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소라넷 아류사이트 대해부

‘경찰 알까’ 제2·3의 소라넷 널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남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소라넷. 혈기왕성한 한국남자라면 호기심에라도 한번쯤은 소라넷 사이트의 문을 두드려봤을 것이다. 최근 소라넷 폐지에 관련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선 소라넷만을 폐지시켜도 풍선효과처럼 아류싸이트가 넘쳐날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라넷의 뒤를 이을 퇴폐사이트들에 대해 집중 조명해본다.

 

소라넷은 몰래카메라 등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음란물을 올려 지적을 받아왔으며 올해 초 워터파크 샤워실 몰카가 인터넷에서 퍼지며 사생활 침해에 대한 여론이 증폭됐다. 

‘때는 이때다’
음란광 대이동
 

지난달 2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의 소라넷의 불법 음란 게시물의 정도가 심각해 이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강신명 경찰청장은 “수사에 착수했다”며 “사이트 폐쇄가 긍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라넷은 지난 1990년대 후반 생긴 이후 지금까지 16년 동안 100만명 이상의 회원을 유지하고 있는 국내 최대 온라인 음란물 사이트다. 그동안 소라넷은 폐쇄와 재운영을 반복하며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게시물을 보면 단순 음란물 수준에 그치지 않고 강력범죄 수준의 사진까지 게시돼 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특히 주취 상태로 의식이 없는 여성의 나체와 얼굴을 공개한 게시물이나 여성의 주요 부위에 라이터, 식칼 등을 삽입한 게시물까지 상상을 초월한다. 

소라넷을 매개로 벌어지는 범죄 중 하나는 미성년 스와핑, 미성년 성매매 등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벌어지는 각종 성범죄다. 15살도 채 되지 않는 여중생에게 소라넷에서 알게된 남성과 상대방을 바꿔 성관계를 맺는 속칭 ‘스와핑’을 하게 하기도 하고, 사이트를 이용해 성매매를 알선하기도 한다. 

소라넷을 통해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범죄는 바로 ‘몰카’다. 실제 소라넷에는 일반인의 다리 등 특정부위를 촬영한 사진, 여자친구나 부인 등의 나체를 촬영한 사진, 심지어는 일반인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까지도 게시되고 있다. 

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 9월에 진행한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회는 소라넷이 생긴 1990년부터 지금까지 200여 회 이상 사이트를 차단한 바 있다. 

몰카·강간모의 논란…사실상 퇴출 수순
해외 서버 둔탓에 실직적인 단속 어려워

회의당시 통신심의위원회는 “소라넷 사이트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소라넷에 대해 지속적으로 접속을 차단했으나 위원회가 접속차단을 할 때마다 URL을 바꿔가면서 새로운 URL에서 활동한다”며 소위원회에 소라넷 IP 자체의 차단을 요청했다. 

요청 결과 소라넷의 IP는 차단됐지만 소라넷은 새로운 IP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규제당국이 이처럼 사이트 차단을 요청하면 운영자는 또 다른 주소로 같은 사이트를 운영하고 트위터 등 SNS에서 해당 주소를 공유했다. 소라넷의 경우 주소를 공유하는 트위터 계정이 따로 운영될 정도였다. 

강 청장의 소라넷 폐쇄 가능성 언급에 대해 소라넷 회원들은 격분했다. 소라넷의 한 회원은 소라넷 폐쇄 청원 운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진 ‘메갈리아’ 회원에 대해 “남자들이 자기보다 어리고 이쁜년들 데리고 노는 걸 막고, 자기들은 그렇게 못하는 것에 대한 열패감과 질투심을 씻어볼까 하는 그런 (목적에서 폐쇄를 요청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근엄한 척 하다가 뒤로는 호박씨까는 문화에 대한 일갈을 멈춰달라”며 “소라넷이 없어지면 우리 대한민국 성인들 성문화는 어디가서 즐기나, 정말 고민이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도 넘은 소라넷에서의 행태에 사이트 폐지를 요청하는 서명이 수만명에 이르고, 서버를 관리하고 있는 미국 측과도 사이트 폐쇄에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지자 숱한 비난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소라넷이 백기를 들었다. 

