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여제 정희왕후> <허균, 서른셋의 반란> 등 다수의 역사소설을 선보인 황천우 작가가 신작을 내놓았다. ‘주류성출판사’에서 출간된 <수락산에서 놀다>는 역사와 기행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이 새롭다고 느낄만하다.
만약 사는 곳 인근에 수려한 산이 있다면, 더군다나 그 산이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산이라면 매일 찾아갈 생각이 있는가. <수락산에서 놀다>로 다시 독자를 찾아온 황천우 작가는 이 책을 계획하고,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수락산을 찾았다고 한다.
매일같이 찾아
“그게 아니고, 난 이곳이 고향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처럼 수락산을 찾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야.”
메모를 하던 본 기자에게 황 작가는 오류를 짚어냈다.
지난 21일 가을이 물들던 때 서래마을 인근 카페에서 황 작가, 그리고 공동집필한 그의 아내 김영미씨와 함께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책의 장르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다. 만남이 있기 전 정독했지만,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에세이에 가깝다.”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그렇게 밝혔다. 일반적인 서적들과 달리 <수락산에서 놀다>는 ‘한시’, 대상을 소개하는 ‘서술’, 인물 간 ‘대화’가 합쳐진 구성이었다.
“문학사 최초 시도야.”
전개가 독특하다는 말에 황 작가는 그렇게 덧붙였다. 생소한 구성과 한시의 만남, 독자로 하여금 자칫 어렵다고 느끼게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황 작가와 김씨는 고개를 저었다.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데, 한문만 있을 뿐이지 읽기 쉽도록 현대시처럼 번역을 해놓았어”라며 황 작가는 강조했다.
구성도 신선했지만 담아낸 내용 또한 처음 접해본 정보들이 많았다. 이에 황 작가에게 책 소개를 부탁했다.
“수락산은 스토리가 되는 산이야. 왜냐하면 조선 초 최고 천재이자 사상가·문학가인 매월당 김시습이 삶의 전성기를 보낸 곳이기 때문이지. 김시습에 의해 수락산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황 작가의 말에 따르면, 김시습은 수락산에 13년간 머물며 자신의 사상을 모두 완성시켰다. 당대 최고의 문인이자 지성인이었으므로, 그 제자들인 남요온·홍유손·김일손은 물론 동문수학한 서거정 또한 수시로 수락산을 방문해 발자취를 남겼다.
조선 중기에 들어서자 수락산은 학문의 꽃을 피운 장소로 거듭난다. 당대 최고의 학자 세 사람이 수락산에 거처를 삼으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제자들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동쪽엔 ‘호곡 남용익’, 서쪽에는 실학의 선구자인 ‘서계 박세당’, 그 밑 노원구 상계동에는 ‘회은 남학명’이 학문을 연구했다.
“인물이 어디에 터를 잡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지는 것이지. 예를 들어 박세당이 석천동(지금의 장암동)에 찾아와 매월당을 살려낸 것처럼 말이야. 그분이 ‘매월당 영당’도 세웠어. 결국 동쪽에 남용익, 의정부가 있는 서쪽에 박세당, 노원구 쪽에 남학명, 이 세 사람이 동시대에 수락산 기록을 남겨버렸어. 아내와 함께 그 흔적들과 사라진 문화유산들을 찾아 집대성해낸 것이 이 책이고.”
수려한 명산 조명…아내와 공동집필
문학사 최초 시도 ‘한시+서술+대화’
불현 듯 앞서 사람들이 수락산을 찾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김시습이 왜 북한산·도봉산을 제치고 수락산에 살았겠어?” 황 작가가 반문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황 작가는 웃으며 “앞선 두 산은 겉에서 보기엔 웅장하고 좋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수락산이 더 매력적이라 그래”라고 답했다. 남편의 말을 경청하던 김씨가 부연했다.
“신비한 듯하면서, 들어가면 오솔길부터 계곡까지 아기자기함이 있어요. 그래서 터를 잡았고요.” 이어서
김씨는 ‘신접산림’을 이곳에서 시작했고 앞으로도 쭉 이곳 흙을 밟으며 살고 싶다는 심정을 전했다. 그리고 ‘고향’이라는 단어도 빠지지 않고 언급했다.
황 작가도 수락산의 의미를 전했다. “수락산에게 받기만 했어.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동안 수락산에서 많은 걸 얻었거든.”
황 작가는 말을 이었다. “수락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어. 단순히 찾아와서 술만 마시는 그런 곳이 아니라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말이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런 의미를 되새기길 바라는 마음이야.”
황 작가는 책을 집필하면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로 ‘매월당구지’의 발견을 꼽았다. 또한 노원구 상계동 쪽에 남학명이 세운 ‘수락산재’가 있는데, 비록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작가는 잊혀 진 문화유산의 관리와 보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를 위해 국립공원 지정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락산은 행정구역상 남양주·의정부·노원구 이렇게 세 군데에 걸쳐있어. 그러니 체계적으로 관리가 안 될 수밖에. 일례를 들면, 노원구에는 둘레길이 잘 되어 있어. 반면 의정부로 가면 둘레길이 없지. 남양주로 가도 온전치 않아. 연결되어 있어야 둘레길인데도 이렇게 제각각인 상황이지. 수락산은 쪼개져 있어.”
책에는 수락산의 다양한 모습이 사진의 형태로 담겨있다. 황 작가는 책 편찬을 위해 직접 찾아가 1700여 장을 찍었고 한다. 말 그대로 책을 펴는 순간, 산의 구석구석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국립공원 절실
마지막으로 책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황 작가는 “저건 우리세대의 산이 아니다”라며 “후대 사람에게 빌려 쓰는 것이라 생각해야 되는데, 그저 술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면…에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요즘에는 돈이 되는 책을 많이들 쫓아가요. 독자도 출판사도.” 차분히 운을 뗀 김씨는 독자들에게 당부했다. “내용이 조금 어렵더라도 순수문학을 읽는 묘미가 있기 때문에 ‘선조들이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읽고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