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층 두터운 ‘현대판 요정’에선 무슨 일이…

화끈 언니들 술시중·밥시중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시대를 불문하고 유흥가의 밤은 항상 뜨겁다. 그 중에서도 유독 유행과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업소가 바로 ‘요정’이다. 강남 룸살롱과 비교했을 때 비용이 저렴해 이곳을 찾는 남성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가 하면,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어 색다른 업소가 오픈을 해도 끄떡없다.
 
‘요정’이라는 이름 때문에 방문을 꺼렸던 젊은 남성 손님도 많이 늘었다. 식사, 음주, 가무를 한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요정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고, 학식 있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여성 도우미들은 다른 업소 도우미들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묘한 매력을 풍긴다. <일요시사>는 요정 마니아의 입을 통해 현대판 섹시 요정에 대해 들어봤다.


40년 넘는 역사 자랑하는 D요정 손님들 발걸음 여전
외국인 반응 좋아 바이어 식사 대접도 ‘요정’에서 뚝딱


자칭 유흥 마니아 최아무개(39)는 최근 놀라운 경험을 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요정’에 방문, 특별한 추억(?)을 남긴 것. 색다른 전략으로 손님몰이에 나선 강남 룸살롱으로 가자던 최씨의 친구들도 꽤나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100% 예약제 운영
대표가 직접 손님맞이

최씨가 요정을 찾은 것은 지난 8월 초.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 회포를 풀 요량에서였다. 나름 유흥 마니아인 최씨는 친구들에게 ‘요정’ 방문을 제안했고, 내키지 않아했던 친구들을 겨우 설득해 국내 현존하는 요정 중 최고라고 소문난 서울 종로구 교북동 D요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으로만 보던 으리으리한 한옥에 넋이 나간 최씨 일행을 반긴 것은 D요정의 대표였다.

대표가 직접 고객을 맞는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젠틀하고 깔끔한 인상의 사장은 최씨 일행을 편안하게 했다고. 대표의 안내에 따라 방에 들어서니 방을 휘감은 병풍과 잘 차려진 술상이 최씨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는 하지 말고 오라”던 대표의 말이 그제야 이해됐다. 임금님 밥상을 옮겨놓은 듯 30여가지의 궁중요리가 차려져 있었던 것.

온돌식 룸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도우미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한복을 입은 아가씨들은 큰절로 첫 인사를 한 뒤 최씨 일행 옆자리에 하나 둘 착석했다. 최씨는 “‘요정’의 경우 도우미들 외모 수준이 떨어진다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고 전했다. 한복과 어울리는 단아한 외모에 청순함까지 갖춘 아가씨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설명이다.

신선로, 육회, 생선회 등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음식은 도우미들이 직접 먹여줘 젓가락을 들 필요도 없었다. 편안한 분위기에 먹여주고 닦아주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 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인 음주가 시작됐다.  ‘요정’에서는 손님 인원수대로 양주가 제공되는데 일반적으로 딤플, 윈저, 임페리얼, 스카치블루, 렌슬렛, 블루하우스 등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 손님이 원하는 술을 선택할 수 있다.

또 맥주와 음료, 담배는 손님이 원하는 만큼 무료로 무한리필 된다. ‘요정’의 여성 도우미들은 일반적인 룸살롱이나 주점의 도우미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12시면 마감을 하는 ‘요정’의 특성상 다음날 생활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아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 80%를 차지하고 있고, 외국인 접대 손님이 많아 외국어에 능통한 아가씨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식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외국인을 접대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설명이다.

최씨는 “한창 술을 먹고 취기가 돌면서 도우미들과도 제법 가까워졌고, 그때 도우미들이 게임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게임을 시작하기 전 남성들의 바지를 벗기더니 자신들이 한복 속에 입고 있던 고쟁이를 벗어 입혔다는 것. 밝은 조명 탓에 약간 민망하긴 했지만 눈치 빠른 도우미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조명을 어둡게 낮추고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벌칙은 옷 벗기가 일반적이다.

밥상 시중을 들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술자리 분위기를 주도하는 도우미들 덕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는 설명이다. ‘요정’의 또 다른 특징은 노래방 기계 대신 사람이 직접 연주하는 밴드가 있다는 점이다. 10만원의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하긴 하지만 색다른 맛이 있다. 또 ‘요정’에서만 볼 수 있는 국악밴드도 준비되어 있다. 외국인 바이어 접대나 사업상 접대가 필요해 ‘요정’을 찾는 남성들은 국악밴드를 불러 색다른 흥을 즐기기도 한다.