유흥업소들과
콜라보레이션

지난달 30일 소라넷 운영자는 “최근 소라넷과 관련해 많은 이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며 “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간의 각종 불법적 몰래카메라, 강간 모의 등의 논란에 대해 “이미 등록된 게시물이 모니터링을 거친 후 수정 기능을 통해 불법적 내용으로 변조됐다”고 변론하며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회원의 자발적인 신고에만 운영될 수밖에 없는 서비스는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소라넷이 미국 법을 준수해 운영하고 있다 해도 사이트가 실질적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며, 국내 법을 저촉했기 때문에 처벌의 가능성은 크다. 다만 해외에 서버를 둔 ‘해외 사이트’인 만큼 폐쇄는 또 다른 문제다. 

일부 소라넷 이용자들은 “내 몸 사진을 올리는 것까지 문제삼는 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 “성인의 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들은 자신의 신체를 촬영해 올리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해당 사진·동영상이 음란물에 해당하면 법에 저촉된다는 설명했다.

음란물은 아동·청소년 관련 포르노가 아닌 이상, 법적으로 소지는 가능하지만 배포·게재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16년간 시대를 풍미한 국내 최대 음란 사이트 소라넷은 사실상 운명을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소라넷의 폐지가 모든 퇴폐사이트의 근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갈 곳 잃은 남자들의 귀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퇴폐사이트를 찾아 나서는 남자들. ‘퇴폐사이트 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소라넷 폐지 추진에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퇴폐사이트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여탑, 밍키넷처럼 소라넷의 자매사이트 격인 사이트들은 물론이고, 지금 당장 포털사이트 구글에 ‘야동’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어마어마한 퇴폐사이트들이 나온다. 

폐지서명 수만명
결국 백기 드나

딱봐도 소라넷을 표방 한듯한 춘자넷, 미소넷, 오야넷, 꿀잼넷, 야다넷, 무야넷 등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카마수트라, 19곰닷컴, 소녀경, 떡방닷컴 등이 페이지를 가득 메웠다. 

사이트에 들어가보자. 한국야동, 일본야동, 서양야동으로 획일화된 인터페이스, 게시판 등에 시선이 간다. 한국야동 게시판을 눌러보면 소라넷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십개의 몰카와 스와핑 등의 영상을 손쉽게 찾아볼수 있다. 심지어 성인인증도 필요가 없었다. 

초창기 ‘여탑’은 소라넷과 함께 성인 정보 커뮤니티 양대산맥을 이뤘지만 거침없는 표현과 자극적인 주제선정으로 정부의 집중 단속 대상에 포함됐다. 

때문에 사이트가 차단되는 일이 잦았고, 주소를 바꿔가며 운영되는 여탑을 찾아 헤매는 ‘섹티즌’이 상당수 존재했다. 여탑에서는 성매매 업소 정보를 지역·종류별로 접할 수 있다. 

 

이 사이트는 회원가입을 하지 않으면 게시물을 확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성인인증 절차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부모님의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간편하게 통과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 닉네임 등을 적고 가입하면 바로 성매매 업소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 또한 볼 수 있다. 업소 정보 게시판에는 오피, 풀싸롱, 립카페, 안마 등 업소 정보가 종류별·지역별로 정리돼 있었다. 

여탑·밍키넷 등 강자들 건재
불붙은 퇴폐사이트 왕좌 대결

‘대박할인이벤트, 거품no, 내상no, 균일가’ 등의 홍보문구로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게시물에는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사진과 이름, 나이, 몸무게, 가슴크기 등의 정보가 적혀 있다. 업소 위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 ‘실장’들의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전화주세요’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

그리고 ‘후기 작성 시 2만원 할인’이라는 문구도 모든 게시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밍키넷’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음란동영상을 유포하는데 그 음란동영상에 불법 폰팅 광고를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060’폰팅 전화번호와 성매매를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문구를 넣는 방식으로 남성들을 유인했다. 1800여편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동영상에 폰팅 광고를 넣었다. 

