 두 번씩 부르거나, 혹은 전문 내용을 모두 열거한 후 처음부터 다시 부른다. 전문의 길이는 다양하며 모든 방송 내용 길이가 같거나, 내용에 따라 변화하는 것도 있다. 일부 방송은 1개를 전송하는 동안 여러 전문을 보낸다. 때론 일기예보로 가장해 전문을 부르기도 한다.


암호방송 자체는 매우 일반적으로 각국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동북아에서는 대한민국(V24), 북한(V28), 중국(V26), 대만(V13), 일본이 현재도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 V24, M94 등에서의 알파벳 E는 영어, S는 슬라빅어, M은 모스코드, V는 그 밖의 언어를 의미한다.

북한의 유명한 난수방송인 ‘V15 방송’은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던 2000년 이후 방송되지 않고 있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방송하는 수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방송하는 수보다 월등히 많은데, 꿈도 희망도 없는 인터넷 체계 덕분에 북한에서는 이메일, 위성방송을 애용하고, 남한에서는 난수방송을 애용한다.

심리전 차원서 난수방송 재개 알려져
철저한 비밀유지…일반인 해독 불가

북한이 보낸 간첩이나, 남한의 북파공작원의 경우 난수해독문을 가지고 있으므로 매일, 매월 난수표에 관한 내용이 바뀐다. 따라서 정보기관원이 아닌 일반인은 암호학을 전공해도 해독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풀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기술자 목적으로 데려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정원과 정보사, 기무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을 담당하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유튜브 같은 사이트에서 이 난수방송을 녹음해서 올린 자료들이 몇몇 있다. 2010년 8월3일에 송출된 난수방송의 도입부는 이경숙의 ‘반갑습니다’, 2011년 7월1일 송출된 난수방송의 도입부는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2012년 4월3일에 송출된 난수방송 도입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그 뒤 2014년 3월9일 ‘Sultans of swing’, 2015년 5월22일 ‘Gloomy Sunday-original piano version’, 2015년 5월26일 ‘Nulla in mundo pax sincera - Vivaldi’, 2015년 6월5일 ‘모차르트 레퀴엠의 라크리모사 KV626’에 난수방송이 송출됐다.


이후 10일 뒤인 2015년 6월16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마지막으로 한국어 난수방송인 V24의 송신은 중단됐다. 더는 방송할 이유가 없어 중단했다는 말이 있다. 남한에서 북한에 마지막으로 간첩을 보낸 건 90년대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북한에 간첩을 보낸다 해도 북한의 특성상 이방인은 눈에 띄기 쉬워 발각될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2000년대 이후로 보낸 메시지는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난수방송에서의 목소리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데, V24는 남한의 난수방송 호출부호인 데다 송출 위치도 남한이 확실하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참고로 2012년 4월1일부로 목소리가 후자의 여성 목소리로 바뀌었다. 전자의 여성 목소리로는 그 이후로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계약기간이 끝났거나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6월16일 이후 중단됐던 난수방송이 다시 시작됐다. 2016년 2월16일 0시에 수신된 난수방송은 '백아연-이럴거면 그러지 말지' 중간에 송출됐다. 그 후 지난 2월17일 23시30분 '여자친구-오늘부터 우리는', 2016년 2월22일 0시0분 '장윤정-초혼'에 난수방송이 송출됐다. V24에 등장하는 곡들이 묘하게 누구를 저격하는 듯한 곡들이다.

노래에도 의미가

예로 들면 5290kHz에 나온 오늘부터 우리는 이라는 곡이라든가, 6215kHz에 나온 이럴거면 그러지 말지라든가, 사실 깜깜무소식이던 V24가 갑자기 방송을 시작한 이유는 개성공단, 북한의 4차 핵실험, 미사일, 그리고 김정은의 역량결집 지시등 최근 심각하게 악화된 남북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즉 V24가 방송을 다시 시작했다고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ktikti@ilyosisa.co.kr> 

 

[난수방송은?]

▲국가보안법에 걸린다?

난수방송은 여느 라디오방송이 그렇듯 공개 방송이다. 감청하든, 배포하든, 방송을 공개하든, 방송을 해독하든 합법적이다. 어차피 코드북이 없으면 난수방송을 못 풀기 때문. 더군다나 대남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도 배포해도 한국 정부에 의해 처벌 받지 않는다. 대신 난수방송을 찾아다니면서 듣는 것은 주위 사람이 들으면 간첩으로 오인받기 딱 좋기 때문에 귀찮은 일 생기기 싫으면 이어폰 끼고 듣자. 

▲일반인도 해석?

절대 불가능하다. 죽었다 깨어나도 진짜 불가능하다. 난수방송에서 등장하는 난수들은 대부분 무언가 규칙성이 있는 암호가 아닌 코드북 암호이기 때문에, 그 난수에 맞는 코드북을 갖고있지 않는 이상 규칙도 없으므로 절대로 해석할 수 없다. 


▲내용은 없다?

V24는 약 1978년 경부터 방송해온 뿌리깊은 방송이다. 당시에는 정말 북파공작원이 투입해서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까지 방송하고 있는 V24가 의문점이라는 얘기다. V24가 다시 재개한 2016년 2월 경은 남북관계가 상당히 안좋았던 시기였는데,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V24의 전문은 사실 아무 내용이 없었고 북파공작원이 더이상 없기 때문에 그저 대북심리전 방송으로 송신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굳이 북파공작원이 아니라도 해외쪽 공작원들을 위해 방송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일 수도 있다. 결국 관계자 말고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태>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