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문제 긴급진단] 대한민국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

늙기도 서러운데…쪼들리고 병들고 외로워서 못 살겠네!


몇 해 전부터 노인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1960년 이후 국민소득 수준의 향상과 의학 발달, 보건위생의 개선 등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990년 214만4000명에서 2009년 526만7000명으로 두 배를 훌쩍 뛰어넘어 전인구의 10.6%에 이르게 됐다. 사회는 점점 고령화되고 있지만 이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은 노인들의 3고(三苦)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노인의 3대 문제로 빈곤·질병·고독을 들 수 있는데, ‘빈곤’은 노인 일자리문제, ‘질병’은 노인 성병 증가, ‘고독’은 학대로 인한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노인으로 살아간다는 그 쓸쓸함에 대해 취재했다.

노인 고용 하락, 일하는 노인 그나마 비정규직 
자식 눈치 보느라 하루 종일 종묘 주변 ‘빙그르’


노인문제를 고민하는 전문가들은 노인문제 해결에 있어 ‘노인 일자리 창출’을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과제로 꼽는다. 존경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할 노인들이 눈치를 보고 괄시 속에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 무능력을 들 수 있고, 혼자 사는 노인 역시 경제난에 고통 받는 이유에서다.

노인 일자리 창출
노인문제 해결의 기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55~64세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율은 선진국과 달리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50대 이상 중·고령자의 고용 현황은 다른 연령대보다 열악해 높은 노인 빈곤율로 연결되고 있다.

지난 1일 고용노동부가 분석해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지표에 따르면 국내 55~64세 고령자의 고용률은 1994년 62.9%에서 2009년 60.4%로 하락한 반면 OECD 평균치는 46.1%에서 54.5%로 상승했다.

국내 55~64세 경제활동 참가율도 1994년 63.3%에서 지난해 61.8%로 낮아졌으나 OECD 평균치는 48.7%에서 57.8%로 높아졌다.
OECD 평균치보다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고령자의 고용률과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는 선진국과는 달리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문가들 역시 국내 고령자 고용지표가 OECD 평균치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이유는 일종의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OECD 회원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 사회보장제도는 턱없이 미흡하고, 노인인구 가운데 농림어업 종사자와 자영업주 비중이 높아 이들이 실업자로 전락할 확률이 낮은 이유에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에 달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오는 2018년에는 노인인구 비중이 14%에 달하는 ‘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어 2026년에는 그 비중이 20%에 이르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8년, 고령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바뀌는데 불과 8년밖에 걸리지 않는 셈이다.

국내 노인 고용의 문제는 또 있다. 그들의 고용 질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고용부가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 취업자 2명 중 1명(48.2%) 정도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제적인 이유로 짧은 시간을 일한 노동자 중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불완전 취업자’ 비율도 갈수록 늘고 있으며,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비임금근로자 비율 역시 48.6%로 모든 연령대 평균치 30%보다 높다.

노인 일자리는 단지 생계나 용돈벌이 욕구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활동을 하다보면 정신적 안정과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되고, 집안의 어른으로서 가정 내 지위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매우 빠른 고령화 속도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하기 때문에 노인 일자리 창출은 고령화 사회의 어떤 당면과제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종묘공원은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노인들의 유일한 해방구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물론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들 역시 자식들의 눈치와 괄시를 피해 종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노년층에게 이곳은 ‘마지막 남은 사교 공간’인 셈이다. 2007년 탑골공원이 사적지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탑골공원으로 나오는 노인들이 많았지만 사적지 지정 이후 정부와 경찰의 단속·관리가 심해지면서 노인 대다수가 종묘공원으로 옮겨왔다.

종묘공원을 찾는 노인들의 하루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롭다. 대부분 이른 아침 집을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종묘공원에 나온다. 벤치에 앉아서 햇볕을 쬐거나 신문을 읽으면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때가 다가오면 인근 무료급식소를 찾아 공짜 점심을 얻어먹는다. 그리고는 다시 종묘공원으로 돌아와 벤치를 채우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운동 삼아 산책을 한다.