친구들과 함께 요정을 찾은 최씨는 국악밴드 대신 일반 밴드를 불러 가무를 더했다.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간간히 도우미들의 치마 속을 터치하기도 하는데 거부감 없이 잘 받아주는 것 또한 요정의 묘미라고. 분위기에 취해 몸을 흔들다 보면 땀이 나기 마련인데 이때 요정의 여성 도우미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금세 달려나가 수건에 물을 적셔와 일일이 손님들의 몸을 닦아준다. 최씨는 그 순간을 빌어 “그때는 신선도 부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요정에서는 3~4시간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술자리가 이어진다. 식사를 겸하고 밴드를 불러 즐기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최씨는 요정의 장점으로 도우미들을 꼽았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자리를 옮겨가며 손님을 접대하는 타 유흥업소와는 달리 요정의 도우미들은 하루에 한 테이블만 책임지면 된다. 3~4시간 동안 자리가 이어지고 12시면 마감을 하기 때문에 몸 버려가며 속 버려가며 진상 손님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 이 때문에 손님들의 만족감도 커진다는 것.

한국식 맞춤 서비스
손님은 왕! 제대로 실현

최씨에 따르면 요정은 마무리에 있어서도 일반 유흥업소와 차이가 있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무렵 대표가 룸에 들어와 도우미들을 내보내고 마무리에 대해 묻는다. 최씨는 “요정을 찾았을 때 마무리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친구들의 성화에 대표의 물음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고 말했다.

대표가 방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씨 일행과 함께 했던 도우미들은 한복을 벗고 일반복장으로 다시 룸에 들어왔다. 최씨는 나머지 부분은 상상에 맡기겠다며 말을 멈췄다. 이어 요정 체험에 대해 한마디로 일축했다. “식사에서 음주, 가무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고, 손님을 왕으로 생각하는 서비스 덕에 조선시대 임금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요정은 우리나라 전통 기생집이었다. 한식으로 술상을 차려놓고 가야금이나 북, 장구 등을 연주하며 여성들이 술시중을 들었다.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한때 일부 유명한 요정의 경우, 정치적인 중대사항이 ‘요정’에서 결정되기도 했다. 때문에 ‘요정 정치’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서울에서 제일 먼저 문을 연 요정으로는 M요정을 비롯해 K, S요정 등이 있었고 당시에는 기업가, 정치인, 상인들이 주로 이용했다.

이때 손님들에게 내놓은 술은 대부분 청주였으며 접대를 하던 여인들은 기생으로 불렸다. 5·16 군사정변 전까지만 해도 고급 비밀요정이 서울 도처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요정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만 골라 은밀히 운영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돈 많은 기업인들이 사업 관계로 교제하기 위해 만나 즐기는 장소 역할을 했다. 당시 운영되던 비밀요정은 주인마담과 사전에 내통한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1인당 34만원, 궁중요리·양주·언니들까지 풀코스로 ‘샤라락’
요정에서는 손님이 왕!… 젓가락 까딱 안 해도 알아서 ‘척척’


현재도 정통 요정들이 비밀스럽게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스타일의 요정이 속속 등장해 현재 종로와 강남에도 몇몇의 비즈니스 요정이 운영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 요정에서는 전통주보다는 양주를 제공하고, 도우미 팁을 제외하면 손님 한 사람당 20~25만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하게 운영되고 있다. 변치 않은 점이 있다면 도우미들이 한복을 입고 손님을 접대한다는 것.

다른 점이 있다면 현대판 요정에서는 예전처럼 가야금을 뜯고 창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현대식으로 밴드를 준비해 손님들의 흥을 돋운다. 또 고급 술집을 이용할 때는 보통 식사를 거친 후 2차로 장소를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요정은 식사와 술, 음주, 가무를 모두 한 자리에서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요정에서 손님을 맞는 도우미들은 대부분 조용하고 다소곳한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님이 말을 걸기 전에는 먼저 말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고 음주가무가 시작되면 색다른 서비스로 손님들을 공략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현대판 요정은 자정에 영업을 종료하는 것이 상례다. 때문에 저녁 6~7시 정도에 식사를 하지 않고 가는 것이 좋다.

또 요정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당일 이용을 원한다면 오후 1~2시 이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30여 가지의 궁중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에서다. 손님은 대체적으로 교양있는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편이고, 요즘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남성들도 요정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