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4)무모한 시도

전문 암살자도 아닌데 성공할까?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아울러 암살을 시도한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 참석했을 때가 적기라 판단했고 아마도 국가 기념일 등 경축 행사에서 일을 도모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경축행사는 삼일절이 될 터였다.

하여 신영수 부장에게 부탁했던 일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학수고대했던 터였는데 급기야 오늘 전화가 걸려왔다. 동일이 문석원의 얼굴을 또한 국경일 행사를 주로 개최하는 국립극장을 떠올렸다.

문석원처럼 젊고 무모한 사람이 그리고 전문 암살자가 아닌 이상에 암살 장소는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전에 박 실장과 신 부장에게 설명했었던 대로 방법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동일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신년 초라 그런지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한산하게 느껴졌다. 아니 본국이 아닌 이국의 날씨가 우중충해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처음 문석원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아울러 아마추어의 일시적인 객기를 잘만 활용하면 자신의 주도로 이루어졌던 윤대중 납치사건의 여파를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다 판단했다.


그 판단에 따라 상부에 보고가 이루어졌고 역시 현 실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또 그 방편을 알고 있는 윗선은 선선히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부장의 약속대로 조총련 측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창가를 서성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문석원의 얼굴을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가 소소한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얼추 시간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오사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횟집에 들어서자 세기문화사 사장을 언급했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한 룸으로 이동했다. 안내원이 문을 열자 마치 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곧바로 문이 닫히자 상대방이 명함을 건넸다.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세기문화사 차주선이라 간단히 쓰여 있었다. 동일도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정 팀장께서 혹여 회를 좋아하시지 않는 건 아닌지요?”

“음식 가리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그저 씹히면 뭐든 맛있게 먹습니다.”

간단한 대화가 끝나자 동일이 긴장을 풀고 다시 한 번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차주선도 자신의 직위, 조총련 중앙위원 직책을 맡고 있음을 밝혔다.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정보를 함께 공유해야겠지요?”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차 사장께서 주도적으로 임해주셔야 할 일입니다. 어차피 제 활동은 한국 내에 치중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문석원과 관련해서입니다.”

차주선이 곧바로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차 사장께서는 문석원에 대해 알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이미 조총련 쪽에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일전에 그 친구를 직접 만나본 적 있습니다.”

문석원에 대한 소문이야 그렇다고 해도 이미 직접 만나보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뚫어지게 응시하다 가볍게 혀를 찼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동안 나름대로 문석원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부분을 실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총련 오사카의 이코노 지부 정치부장으로 이호룡이란 작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일전에 북한의 정치국 지도원과 함께 만나 식사한 적 있습니다. 물론 일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연되는 이야기를 듣자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다 공언하고 돌아다니는 그 친구를 차주선이 놓칠 리 만무했다. 동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서도 긴가민가…불안감 고조
다가오는 거사일, 초조해진 암살단

“이호룡이란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번 일에 있어 또 다른 문석원으로 간주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그저 천방지축으로 나대는 사람으로 문석원과 조금도 차이나지 않는다 보시면 무방할 것입니다.”

동일이 그 의미를 새기고 가볍게 혀를 찼다.

“아울러 문석원이 지금은 이호룡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나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할 듯합니다.”

“교체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교체라기보다는…”

차주선이 말하다 말고 표정을 밝게 했다.

“결국 차 사장께서 그 일을 지휘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그리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습니까?”

“어차피 이번 일이 저나 정 팀장에게 일본에서의 마지막 임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멋지게 해결해야지요.”  

동일이 그 말의 의미를 새기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중에 주문한 음식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에 차려지는 음식을 바라보며 차주선이 음식들에 대한 품평회를 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동일 역시 맞장구를 쳐주었다. 물론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였다.

“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문석원이 국경일에 한국내로 잠입하여 권총으로 암살을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상이 차려지고 종업원이 물러가자 동일이 말문을 열었다.

“정 팀장의 분석이 정확합니다. 문석원 본인 말에 의하면 권총으로 시도하겠다는 분명한 암시를 준 바 있습니다. 아니 이제 제가 기획하게 되는 일인 바 반드시 그리 되도록 일을 이끌어가야겠지요.”

“부연하여 말씀드리자면 문석원이 적기로 잡고 있는 때가 금년 삼일절 행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 삼일절 행사 시는 곤란합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근처는커녕 행사장에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차주선이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는지 상 위에 음식들로 시선을 주었다.

“우리는 문석원에게 확실한 잔칫상을 차려주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실리만 취하겠다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살피면 금번 삼일절 행사에는 잔치판조차 열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박 실장의 물 샐 틈 없는 경호 관례를 살피면 당연히 그리 되겠지요. 하면?”

“광복절로 잡아주십시오.”

“상황을 조성할 수 있겠습니까?”

동일이 답하지 않고 술병을 들었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차주선이 잔을 들자 동일이 술을 따랐다.

“하여 이번 삼일절 행사를 빌미로 삼으려 합니다. 그를 이용하여 광복절 행사에 문석원이 참석할 수 있는 여지를 조성하려 합니다.”

차주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일의 잔을 채워주었다.

“차 사장께 한 가지 더 부탁드리려 합니다.”

함께 잔을 비워내고 서로의 잔이 채워지자 동일이 입을 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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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