자식 눈치만 ‘슬슬’
노인 학대 자살로 이어져

음주를 좋아하는 노인들은 잔 단위로 판매하는 막걸리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여느 젊은이들이 그렇듯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어르신도 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돌아간 집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자식들의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닌 탓에 집에 돌아가면 오히려 더 외롭고 고독하다는 노인이 많다. 이런 심리적 불안감이 노인자살로 이어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노인자살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노인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얻었다. 지난 10년 사이 노인 자살이 3배나 늘었고, 65세 이상 자살률이 65세 미만 자살률보다 4배가 높다.

지난해 통계청의 ‘2009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노인 자살의 가장 큰 이유는 질환·장애(40.8%)였고, 29.3%는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외로움과 가정불화가 각각 14.2%, 10.4%를 차지했으며, 이성문제(0.7%)와 직장문제(0.6%)가 뒤를 이었다.

노인 학대 자살로 이어져 지난해 192명 극단적 선택
노인 50.2% 성생활 영위…3년간 성병 2만 건 급증


그런가 하면 노인학대가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노인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현희 의원에게 제출한 ‘노인 학대 상담·신고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노인 학대 상담건수는 4만6885건, 신고건수는 2674건으로 집계됐다.

노인 학대 유형은 ‘정서적 학대’가 1853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적 학대’가 1127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도 방임(806건), 경제적 학대(554건), 자기방임(129건) 등의 유형이 있었다.


전 의원은 “노인 학대 행위가 노인자살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1세 이상 노인자살자 4614명 중 192명이 ‘학대·폭력문제’로 자살했다”면서 “정부는 노인 학대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노인 학대 예방 및 근절을 위한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문제도 노인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 최근 노인의 성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망측하다’고만 여겼던 어르신들조차 56.2%가 성생활의 중요성에 동감하고 있으며, 26.4%의 노인은 월 1~2회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석대학교 나임순 교수는 지난 1일 2009년 보건복지부 자료와 2008년 노인실태보고서 등을 인용해 이같이 밝혔다.
나 교수의 발표내용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들의 성생활 빈도를 조사한 결과 50.2%가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월 1~2회’ 성생활을 한다고 답한 노인이 26.4%로 가장 많았다. 이어 ‘3개월에 1~2회’ 11.3%, ‘6개월에 1~2회’ 7% 순이었고, ‘주 1회 이상’ 성생활을 한다는 노인도 5.6%를 차지했다.

스트레스 해소, 부부금실 회복 등 노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점들이 부각되면서 실제 노부부들의 성생활이 활기를 띠고 있다.
반면, 배우자가 없는 노인의 경우 잘못된 경로로 성생활을 하게 되면서 성병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 노인 성병 증가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노인들의 아지트 종묘공원에는 일명 ‘박카스 아줌마’가 존재한다. 박카스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곳을 찾는 할아버지들에게 돈을 받고 성관계를 맺는다. 아줌마의 나이대별로 가격 또한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근 여인숙이나 박카스 아줌마의 거주지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
노인에게도 성욕이 있기에 무턱대고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최근 3년 사이 65세 이상 노인 성병이 2만 건 이상 급증했다는 사실은 이를 간과할 수 없게 만든다.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들의 성병 진료 건수는 2007년 4만4000건에서 2009년 6만4000건으로 2만여 건(43%) 증가했다. 또 전체 성병 진료 중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7년 4.0%에서 2010년 3월 통계 5.5%로 증가했다.

2007년부터 2010년 10월까지 누적된 주요 노인 성병을 질환별로 살펴보면 요도염 및 요도 증후군이 10만3683건으로 다수를 차지했고, 단순 헤르페스 감염이 5만8797건으로 뒤를 이었다. 단일 병종으로는 클라미디아성 질환이 1인당 3건으로 가장 많았고, 1인당 진료비는 만기 매독이 1만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노인도 성문제 고민
3년간 성병 2만건 급증

이와 관련 손 의원은 “지금까지 터부시 되어 왔던 노년기 성문제가 이제 개인적 차원을 벗어나 사회적 문제화 하고 있다”면서 “인간의 기본욕구인 성은 노년의 삶의 질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므로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기 전에 시급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급속히 빨라지는 고령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을 위한 사회·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가운데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사회, 나아가 정부의 대책마련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감히 묻는다. “당신의 아버지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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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