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2008 국감 현장’ ②재계의 야릇한 분위기

2008 국정감사 시즌이다. 10월6일부터 20일간 이어질 국감을 앞두고 여의도는 지금 ‘긴장 모드’다. 여야는 이미 국감 체제로 전환된 지 오래다. 상임위별로 증인 채택 등을 놓고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국감 이슈는 단연 국감장에 누가 불려올까다. 그중에서도 기업 CEO, 특히 재벌그룹 총수의 출석은 초미의 관심사다. 각기 다른 예민한 사안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기업들이 10월만 다가오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긴장은커녕 여유마저 흐른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국감을 앞둔 재계 분위기를 살펴봤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국감장서 통할까

10월만 되면 재계는 긴장한다. 코앞에 닥친 국정감사 때문이다. 해마다 단골 표적이 됐던 재계는 올해도 ‘뜨거운 감자’로 분류된다.
특히 검찰의 대대적 사정 기류에 휩싸인 기업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현재로선 수사 선상에 오른 기업들이 국감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MB정권 출범 이후부터 ‘대기업 비리척결’을 목표로 대대적인 수사와 보이지 않는 내사를 벌이고 있다. 당장 얘기가 나온 기업만 수십 곳에 달한다.
‘P그룹, K그룹, I그룹, H그룹, D그룹, A그룹, T사, K사….’
또 LG가 구본호, 두산가 박중원씨, 한국도자기가 김영집, 현대가 정일선씨 등 재벌가 로열패밀리들도 검찰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여기저기서 첩보를 수집한 검찰은 내사를 거쳐 표적에 바짝 다가선 상황이다. 검찰 안팎에서 거론되는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간 기업으로선 국감이란 또 한 번의 파고에 맞닥트린 셈이다.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모 그룹 관계자는 “안 그래도 사정기관 내사로 초긴장 상태인데, 국감까지 겹쳐서 죽을 맛”이라며 “수사가 완전 종결되지도 않았는데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국감에서 또다시 집요한 추궁에 시달리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도 “정·관계뿐만 아니라 재계도 ‘국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오너의 신변에 위기감이 감지, 그룹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다르다. 여야는 각 상임위별로 증인 채택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지만, 재계는 예외인 분위기다. 여야를 막론하고 ‘호출’은 물론 쟁점 자체를 꺼리는 눈치까지 엿보인다. 정치권과 재계의 서먹서먹한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나라당은 MB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정책을 그대로 국감에 반영할 태세다. ‘친기업’기류가 한나라당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 자칫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MB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본격적인 비즈니스 프렌들리 입법 활동에 나설 것”이라며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등을 이끌어 내야 경기를 살릴 수 있는 만큼 금융개혁, 기업 투자유인, 감세법안 처리 등을 정기국회 중점 과제로 삼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정기관에 오르내리는 기업을 괜히 건드렸다가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 검찰의 타깃 대부분이 전 정권이나 전전 정권에서 특혜설이 나돈 기업들이다. 이른바 ‘친노 기업’을 정조준한 형국. ‘친 DJ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검찰 내부에서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이 주축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10년 동안 불거진 각종 비리와 특혜 의혹 정보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엔 L씨, K씨 등 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국감을 가급적 자제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다만 정책감사가 목적이라면 실무임원을 부르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등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 범위에서 검토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국감 시즌을 맞았지만 재계의 공기도 예전 같지 않다. 과거 국감 시즌만 되면 기업의 총수나 CEO 등 관련 인사들의 증인 채택을 두고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과 달리 차분한 모습이다. 때마다 국감을 앞두고 정재계에 나돌던 여의도발 재벌그룹 총수 살생부도 보이지 않는다.
재계가 이렇게 여유로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재벌그룹과 재벌가를 향한 검찰의 수사가 MB취임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벌그룹이 검찰 수사와 국감에 자신만만한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이 친노 기업을 중심으로 무차별적 저인망식 수사에 나서고 있지만 변죽만 울리고 있다”며 “수사가 계속 확대되면서 ‘기획사정’ ‘보복 수사’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이번 국감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민경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란 게 정부와 여야의 이구동성이다. 기업 대신 경제부처의 고초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발 더나가 정치권은 ‘기업 잡는’걸림돌 제거에 나설 수도 있다. 과도한 금융규제 등이 그것이다.
대기업의 법인세 인하 등 규제 완화와 감세를 약속한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에서 쟁점이 될 부분은 과거 10년 간 반 시장, 반 기업 법안이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여부와 좌편향 법안의 개선”이라고 밝혔다. 같은당 김용태 의원도 “우리의 금융규제는 미국이 아닌 일본이나 유럽과 비교해도 과도하다”며 “금융선진화 방안은 미국 스탠더드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한국의 금융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것”고 강조했다.
특히 노회찬·심상정·임종인·김현미 전 의원 등이 이번 국감에서 빠진 것도 재계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4·9 총선에서 낙선한 이들은 17대 국회 때 ‘기업 저격수’로 명성을 날렸다. 재계에 대한 국감이 ‘김빠진 맥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민노당 관계자는 “재계를 밀고 당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무슨 국감에서 쓴소리를 할 수 있겠냐”며 “증인 신청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초선의원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이번 국감이 초선의원들에게 처음인 점을 감안하면 굵직한 치적을 만들기 위해
 


총수 부르나” 여야 상임위 기업별 쟁점 논의 ‘실종’

여권, 친기업 정책 반영… 야권, “긁어 부스럼 될라”
재계가 느긋한 이유
검찰 수사 ‘지지부진’
국감, 서민경제에 초점
기업 저격수’부재

‘폭로형태’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차기 확고한 기반을 만드는 데는 사회적 이슈 양성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재계를 관리 감독하는 사정기관의 ‘컨트롤타워’격인 정무위원회를 중심으로 몇몇 초선의원들은 기업들의 숨은 문제점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설사 총수나 CEO 등 기업 인사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증인석에 앉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외출장이나 건강상의 사유로 불출석할 게 뻔하다 관측이다. 이는 기업인들이 국감 출석을 피하기 위해 이용했던 전형적인 수법. 잠시 자리를 피한 뒤 상황이 정리된 후 돌아올 요량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국감에 불려갈 기업 인사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 한결 홀가분한 입장”이라며 “여야 협상 과정에서 기업인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하더라도 굵직한 인사들은 매번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인물이고, 현재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어 해당 기업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해볼 테면 해봐라’식의 재계라도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 ‘국감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안테나를 여의도에 맞추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저마다 정보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
국내 굴지의 기업마다 직원을 붙여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각 의원들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원실 탐색은 기본. 의원 측 진영의 숨은 실세들을 찾아내기 위한 정보전도 뜨겁다. 흡사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을 방불케 한다. 대기업이 검찰·경찰·국정원 등 수사·정보 인력을 대거 영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그룹들의 힘은 안테나의 높이, 즉 정보력에서 비롯된다”며 “국감 전부터 마무리 될 때까지 사전 정보수집을 통해 국감의 표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별도로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재계는 온갖 ‘괴담’으로 떠들썩했다. 10월로 접어들었지만 기업들은 아직 상황을 주시하며 바짝 엎드려 있다. ‘9월 괴담’이 국감을 타고 10월까지 이어질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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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