한 50대 남성은 음란동영상 속 광고를 보고 2년 동안 355회에 걸쳐 전화를 걸어 1000만원의 폰팅 이용료를 결제했다. 한 20대 남성도 한달 만에 23차례나 전화를 걸었다가 100만원을 지불하기도 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SNS도 불법 음란물 유통창구로 변질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 블로그 ‘텀블러’의 경우, 성기가 적절히 드러난 사진은 물론 성행위 장면이 담긴 영상까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일부 네티즌들은 음란물이 담긴 해외 웹사이트 링크 묶음을 만든 뒤 이것을 SNS에 퍼뜨리면서 청소년들도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음란물은 넘쳐나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은 아직 없는 것이다. 도마뱀 꼬리자르기식의 개별 웹페이지 차단만 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 사이트에 또 업로드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퇴폐사이트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돈’이다 이러한 유형의 퇴폐사이트들은 대부분 유흥업소의 홍보로 관리비를 조달한다. 

도박사이트 끼고
유사갤 우후죽순
 

음지로 흘러든 유흥업소는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홍보의 방법이 없기 때문에 퇴폐사이트가 유흥업소의 홍보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라넷을 폐쇄한다고 해도 또다른 퇴폐사이트 중 하나가 유흥업소의 홍보 창구로서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라넷 퇴출' 불 당긴 두 사건

소라넷은 최근 각 언론 사회면에 등장한 사고사건 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하는 남성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번쯤은 들어가 본 사이트. 다음은 소라넷 퇴출에 불을 댕긴 대표적인 두 사건이다. 

벗은 여친몸 공개 자랑 

▲의사와 짜고 병원서 애인 능욕 = 경찰에 의해 강제폐쇄가 거론되고 있는 국내 최대 음란물 공유사이트 소라넷의 과거 게시물 중 사이트 회원 두 명이 한 여성을 성적으로 능욕한 뒤 찍은 인증샷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충격적인 소라넷 병원’이라는 제목의 소라넷 폐해 사례가 퍼지고 있다. 트위터 글은 2200건 리트윗되며 현재까지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게시물에는 한 소라넷 회원이 의료계에 종사하는 소라넷 다른 회원과 함께 여자친구를 능욕했다는 글과 그 인증 사진이 있었다. 사진에 의하면 하의를 벗은 듯한 여성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그 앞에 의료 가운을 입은 남성이 서 있다. 

게시물을 올린 회원은 “소라에서 만난 선생님과 오랫동안 상의하고 시나리오도 짰다”며 “병원에서 아무도 없는 시간에 여러 가지 검사를 빙자하며 여자친구를 능욕하도록 허락했고 자신은 그 광경을 지켜봤다”고 주장했다. 

이 회원은 “마사지숍이나 산부인과 등 병원을 운영하시는 분 있으시면 쪽지 달라”며 추가 범행을 모의해 보자는 글도 올렸다. 

회원들 중 일부는 이 게시물을 보고 ‘대단하다’ ‘흥분되는 사진이다’ ‘좀 더 많은 사진을 보여달라’고 반응했다.

 

길거리 여성 찍어 문제도

▲왕십리 강간모의 사건 = 술에 취한 여성을 강간하려 모의하는 정황이 포착돼 충격을 줬다. 지난달 13일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라는 트위터 계정은 소라넷 이용자 A씨가 남긴 글을 캡처한 이미지를 올렸다. 

사진 속에는 ‘서울 왕십리 골뱅이(나이트나 클럽등의 유흥업소에서 술에 취해 정신 잃은 여성을 칭하는 은어) 여친’이라는 제목으로 소라넷 유저가 쓴 글이 포함돼 있었다. 

A씨는 ‘술이 약해 맥주 2캔만 먹어도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 사랑스런 여친님. (여친 강간할 분) 소라넷에서 초대합니다. 쪽지 말고 댓글로 바로 답변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다수의 소라넷 이용자들은 ‘지금 바로 갑니다’, ‘초대남 지원합니다’, ‘불러주시면 바로 튀어갈게요’라며 A씨의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는 데에 자원했다. 

이를 본 누리꾼이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강간 모의 상황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고, 여성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모텔로 여성을 데리고 들어가는 상황이 확인될 때 신고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후로도 소라넷에는 ‘골뱅이 동창’, ‘실시간 골뱅이’라는 제목으로 술에 취한 여성의 나체 사진과 함께 강간 지원자를 모집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며 논란이 됐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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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